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 무렵의 텃밭

구월 텃밭일기 1

by 말그미

가을장마가 길어진 관계로 텃밭 가는 일이 게을러져서 9월 들어선 월요일(9.6)에 처음 가고 목요일인 오늘 9월 9일에 두 번째로 갔다. 월요일엔 비가 좀 내렸고, 오늘은 안개가 자욱했다.

비가 와서 못 나갔던 9월 7일은 마침 절기상 첫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白露)였다. 백로는 처서와 추분 사이의 절기로 대개 음력 8월에 들며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기이다. 백로는 흰 이슬이라는 뜻으로 이때쯤이면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히는 데서 유래한다. 가을의 기운이 완연히 나타나는 시기이다.

백로 무렵에는 장마가 걷힌 후여서 맑은 날씨가 계속된다. 하지만 간혹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과 해일로 곡식의 피해를 겪기도 한다. 농가에서는 백로 전후에 부는 바람을 유심히 관찰하여 풍흉을 점친다. 이때 바람이 불면 벼농사에 해가 많다고 여기며, 비록 나락이 여물지라도 색깔이 검게 된다고 한다. 8월 백로에 비가 오면 대풍이라고 생각한다는데 올 백로엔 비가 좀 내렸으니 대풍이려나? 진짜 그리 되면 좋겠다.

잘 모르는 꽃이름 나무이름을 사진과 함께 올리면 원예전문가들과 일반구독자들이 바로바로 알려줘서 내가 참 좋아하는 앱인 '모야모'에서는 시기별로 씨앗을 팔기도 한다. 8월 말에서 9월 초에 심으면 가을에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버터헤트 상추'씨를 8월 말에 샀다. 텃밭에다 심어서 잘 키워먹어야지~ 하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는데, 가을장마를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어느덧 9월 초가 지나갈 무렵, 마침 텃밭이웃께서 부추를 주신다고 하셔서 오늘 새벽 상추씨도 심을겸 일찌감치 밭으로 나갔다.

아참 8월 초에 심었던 시금치씨와 상추씨는 왠일인지 발아가 되지 않았다. 봄에는 아주 쑥쑥 잘 자라더니만, 여름엔 너무 더웠는지 비가 계속 와서 싹이 문드러져버렸는지 2주만에 갔더니 도대체 흔적이 보이질 않았다. 다만 고라니 발자국만 선명한 게 고라니께서 쏙쏙 다 뜯어드셨는지도 모르겠다.

그 옆에서 잘 자라던 깻잎도 무슨 병이 들어서 잎 뒤에 노란 점박이들이 다 생겨서 뜯어먹을 수 없게 생겼다. 몇 개 따먹지도 못한 가지도 시들시들하고, 방울토마토도 이제 힘을 다했나 매달린 방울이가 몇 개 되지 않았다. 그나마 고구마와 토란이 잘 자라주고 있어서 텃밭 둘러 보는 낙이 있었다.

상추랑 시금치 심었던 자리에 난 잡풀을 제거하고, 버터헤드 상추 심을 자리를 호미로 파서 만든 뒤 열두세 개 정도 씨앗을 하나하나 꾹꾹 심었다. 부디 이 녀석들은 잘 자라서 가을에 맛있는 상추를 공급해주길!

물조리개로 물을 준 뒤 밭을 내려오니, 부추 주신다는 텃밭이웃께서 막 밭에 도착을 하셨다. 아래에 있는 그분 밭으로 졸졸 따라가서 부추를 한 봉지나 얻어왔다. 가을장마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텃밭관리를 하신 덕분에 다양한 작물들이 잘 자라고 있었다. 덕분에 난 귀한 부추를 얻어먹고^^

맞은편에는 개인이 하는 텃밭이 있는데, 나랑 비슷한 시기에 들깨모종을 텃밭 전체에다 심으시더니 들깨가 엄청엄청 잘 됐다. 이 비에도 병 하나 걸린 것 없이 아주 싱싱했다. 이 분은 아무래도 농약을 치시는 것 같던데 아무래도 농약의 힘인가 싶었다.

텃밭이웃 가운데 7월 초에 참깨를 심어서 여름 내내 열심히 가꾸신 또다른 분은 가을장마 중에도 참깨가 다 익어서 베어 말리고 계셨다. 비 올 때는 비닐을 씌워서 비를 피하고, 오늘 가보니 햇빛이 날 때는 비닐을 걷어서 양껏 햇빛을 받게 해놓으셨다.

나는 가지를 집에서 건조기에 말리는 것도 일이던데, 집과 멀리 떨어진 텃밭까지 오가며 쏟으시는 정성이 참 대단하시다. 역시 농작물은 주인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은 진리다.. 한동안 뜸했던 새벽 텃밭 산책을 앞으로는 꾸준히 다녀야지. 버터헤드상추 잘 키워서 먹으려면~^^


받아온 부추를 어머님께서 바로 다듬어주셔서 오징어랑 양파를 더 넣어서 아침식탁에 부추전을 해서 올렸더니 남편이 두 장이나 먹었다. 어지간히 맛있지 않으면 잘 안 먹는데~ 아무래도 맛있는 부추가 들어가서 그런 모양이라며 어머님께서도 맛있게 드셨다. 부지런한 텃밭이웃덕분에 입이 호강이다.

그나저나 부추는 맛도 영양도 좋지만 꽃도 참 예쁘다. 이웃의 다른 밭에 피어 있는 부추꽃과 윤주님의 부추꽃을 올려본다.

아래는 가을장마가 휩쓸고 간 나의 텃밭 ㅜㅜ

버터헤드상추가 자라면 이렇게 해먹는답니다

텃밭에서 따온 가지 말리는 중. 가지차로 이용. 맛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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