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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우 Oct 01. 2023

역경을 희망으로

시간을 거슬러


 메르스 환자 속출로 트위터의 타임라인은 뜨겁습니다. 정부의 안일한 보건 안전으로 다시 떠오르지만, 과연 이 나라에 ‘정부’는 없고 ‘정부의 말’만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은 다른 가치에서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함에도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 느끼는 비애는 평생을 가려나 봅니다. 『담론』은 절망의 언어가 희망의 언어로 비약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고뇌와 철학, 약동하는 삶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것은 그때 그곳의 조각에 불과합니다.”는 저자의 말은 ‘사실’이 ‘진실’이 될 수 없는 것을 다시 되새기게 합니다. 사실조차 개인의 편향된 시선에 따라 왜곡되기 일쑤인 사회에서 개인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무거운 일이던가요. 자기검열이 작동하고 자기 생각을 말하기가 두려운 사회, 시대를 뛰어넘기 어려운 정서에서 빠져나올 가능성이 있기는 한 걸까 싶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방랑하는 예술가처럼 춤을 추고 있는데 사실은 제자리에서 땅을 밟고 있기만 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들에 이러쿵저러쿵 춤을 추다가 제 풀에 힘이 달려 그만 주저앉게 되고 말 것 같은 거지요. 이런 사회의 불안들은 삶을 절박하게 만들지 않던가요. 패배의 역사에는 서사가 꽤 낭만적으로 퍼집니다. 그것마저 없다면 패배를 치유할 자유로움과 창조성은 소멸했겠지요.     


 패배의 역사, 혁명이 글자로 박제된 지금, 저자는 ‘현실과 이상의 지혜로운 조화’를 담론으로 삼았습니다. 문사철의 추상력과 시서화의 상상력을 유연하게 구사하고 적절히 조화를 이룰 능력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분리된 힘이 아니라 유연함이며 이런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 하죠. 머리로만 공부하여 형성된 엘리트 민주주의를 보니 저자의 담론이 대중서가 되는 날을 상상하게 됩니다.     


 개인주의가 성하는 시대에 장자의 사상은 제법 알려졌지만 묵자라는 사상가는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묵자학파는 하층민, 공인, 죄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그들의 지지를 받는 학파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사상으로 검소함과 비타협적 실천에 그 차별성이 있답니다. 민중의 삶 깊숙이 들어가 있는 생생한 현실 인식이지요. 묵자의 결론은 세상 사람들이 서로 차별 없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서양에 사회주의가 있었다면 동양엔 묵자의 ‘겸애’ 사상이 있었던 것이지요. 물론 묵자들의 활약이 있던 당대에도 주류가 될 수 없었고 현대에도 여전히 이론에 그칠, 실현되기 어려운 이야기 같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계급 철폐의 평등사상을 말하는 묵자의 ‘겸애’를 가슴으로 공부했으면 하는 겁니다. 묵자는 오늘날의 당면과제인 연대와 상생을 기원전 100년 전 자취를 감추었을 때까지 주장했던 것이지요. 저자는 여러 담론으로 하나의 지향점을 가리킵니다.     


 마지막 글은 ‘희망의 언어 석과불식’으로 절망의 눈물이 넘치는 한국사회에서 희망의 강물이 되어 바다로 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석과불식’은 양효의 ‘효사’에 나오는 말로 “씨 과실을 먹지 않는다”는 뜻이랍니다. 즉, 가지 끝에 마지막 남은 감은 씨로 받아서 심는 것입니다. 씨 과실은 새봄의 새싹으로 돋아나고, 다시 자라서 나무가 되고, 이윽고 숲이 되는 장구한 세월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지요.     


 저자는 이 한 알의 외로운 석과가 역경을 희망으로 바꾸어 내는 지혜이며 교훈이라 합니다. 절망의 눈물로 뒤범벅인 길 위에 서 있더라도 어려움을 냉정한 눈으로 직시하고 환상과 거품을 청산하는 일부터 시작하라 합니다. 다음은 칼바람에 드러난 뼈대, 이 사회를 지탱하는 구조를 직시하라고 말하지요. 그 뼈대는 첫째 정치적 자주성입니다. 둘째는 경제적 자립성이고 셋째는 문화적 자부심입니다. 뼈대란 우리를 서 있게 하는 것인데 우리의 뼈대는 어떤가요.     


 역경을 희망으로 바꾸어내는 지혜 중 마지막 일이 기성세대의 몫인 거지요. 뿌리를 거름하는 일로 가장 중요한 뿌리를 따듯하게 덮어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뿌리가 바로 사람이며 사람을 키우는 일인 것이지요. “해고와 구조 조정 그리고 비정규직이 바로 사람으로 사람을 거름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을 부정할 수 있는 이들이 1%임에 위안으로 삼아야 하는 걸까도 싶습니다.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 왔던 옛사람들의 철학, ‘석과불식’입니다.     


2015. 06. 02. 신영복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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