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창우 Dec 07. 2023

절반의 역사

『우리 여성의 역사』는 한국여성연구소 여성사연구실

『우리 여성의 역사』는 한국여성연구소 여성사연구실에서 1999년 출간한 책이다. 21세기 들어서서 정체와 역진, 다시 진보가 하는 과정이라 또 다른 내일에 지금을 성찰할 수 있는 여성의 역사는 새롭게 『글로벌시대에 읽는 한국여성사』로 이어졌다.  

      

 이 책에서 만나는 지나온 세월에 관한 서술은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나에게로 다가오는 감정들을 추스르고 성찰하는 순간을 맞게 한다. 한 개인으로 여성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과연 이 땅의 어머니들과 현대를 살아가는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여성사는 여성들이 과거에 살아온 삶을 드러내는 역사 서술이며 그동안 역사 연구에서 여성들의 삶이 거의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성사를 따로 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생각해 보면 가깝게는 할머니의 삶과 할아버지의 삶은 다른 영역에서 언급되곤 한다. 내 경우에는 아버지가 실향민이어서 떠나온 고향 땅을 가봐야 할 큰 숙제를 하나 갖고 있다.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중에 땅을 버릴 수 없어서 외아들만 급하게 쌀 한 말 어깨에 둘러메고 잠시 남쪽으로 피난하라고 했단다. 아버지는 다시 돌아가지 못한 고향 땅을 바라보며 세상을 버리고 오래전 떠났다. 그런데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 당신의 무릎에 앉혀놓고 늘 아버지의 고향 주소를 알려주시곤 해서 지금까지 그곳을 기억하고 있다. 주입식 교육이 만든 아주 효과적인 면이다.         


 2018년 4월 27일에 잠시 아버지가 못다 이룬 일을 내가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역사적인 사진만 덩그마니 떠도는 것을 보니 꿈이기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기는 하다.      


 할아버지는 땅이 목숨보다 더 귀한 농부였고, 이제 할머니의 삶은? 나는 할머니의 삶은 하나도 알 수 없다. 아버지께선 단지 내 외모가 북쪽에 계신 할머니를 닮았다고만 하셨다. 그것 외에 정말 아무런 정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이제는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사람들에 얹혀 버렸다.         


 내가 우리 여성의 역사를 탐구하고 있는 것은 현재를 제대로 알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과거를 결코,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결국 우리가 여성사를 연구해야 하는 이유를 이 책에서는 잘 설명해 준다. 그간 역사에서 배제되어 왔던 여성의 역할과 위치를 복원하여 진정한 인간의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여성사가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여성운동의 전개 과정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서양의 경우 여성사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다. 이 무렵에는 각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이 일어나 교육, 직업, 정치와 같은 기본적인 시민권의 불평등을 시정하려 했다. 이러한 여성운동은 여성 불평등의 원인을 찾아 과거로 눈을 돌리게 하였고,
이것이 여성사가 등장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본문 중에서-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되면서 이미 헌법에 여성참정권은 명시되어 한국에서 여성참정권을 얻기 위한 여성운동은 없었다. 서구사회 여성사를 들여다보면 참정권 운동 쟁취로부터 여성운동은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1945년 해방을 맞아 해방공간에서 여성운동이 시작된다. 해방 후 한국여성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식민지적, 계급적 수탈 대상에서 벗어나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경제구조를 확립하는 일. 정치의 주체로서 국가 건설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평등한 시민권리를 확보하는 일.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타파하고 남녀평등을 실현하려는 것이었다.     


 21세기가 되어서야 사라진 호주제도의 도입과 여성의 법적 지위에 변화가 온다. 호주제도는 가족제도를 통한 국가의 지배 방식의 하나로 여성을 억압하는 대표적인 가부장적 제도였다. 호주제는 실상 일제가 식민지를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이식한 제도로 호주 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가족제도를 도입해서 한국 민족의 동화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했다.        


 2005년 3월 2일, 호주제 폐지를 주요 골자로 한 민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가족 내에서 남성이 우선적으로 승계하던 호주라는 지위가 없어지고, 여성이나 자식들은 결혼과 함께 호적 파 갈 일이 사라졌다. 또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으며, 새아버지 성과 본이 달라 고통받던 재혼가정 자녀들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 성과 본을 변경할 수 있게 되었다.      


 부계혈통을 이어가는 호주제도가 우리나라에 정착되면서 가족 내에서 여성의 지위는 약화되어 남성에게 종속적인 지위로 고착된 것이다. 이런 호주제도가 폐지된 것을 디지털세대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본래부터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호주제 폐지 운동은 짧게는 8년, 길게는 50년에 걸친 여성 인권 운동사였다.     

        

어떤 입장에서 하는가? 끊임없는 문제 제기와 관점. 역사 속에서 여성 억압의 원인을 찾아내고, 그 현실을 밝히며, 여성해방에 대한 전망을 함께 제안해 나가는 일이 결국 모두에게 당연할 성평등을 위한 시작이며 과정이고 현재를 지나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다.                    -본문 중에서-     
     

 나는 요즘 소설 속 등장인물을 자주 만나고 있다. 『8 헤르츠』에 등장하는 그 여자, 그 사람으로 호명되는 주인공이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한 사람으로 홀로 살아가며 세상을 향해 말을 건넨 민선경이 품은 마음과 사랑. 그녀와 같이 고독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죽음까지 홀로 맞은 사람. 민선경은 이렇게 속삭인다.      


“사랑이 없는 세상에서 나는 더는 살고 싶지 않아...”


 그 많은 페미니즘 이야기는 내가 이 세계를 향해 품은 사랑을 나누기 위한 일이라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실을 살펴보아야 하는 일, 어떻게 살펴보아야 하는 가가 중요하다고. 내가 이해할 수 있어야, 볼 수 있어야 행동할 수 있다고.       


 삶의 공허와 권태, 마음의 황폐함, 노동의 소외, 사랑의 배신, 남아있는 내일이 건네는 불안감, 조급함, 무력감, 당장이라도 무슨 불길한 일이 생길 것 같은 어지러움, 내가 딛고 있는 대지가 꺼질 것 같은 상실감, 삶에 대한 집착, 갑자기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을 것 같은 기괴함, 이런 감정들은 나에게만 다가오는 감정일까.



                          



이전 04화 특권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