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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우 Oct 01. 2023

한국인의 얼굴

시간을 거슬러


 1996년 출간된 중국의 장편소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는 한평생 피를 팔아 가족을 위기에서 구해낸 속 깊은 아버지 허삼관을 주인공으로 한다. 그는 성안의 생사공장에서 누에고치 대주는 일을 하는 노동자이다. 허삼관은 피를 팔아 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인생의 커다란 위기를 만날 때마다 자신의 피를 팔아 위기를 넘긴다. 문제는 피를 팔아야 할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데 있다.     


 소설 속의 허삼관은 허구의 세계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허삼관을 가리켜 작가 위화는 국공합작과 문화 대혁명 시기를 살아가는 중국인들의 얼굴이며, 자신이 어릴 때부터 함께 살아온 숱한 사람들의 모습이 투영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나에게 낯설지가 않다. 피를 파는 것이 모자라 영혼을 팔기도 하고 결국에는 목숨마저 던지는 일들이 빈번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까.     


“설령 목숨을 파는 거라도 난 피를 팔아야 합니다. 저야 내일모레면 쉰이니 세상 사는 재미는 다 누려 봤지요. 이제 죽더라도 후회는 없다 이 말이죠. 그런데 아들 녀석은 이제 스물한 살 먹어서 사는 맛도 모르고 장가도 못 들어봤으니 사람 노릇을 했다고 할 수 있나요. 그러니 지금 죽으면 얼마나 억울할지.”

 <허삼관 매혈기> 중   


 사람이 수혈할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음에도, 그는 별 상관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신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음에도, 다른 방법이 없는 그는 최대한의 피를 판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허삼관은 이내 피가 말라버려 죽어버릴 것만 같다. 그래서 무능력하고 한심해 보이는 그런 그의 모습에서 가족을 챙기고 삶을 지탱하는 아버지들의 고단함을 만나기도 한다. 이제는 우리 아버지들이 목숨까지 바쳐가며 살아온 그 시대는 넘어섰다고 생각했다.     


“저, 매혈하러 가요.”    
“뭐라고? 피를 판다고?” 
“에이. 헌혈하러 간다고요.”   
“봉사활동 하러 간다며”     
"헌혈증 내면 봉사활동 시간 일부 채워주거든요.”     


 고등학교 2학년 십 대와 나눈 대화이다. 먹먹했던 그때의 느낌은 잠시였다. 서로 무엇이 문제인지를 너무 잘 알기에 그다음에 진행될 이야기는 뻔하다.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진급이 되지 않는다. 강제된 봉사활동이 필요한 현재, 자율은 어느새 안일함으로, 형식으로 변질하여 있다. 헌혈이 매혈로 불리는 한국의 교육 현실이다. 이런 교육을 지켜보아야 하는 우리에게 부조리를 외면하는 것은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 되었나 보다.     


 그런데 우리는 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던진다. 그래, 이런 사회이다. 그 시대와 지금, 다를 것이 무엇인가. 차라리 피를 세 번쯤 팔아 집을 장만할 수 있는 허삼관이 살던 시절이 더 나은 것이 아닌가. 적어도 내 피는 별 노력 없이 내 한 몸 잘 챙겨서 건강하기만 하다면 저절로 생겨나는 피가 아닌가.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절절하면서도 나오는 헛웃음과 생활고에서 죽음으로 겹쳐지는 영상들로 숨이 막힌다.     


 아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자신의 있는 힘을 다해 희생하는 것은 그가 지닌 가족을 위한 사랑의 힘이라고 밖에는 달리 말할 수가 없다. 허삼관은 아들 일락에게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고, 현실이 아무리 비루할지언정, 영혼을 잃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매혈하여 봉사활동 시간을 채워야 하는 아이들에게 그들의 게으름을 탓해야 할까. 내용과는 상관없이 이런 형식에 맞추어야 할까.     


 모든 정보는 이미지와 텍스트, 영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저 의사소통으로 머물 텍스트가 아니라 그 배경이 되는 요소 간의 관계까지 포함하는 콘텍스트에 따라 문제를 풀어가도록 해야 한다. 콘텍스트는 시공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에 ‘허삼관 매혈기’를 그냥 지나치는 흔한 텍스트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이유이다.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를 중심축으로 하여, 내 삶의 방식과 사회체제의 상태를 근본적으로 고찰해야 한다.     


 물론. 자발적 무상 헌혈에 참여하는 헌혈자에게 감사와 존경을 전하기 위해 마련된 ‘세계 헌혈자의 날’도 있다. 세계 보건 기구 회원국들이 이날을 통해 많은 환자의 생명을 구하거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묵묵히 자발적 헌혈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하지만 여전히 매혈의 의미로 다가오는 사회제도는 잘못되었다. 그런 부조리를 여전히 지나치면서 세월호 참사 1주기에도 달라진 것은 없는 현재를 만난다. 영화로까지 보는 일은 거부해야 했다.



2015. 04. 16. 위화 『허삼관 매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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