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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May 10. 2024

중년은 전투애로 산다

군위 화산산성에서

투닥투닥 싸우며 죽네 사네 하고
내가 왜 너를 만나 이 고생이냐고
악다구니를 하다가도
푸릇푸릇 자라는 자식을 생각하면
그저 한 발 물러서게 되는 게 부부상정.

부부싸움이 칼로 물베기인 것은
서로의 사랑이 깊어서라기보단
자식에 대한 부모로서의 의무이자 책임이
그 사랑보다 더 커서가 아닐까 생각하곤 해요.


50이 넘은 지금도 가끔 사랑싸움(?)을 하며

전투력을 점검하는 알흠다운 중년의 부부는

나이가 들수록 전투애로 다져진 동지간의 의리가 새록새록 깊어갑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나희덕 시인이

중년의 부부라면 한 번쯤 겪었을 일로 

멋드러진 시를 써주셨어요.


읽을 때마다 공감백배여서 올려봅니다.

이 시를 읽고 저처럼 공감하신다면

찐중년 인정합니다^^






< 물소리를 듣다 >


   우리가 싸운 것도 모르고
   큰애가 자다 일어나 눈 비비며 화장실 간다
   뒤척이던 그가
   돌아누운 등을 향해 말한다


​   당신…… 자?……
   저 소리 좀 들어봐…… 녀석 오줌 누는 소리 좀
   들어봐…… 기운차고…… 오래 누고……
   저렇도록 당신이 키웠잖어…… 당신이……


   등과 등 사이를 흘러가는 물소리를
   이렇게 듣기도 한다


   담이 결린 것처럼
   왼쪽 어깨가 오른쪽 어깨를 낯설어할 때
   어둠이 좀처럼 지나가주지 않을 때
   새벽녘 아이 오줌 누는 소리에라도 기대어
   보이지 않는 강을 건너야 할 때


    -  나희덕, 『야생 사과』(창비, 2009)



* 군위 화산산성의 풍경으로 힐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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