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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우 Feb 23. 2023

수상한 책방 44.

두 세계


 살아온 사회 환경이 다르게 내가 원하는 것과 상관없이 그저 태어난다. 성장하면서 독립적인 한 사람이 말 그 자체로 독립적 사고를 할 수 있을까.


옳음은 두려워하는 자들이 만든 좁은 상자야.



 영화의 한 줄 대사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옳음은 그저 관념이라 부를 수 있거나 사회학습으로 부여해 온 단어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옳다고 결정하는 내게만 해당되는 것.


   요즘 누가 책방에서 책을 사? 애초에 책방을 해서 살겠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감각이 없는 거지.

   책방에서 책이 팔리지 않는다는 은 생계 수단이 될 수 없다고 하는 지?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야. 그러면 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니?

   내게 아무것도 아닐 수는 없어.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이렇게 살아가는 거지.

   

 한밤중에 전화 통화를 하면서 잘 지나갈 하루를 어김없이 망치려 드는 정윤이 말은 옳다고 할 수도 없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었다. 대책이 필요하고 그때까지 시간이 주어진다면 하는 마음이다.


   현실감각이 없는 나와 연애가 가능하니?

   연애니까.

   

 연.애.니.까. 네 글자가 주는 힘이 얼마나 커다랗게 작동하는지 정윤이 알았다면 좋겠다. 아무 말도 하기 싫은 나는 그의 목소리가 무섭다. 살그머니 전화를 끊어야 했다. 정윤은 아무래도 우정으로 이어지는 사람으로 남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확실해진다.


   연애 감정은 부모로부터 정서적으로 편안하게 멀어져 가는 거래.


 

정윤은 메시지를 남겼다. 어디서 들은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연애 타령은 내게는 어쭙잖은 감정 소모 같은 것을 어쩌겠나.


 다른 세계에 살아가는 내가 있다면 음악이라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다. 노래를 잘하거나 악기 하나쯤은 잘 연주하는 사람으로. 내가 태어난 환경에서 음악은 귀로 듣는 것으로 이해되는 곳이었다고 생각하니까. 학창 시절에 음악은 귀로 충분히 만족하는 대상이었다.


 책보다는 사람 목소리가 더 멀리 더 익숙하게 전달되고 불러오는 것 같다. 책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가에 그 사회 운명이 달라진다는 말도 헛소리 같기만 하다. 책, 좋죠. 그런데 읽을 시간도 재미도 없잖아요. 이런 소리를 듣다 보면 가슴속에서 뭉쳐있는 어떤 것이 치밀어 오른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과 읽을 수 없는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분류될 날도 그리 멀지는 않아 보인다. 스스로 원인이 되어 납작 인간이 되어 간다는 생각도 하지 못할 테니까.


 삶이 얼마나 굴곡지는지 찬란한 빛을 내는지 알기도 전에 납작 인간으로 눌어붙고 있다고 의식조차 못할 테니까. 좋아하는 일을 하면 평생 일할 날이 하루도 없을 것이라는 누군가 한 말이 나를 괴롭히는 중이다.


 스무 살 정윤은 분명 책과 가깝게 지내는 사람으로 기억한다. 드물게 이론과 실제의 차이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회인이었다. 문을 걸어 잠그는데 급급했던 나와는 달리 지금 그는 활짝 열어놓아 힘겨운 이십 대를 지나는 중이다.


 가끔 정윤은 이런 나를 이상주의자처럼 여긴다. 그만큼 나를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히려 현실을 알고 있기에 보다 실질적인 삶을 살려고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그러하듯 자신이 보고 싶은 방법으로 대상을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못 견디게 살고 싶어지는 때가 올까? 너무 오래 살아온 사람처럼 나는 이 세계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지금 생명이 붙어 있으니 잘 살아내려는 것뿐이다. 단순한 내 삶이 좋다. 책방이라는 내 공간과 책과 가끔씩 결이 비슷한 사람들과 만나 유쾌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도 괜찮다.


 내가 괜찮으면 충분한 삶으로 지내는 게 모두에게도 좋은 일이다. 미래를 계획하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는 너무 지루한 일이기만 하다. 솔직해지자면 나는 몹시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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