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의 유통기한

지식인 솔로몬

by 온택

밤 10시가 넘으니 슬쩍 배가 고파왔다. 크게 야식을 당겨하지 않은 타입인데, 이른 저녁에 면을 먹어서 그런지 허기짐이 느껴졌다. 뭐 먹을 게 없을까? 하고 부엌의 찬장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다 보니 '팬케익 믹스'를 발견했다.


보물을 찾은 듯 한 기쁨도 잠시 포장 봉지의 하단에 '2020년 1월 6일 까지'라고 적힌 유통 기한을 보게 되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쓰레기통으로 버리려 하던 찰나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아니야 먹어도 돼!"


아내와 나는 유통기한으로 제법 실랑이를 많이 한다. 나는 단 하루라도 유통 기한이 지나면 폐기해버리는 반면 아내는 항상 유통기한 와 소비기한이 따로 있다며 유통기한이 일정 기간 지나도 되도록 섭취를 하려 한다.


나 또한 소비기한이란 게 별도로 있다는 걸 인지는 하지만, 그 기한도 너무 주관적일 수도 있기 때문에 괜히 막고 탈 나느니 깔끔하게 유통기한으로 나는 선을 그어 버린다. 그런 나에게 1년이나 지난 팬케익 믹스는 사약을 내린 것만 같다.


이렇게 우리는 팽팽히 맞서는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네이버 지식인 검색을 통해 최종 승자를 가리기로 했다. 검색을 하니 이미 '팬케익 유통기한 1년 넘은 거 먹어도 되나요?'라는 글이 수두룩 했다. 아마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많은 가보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모든 답변은 '먹지 마세요'로 수렴했다.


유통기한 하나를 어떻데 받아들이는데도 이렇게 사람이 다르다. 예를 들어 실제 우유는 유통기한이 10일인 반면 소비기한은 냉장 보관 기준 50일에 육박한다. 하지만 나는 제품에 프린팅으로 유통기한 숫자가 박혀 있는 것에 심적 안정감을 느낀다. 그래서 어디서든 정해진 원리 원칙 규칙을 지키는 것에 엄격하고 선을 벗어나는 행동을 싫어한다.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아내에겐 소비기한이란 것은 유통기한이라는 선을 넘어도 허용이 되는 마치 일탈과 같은 거다. 그래서 눈으로 보았을 때 크게 지장이 없으면 유통기한이 제법 지나도 잘 먹는다. 이런 모습만 보아도 쿨하고 매사에 유도리 있게 행동하는 아내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의 팬케익 믹스 1년짜리는 일탈이 과해도 너무 과했던 나머지 본인 스스로도 네이버 답글을 보고 순순히 인정을 했다.


결국 이날은 야식을 먹지 않았다. 우리는 다음부터 유통기한을 넘기지 않게 미리 많은 음식을 사 두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일정한 소비기한 내에 제품에 문제가 없이 취식할 수 있다면 최대한 먹어 보기로 했다. 유통기한이 지나 버려지는 음식보다 중요한 건 서로의 극과 극의 성향을 좁혀나가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 새삼스레 깨달은 점은 네이버 지식인 아직 살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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