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가짐의 차이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시기였을까, 난생처음으로 가위눌림을 경험했다. 분명 잠에서 깨어났는데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었고, 숨이 멎을 듯이 갑갑했다. 마치 포승줄로 온몸을 포박당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눈앞에는 보고도 믿기 힘든 정체불명의 존재들이 나타났고, 귀에서는 기이한 소리마저 들렸다. 얼마나 안간힘을 썼을까, 굳게 닫혀 있던 몸의 감각들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잠옷과 침대 시트는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순간 이것이 TV에서만 보던 가위눌림이라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엄청난 공포감이 밀려왔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그날 밤은 엄마 아빠가 주무시는 침대 밑에서 남은 잠을 잤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이후로도 며칠간 지속적인 가위눌림과 헛것에 시달렸다.
가위눌릴 때의 환각 증상을 보기 싫어서 베갯속에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 자기도 했고 , 어린 동생을 억지로 껴안고 자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호기심 천국 따위의 프로그램에서 옷걸이로 탐지봉을 만들어 수맥 체크 방법이 소개되었는데, 수맥이 가위눌림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해서 온 집안을 구석구석 수맥파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 쉬는 시간에 잠시 엎드려 잘 때라던지, 친구나 친척집에서도 가위가 눌리는 것을 보고 장소와는 크게 연관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듯 전혀 예측하고 대비할 수 없던 가위눌림을 그저 내 몸이 쇠약하고, 면역력이 약해서 그런 거구나 하며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가위눌림은 점점 익숙해져 갔고 그렇게 공포심도 사라지자 눈앞의 헛것들도 안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이것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닌 단순히 몸은 아직 잠에 들어 있지만 정신은 깨어 있는 수면 장애의 종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환각 증세도 꿈의 연장선이자, 순간의 공포감에 평소 생각하는 공포 클리셰 라던지 본인 인생의 트라우마들이 투영되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나만의 가위눌림을 극복하는 노하우도 생겼고 가위가 서서히 오고 있는 것도 미리 감지해 차단하는 스킬 아닌 스킬까지 갖게 되었다. 가끔 가위눌림을 처음 경험하게 된 친구가 있자면 애송이 취급하며 나의 경험담들을 이야기해주는 여유까지 생겼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잊을만하면 가끔씩 찾아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 있다. 이러한 것들을 해결하고 극복함에 있어서 어떤 자세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임하는 것이 중요한가를 수많은 귀신들을 보고 난 이후에 깨닫게 되었다. 또한 감내한 고통들은 앞으로 생길 문제들을 슬기롭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조금은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와 단순하게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때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결혼을 한 뒤 항상 먼저 잠들어 가위에 눌리는 내 옆에는 폰을 만지작 거리며 무심하게 팔뚝을 툭툭 쳐 가위를 깨워주는 아내가 있다. 아직도 ‘결혼’ 만큼 가위눌림의 좋은 해결 방법은 못 본 것 같다. 그렇게 혼자 안간힘을 쓰던 지난 20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