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하지 않은 마음
작년 친한 친구들과 각자의 아내를 불러 부부 동반 모임을 한 적이 있다. 동반 모임을 하니 재미있던 점은 친구들이 내 친구로서의 모습과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의 모습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친구들 앞에서 여포 같은 녀석이 아내가 있으니 완전 주눅이 들어 있다던지, 어울리지 않는 상냥함은 한동안 우리의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문제는 친구들이 봤을 때 나도 매한가지였나 보다.
"어 오빠충 왔네? 오빠가~ 오빠가~"
그동안 아내와 연애할 때부터 지금 까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내용인데 내가 말할 때마다 '오빠'를 붙인다는 것이다.
" 야 그럼 '오빠가'를 붙이지 뭐라 하냐?"
"'내가'라고 하면 되지 오빠를 왜 쓰냐? 오그라들게"
너무 억울하고 어이가 없어서 이날 친구들과 엄청난 설전을 벌였다. 나의 주장은 이러했다. 한국어 자체가 인칭대명사가 발달된 언어이다 보니 나를 지칭했던 대명사를 그대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가령 조카가 나를 삼촌이라 부르니, 조카에게 말할 때 "삼촌이 연락할게~" 하고 한다는 점이다. 여자 친구가 항상 나를 이름 대신 오빠라고 불렀으니 나 또한 "오빠가 좀 있다 연락할게~"라고 자연스럽게 붙이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의 이유는 다정함과 친근감에서 오는 표현이다. 앞서 든 저 예시를 친구들이 주장한 '내가'를 사용한다면 사랑스러운 조카에게 "내가 연락할게!"가 되겠고 여자 친구에게 "내가 좀 있다 연락할게!"라고 말하게 된다는 거다. 오히려 '나'라는 지칭이 건조하고 따뜻함이 묻어나지 않는 것 같다.
최근 자주 이용하는 커뮤니티에서 '오빠가 해줄게'라는 제목으로 선정된 Hot 글이 보였다. 글의 내용은 말마다 필자의 주변에 오빠, 오빠를 붙여서 쓰는 사람이 너무 싫다는 내용이다. 아이고 또 오빠충 쿨타임 왔구나 하고 리플들을 보았다. 신기한 점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해당 글을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빠를 혐오하는 이유는 이러했다. 본인 스스로를 오빠로 지칭하는 사람들은 꼰대이거나 권위적인 사람일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왜냐면 오빠라는 표현으로 은연중에 본인이 손윗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하여 우월감을 가질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 본인을 지칭하는 단어는 이모가~ 삼촌이~ 할머니가~처럼 상대방보다 나이가 많은 케이스만 해당했다. 이는 우리나라처럼 나이로 서열이 갈리는 문화에서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다 를 간접적으로 내 포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생이 연락할게~' '조카가 연락할게~'라고는 표현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예로 군대에서 중대장님이 "중대장은 너희들에게 대단히 실망했다"와 비슷한 맥락이려나?
해당 글을 읽고 약간 일부 동의 한 점은 있었다. 왜냐하면 친구들 사이에서도 '형'이라는 손위 표현을 쓰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친구가 부탁을 들어줄 때 "마! 형이 해줄게!"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 표현은 내가 너보다 더 잘하고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해 하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아내에게 나를 오빠로 지칭할 때 내가 더 능력 있고 우월하고 잘생겼고 멋지고 나이 많고 까불지 마라 라는 의도로 '오빠'를 사용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렇다면, 매일매일 오빠 오빠를 귀에 때려 박히고 있는 오빠충의 아내의 생각은 어떠할까?
"응?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데?"
오히려 '오빠가'가 대신에 '내가'라고 하면 더 멀게 느껴질 것만 같다고 한다. 결국은 어떤 사람이 어떤 감정을 지니고 본인을 지칭하느냐에 따라 불편함의 정도도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서로가 사랑하고 좋으면 그 어떠한 표현인들 문제가 되겠나 싶었다. 나의 아내도 본인을 지칭할 때 본인 이름으로 말한다.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땐 극혐이겠지만 내 눈엔 귀엽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도 다른 여자 사람 동생에게 혹시나 무분별하게 '오빠'를 사용하진 않는지? 이로 인해 상대방 기분이 나쁠 수가 있진 않을지?라는 생각을 하며 조금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반대로 누군가 '오빠'라고 지칭한다면 좀 더 자상하고 좋게 말해주려는 표현이라고 너그러이 해석하는 마음도 조금은 필요할 것 같다. 생각보다 우월함을 내재하여 말하려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각박한 세상 속,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날을 곤두세우기보단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좋겠다.
오늘, 나의 옷을 빌려는 친동생이 "아 쪼잔하게, 동생한테 쫌 양보 좀 해도~"라고 했다.
야! 니 오늘부터 동생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