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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우 Feb 22. 2023

수상한 책방 43.

꽃을 든 남자


   너나 나나 슬랙티비즘으로 겨우 목숨을 유지한다고 생각하지 않니?

   너처럼 트위터로 리트윗 하며 존재함을 알리는 일조차 하지 않거든.

    

 금요일 밤이면 장거리 연애가 주는 부작용으로 하루를 연장한다. 내가 잠들지 않는다면 하루는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연애 중이라는 표현이 맞는지는 상관없이 문자로  이어가는 소통도 한 방법일 테니.


 정오가 지나자 꽃을 든 남자가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온다. 불쑥 찾아오기. 나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다. 내가 연애 중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란다. 불과 일곱 시간 전에 우리는 작별했는데.


   택시가 없어서 기차역에서 걸어오다 보니 꽃집이 있더라. 이재인 생각이 나서.


 눈도 맞추지 못한 채 꽃다발을 건네는 정윤 모습은 뜻밖에도 귀엽다.


   잠도 안 오고 해서 그냥 기차를 탔어.

   잘 왔어. 꽃도 고맙고.

   배고픈데 우리 이 지역 맛집이나 가볼까?

   바깥에서 밥 사 먹는 거 그만둔 지 오래되어 몰라. 검색해 봐.

   여기서도 틀어박혀 있다니. 그럴 줄 알고 찾아봤지.


 우리는 바닷가로 간다. 서해는 물 때를 잘 맞추면 바다를 가까이에서 만나게 된다. 굳이 검색하지 않고 바다로 가는 것은 바다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혼자서 자주 가던 바다로 누군가와 같이 간다는 게 어색하기만 하다.


 이 여름 책방에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활동은 아이들 방학처럼 쉬어가는 중이다. 저녁 만남을 땀 빼기 활동처럼 하고 있지만 얻어다 돌리는 선풍기로 감당하기도 어려워 선선한 바람 불 때까지 개인 독서시간을 갖기로 했다.


 찜통 같은 책방에서 독서삼매경이란 옛말에 위안을 받으려는 나를 처량하다고 정윤은 차마 말하지는 않는다.


   에어컨 들여놔야 하겠다.

   혼자 있어서 견딜 만 해.

   사람들 모이잖아.

   책방도 휴가 냈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게 더 이상한데.

   어쩌겠어. 되는대로 지내야지.

   책 사러 왔다가도 그냥 나가겠다.

   없어.

   한 명도?

   응. 내 주거지일 뿐이야.


 정작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주변에서 걱정한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 태평한 것 아니냐는 말도 듣는다. 그럴 때면 나는 이 나라에서 탄생만큼은 행운아인 편이라고 둘러댄다. 단지 가난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도 행운아가 된다.


 어쩌면 현실이란 내가 갖는 부정심리로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불편함과 문명의 이기를 이용할 수 없는 이유가 돈이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 투덜거리는 나를 감추느라 진이 빠진다.


 폭염과 혹한은 가난한 사람을 더욱 뼈저리게 현실을 실감 나게 한다. 누리는 사람보다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을 텐데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굴러간다. 내가 이토록 더위에 약하다는 것도 발견한다.


 앞으로 나도 모르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튀어나올까.  정도에 널뛰는 내 마음이 한심하다. 정윤 앞에서 의연한 척하는 나도 싫어진다. 꽃을 든 그가 흔쾌하게 해주는 이 모든 일이 이 여름 이렇게 나를 만족시켜 주다니.


 에어컨으로 쾌적하게 보낸 카페에서 하루가 이렇게나 만족스럽다니. 별 수 없는 이재인. 재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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