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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양현 Apr 19. 2024

완독 실패의 연대기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기를 다시 시작하며

완독세미나를 통한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기를 시작한다.

시작하는 1권의 첫 페이지가 지난 3월 말, 거의 10년만에 다시 열렸다.

천천히 내용을 음미하고 완독을 마치면 아마 올해 초겨울 어디쯤이 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복권 1등에 당첨된 누적당첨자들이 이 책을 완독한 이들보다 많을 거라는 농담이 있다. 내 주변에도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이는 단 한명도 보지 못했다. 서울대 불문과 정명환 교수님은 전공이 불문학인데도 나이가 90이 되어서야 비로소 완독을 했다고 고백했다. 하긴 이 책의 발간을 주도한 프루스트의 동생 로베르도 그랬단다. 이 책을 다 읽으려면 다리가 부러지든지, 중병에 걸리든지 둘 중 하나여야 한다고...     


다른 수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못했다. 오늘은 이 책을 완독하는데 실패했던, 나의 잃어버린 시간들을 고백하고자 한다. 그동안 나름 다양한 책들을 꽤나 읽었다고 으스대곤 하는 나에게 이 책은 지금까지도 난공불락이었다. 극악한 난해함으로 난독의 악명이 높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는 다른 의미로 말이다.     


1998년 대학에 입학한 그해. 김창석 선생님의 번역으로 완역된 국일미디어판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처음 만났다. 어찌어찌 꾸역꾸역 1권을 읽어내었다. 하지만 습작영화를 준비하고 찍느라 번번이 다음 권을 읽을 수 있을 시간을 놓쳤고 급기야 입영영장이 나오면서 완독의 기회와 이 책만을 읽어야 할 욕망이 동시에 사라졌다.     


2002년 제대 후 학교로 돌아온 나는, 열화당에서 나온 만화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스완네 집 쪽으로 – 콩브레>를 알게 된다. 소설로는 1권에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극악한 만연체를 다듬고 이미지로 바뀌어 오롯이 곧추 선 문자들을 보면서 책이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혔다. 4년전 소설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 자욱했던 안개가 깨끗하게 걷힌 느낌이었다. 만화책을 읽으면서 소설을 그냥 이런 식으로 읽어야겠다며 내 스스로 타협을 봤다. 하지만 2권이 나온 후로 좀처럼 후속편의 소식이 없었다. 그러자 내 기억에서서도 만화책은 점점 잊혀져갔다.     


2012년. 그렇게 어언 10여년이 흘렀다. 내 나이는 이제 30대에 접어들었다. 그 해 프루스트 전문가인 김희영 교수님이 번역을 한 민음사판 1권이 새롭게 번역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내 실패담이 불쑥 떠올랐다. 나는 충동적으로 1권, 2권을 구입했고 달에 걸쳐 책을 읽어 내려갔다. 한번 읽었던 책이니 10여 년 전 읽었던 내용들이 생각이 날 법도 한데 그동안 내 머릿속은 싹 리셋이 되어있었다. 여러 페이지에 산만하게 흐드러진 문장을 내 머리라는 빗자루로 억지로 쓸고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랄까? 능동과 피동의 독서를 섞어가며  2권을 독파했고 내심 3권을 기다렸다. 하지만 내 인내심과 기억력은 2014년 2월에 나온 3권을 기다리지 못했고 다시 완독은 흐지부지 되었다.     


그 후 작가 프루스트와 그의 산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알랭 드 보통의 책에서... 프랑스의 영화에서 혹은 다른 책의 인용문으로... 대학원 공부를 하기 위한 참고서적에서.... 본인을 잊지 말라는 듯 다양한 모양으로 바뀌며 종종 내 주변을 맴돌았다.     


그렇게 또 10여년이 흘렀다. 이제 나는 40대가 되었고 결혼을 해서 아내라는 동반자를 맞이했고 1년 후엔 딸이 생겼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처럼,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소중한 사람들이 죽거나 멀어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 사이 민음사판이 2022년 겨울 완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충동적으로 완역본 전질을 몽땅 구입해버렸다.


2024년. 나는 다리가 부러지지도, 중병에 걸리지 않았다. 그것이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자격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완독을 처음 시도한 1998년 이후 20년 이상이 훌쩍 흘러버린 지금... 다시 한번 완독을 시도하고자 한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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