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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우 Oct 01. 2023

비틀거리다

시간을 거슬러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는 약주를 거나하게 드신 날에는 나를 무릎에 앉혀놓곤 하셨다. 통일되면 고향을 가야 하니 주소를 알려주시고 다시 말해보라며 내 기억력을 확인하시려고 되물었다. 그때마다 작은 입술로 또박또박 말하면 볼에 입을 맞추고 손에 용돈을 쥐어 주셨다. 셋째 딸이 고향에 남아계신 할머니를 조금 닮았다는 이유로 네 자식 중 나는 늘 선택받아 아버지의 무릎을 독차지했다. 하긴 네 자식 중 밤늦도록 깨어있어서 아버지의 무릎을 독차지한 것일지도 모른다. 혈혈단신의 아버지가 고향을 바라볼 수도 없게 된 지 40년이 되어간다.      


 아버지는 외아들로 태어나 쌀 한 자루 어깨에 메고 남쪽으로 오셨다고 했다. 전쟁이야 곧 끝날 테니 잠시 피신했다가 오라며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할 스물둘, 외아들의 등을 떠밀었다고 한다. ‘평안남도 강동군 원탄면 하리 매당 곧지’ 아직도 술술 내 입에서 나올 수 있던 그곳을 지금 같아선 갈 수 없겠구나 싶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자세하게 알려주시지 않았지만 어쩌면 어릴 적 귓가에 들리던 그 순간들의 말이 나를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열망을 갖도록 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마음의 고향이 상실되면 현실에 놓아둔 두 발은 참으로 고달프다.     


 아버지는 집을 지으면서 창을 북쪽으로 내셨다. 보통은 남쪽으로 창을 내야 볕이 잘 든다고 하던데 그땐 그 이유를 몰랐다.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던 것 같다. 어버이날이면 북쪽으로 난 창가에 카네이션을 꽂아두고 등을 보이시며 한참을 창가에 서 계셨다. 그런 아버지의 고향으로 향한 절절한 마음을 아무도 몰랐다. 서울 토박이로 자란 내 유년은 ‘아스팔트 킨트’라 할 수 있고 서울특별시를 탈출하여 어디든 시골, 그곳을 ‘곰스크’라 부른다면 소설의 주인공과 나는 비슷한 열망을 품고 살았다. 그는 여러 이유로 자신이 정착하게 된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내가 꾸는 꿈을 현실에선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또는 믿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몽상일 수는 없다. 우리들의 가슴 깊숙이 담긴 숨어있는 자신만의 꿈일지라도 그것을 표현하고 그것을 향해 움직일 수 있다면 말이다. 다만 일상에서 아주 느리게 움직이고 있어 나조차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이라 해도 내가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오를 수 있다. 한국사회는 얼마나 많은 몽상가를 만들어 냈던가? 우리들의 대한민국이 놓인 사회의 현실은 수많은 사람의 이상을 짓밟아 서서히 몽상가로 전락시켜 왔다.     


 이 땅의 많은 사람이 자신의 꿈을 접고 마치 몽상이라고 치워놓을 수밖에 없는 것은 나의 시선으로 본다면 자신의 감추어진 꿈을 내보이려는 열렬함이 없는 것은 아닐까 싶다. 쉽지만은 않았겠지만(그리 믿고 싶음이다) 현실과 결탁해 버리고, 주변의 탓을 하는 지독한 자기 합리화에 빠져드는 연약함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 믿음과 사랑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 사랑의 힘은 내 안의 연약함을 물리칠 수 있고, 무모하다는 말을 듣더라도 나는 자신을 위해 무모해지기를 바란다. 현재의 내 시간은 먼 훗날 나의 이상을 담은 순간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원하는 만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인생의 법칙이라 생각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열망하며 산다. 그런 열망이 없는 삶에 드리울 것은 안타깝게도 자기중심의 지독한 이기주의이고 그것은 결국 남을 해치며 얻게 되는 결과물에 안착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나마 가능할 수 있는 이상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열리는 누군가와의 마주함은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온전하게 '자기'가 된다는 것은 진정성을 향한 끊임없는 대상과의 소통을 통한 담금질이다.     


 살아가면서 상실의 순간은 자주 찾아온다.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든 내게로 들이치는 광장의 소리는 이내 많은 사람의 아우성으로 귓가를 맴돈다. 서울 청와대 앞 청운동사무소 앞마당에는 전경들이 앉아있고 차벽으로 보호하고 있다 한다. 이런 사회의 우울함이 여기뿐이던가. 그저 일상에서 음악과 책을 읽으며 생존에 위협이 오지 않을 만큼의 일을 하는 내가 열망하는 것은 결코 몽상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상실은 그저 메꾸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비워진 채 그것만의 분노로, 이유로도 충분했다. 다른 것으로 채워질 수가 없다.     


 사람을 잃다. 그 상실감을 무언가로 메꾸려고 안간힘을 쓴다면 그것은 상실이 가져다준 상처라는 흔적을 짙게 남긴다. 잃어버렸든 내던져버렸든 현재 아무것도 없어 비틀거린다면 애써 중심을 잡으려 해서는 안 된다. 비틀거려야만 한다. 쓰러져 지쳐 더는 휘청이지 않을 때까지. 순간마다 내게로 달려드는 이 세계의 소리와 기운들을 그대로 만질 수 있어야 한다. 그것만이 내가 살아있는 것이라는 내 안의 소리를 마주할 유일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공동체는 그렇게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는 열망이다. 용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2015. 5. 31. 프리트 오르트만 『곰스크로 가는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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