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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Apr 26. 2024

그러게~ 왜 맡겼어?

아빠 영구만들기 전문 딸

작년에 아들 고3이라고, 수능 100일 앞두고부터 매일 108배를 하면서 무릎이 맛이 가서 한동안 걷는 것도 힘들 정도로 아프다 보니, 운동을 거의 안 하게 됐어요.

(한창때는 팔굽혀펴기 하루에 100개씩 천일 동안 해낸 적이 있을 정도로 저는 운동을 꾸준히 해왔답니다)


먹는 건 그대로 또는 더 많이 먹으면서

운동은 안 하니 결과는 불 보듯 뻔하죠?

네~ 두리둥실 살이 오르기 시작해서

연말에 몸무게를 재보니 임신 이후 최고의 몸무게가 나왔습져.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올초에 부지런히 병원 다니며 무릎 상태가 좋아져서 다시금 하루 만 보 걷기부터 시작해 꾸준히 운동을 하 조금씩 살이 빠지기 시작하는 게 느껴지더군요. 그 무렵 각종 마라톤을 섭렵해온 지인이 10km 마라톤을 같이 뛰자길래 냉큼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기적의 마라톤 행사는 희귀난치병으로 오랫동안 병마와 싸우시던 마라토너 봉주선수가 홍보대사로 참여하시며 병석에서 일어나 처음으로 마라톤을 뛰되셨어요. 그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옳다구나! 하고 참가를 했답니다.



결과는요?

휠체어를 밀며 뛰는 이봉주선수도 만나고, 뛰다 걷다 하면서 10km 완주하고, 자랑스런 완주인증서도 받고, 참여하면 기부도 된다고 하니 뭔가 엄청 보람도 있고, 살도 좀 빠진 느낌이어서 무쟈게 좋았답니다~^^



문제는 다음이었어요.

같이 뛴 지인 말이 자긴 마라톤 뛰고 나서 몸무게를 재보니까 1kg이 빠져서 좋아했는데, 마라톤 완주 기념으로 그날 저녁에 모임 사람들과 부어라 마셔라 했더니 다음날 바로 2kg이 쪄버렸다고요. '에이 설마~ 나도 그러겠어?' 속으로 자신했답니다.


설마가 사람 잡는 거 아시쥬?

제가 딱 그짝이 났습니다. 마라톤 끝나고 힘들어서 살살 걷기만 좀 하다 말다 하고, 잘 먹었더니 금새 2kg이 늘어서 작년보다 더 높은 인생 최대의 체중을 찍고 말았어요.


남편이 그러더군요.


"너, 요즘 굴러다닌다?어떻게 좀 해 봐~"


그래서 결심했어요. 이 악물고 운동하자!


그때 마침 여성전용헬스장인 '커브스'클럽의 3개월 무료 이용권도 당첨이 되서 잘 됐다 하고선 바로 등록하고 다니게 됐어요.


그러던 며칠 전이었어요.

딸이 알바 마치고 집에 와서 좀 쉰다고 있고, 저는 저녁 먹고 운동하러 나갔다 돌아오니, 집안이 조용한 거예요. 조용하면  뭔가 본능적으로 이상한 생각이 들잖아요? 아니나 달라~? 딸이 저를 보더니 그럽니다.


"엄마, 오늘 아빠 흰머리 뽑아 드렸는데 엄청 많았어요."


"너 또 아빠 영구 만들었어? 하지 말라니까~"


"아빠가 해달라는데 어떻게 안 한다고 해요?"


딸은 2에 아빠 흰머리를 뽑다가 정수리 위에 난 흰머리들을 완전 박멸한답시고 1시간 동안 부지런히 뽑다 보니, 머리에 동전만한 빵꾸를 내서 아빠를 영구로 맹근 빛나는 전력이 있답니다. 딸은 발본색원의 대가랍니다.^^;;


https://brunch.co.kr/@malgmi73/538


안방에 들어가 보니, 남편이 침대에 누워 자고 있더군요. 머리를 만져주면 솔솔 잠이 드는 남편의 성을 알기에 "완전  꿈나라 가셨구만~" 하고 있는데...


꿈나라를 헤매던 남편이 제 기척에 잠시 정신이 들었는지 헤롱헤롱하면서 이릅니다.


"마누라~ 딸이 또 나 영구 만들었어~~ ㅜㅜ"


"그러게~ 왜 딸한테 그런 걸 시켜? 나한테 해달라고 하지~"


"마누라는 운동 가고 없고, 딸만 있으니까 그랬지."


"아니 근데 딸이 그렇게 머리 뽑을 동안 가만히 있었어?"


"졸다가 아파서 아야야~ 하면서 깼다가 또 졸다가 아야~ 하고 깼다가 그랬지."


"참 볼만 했겠네. 코미디가 따로 없었을 텐데 그걸 놓쳤네, 아까비~"



그러게 내 말 듣고 딸한테 머리 맡기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빠 닮아 완벽주의자인 딸의 손에 들어간 이상 영구의 운명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



그래도 어쨌든 딸이 자신의 머리를 영구로 만들어도, 머리카락이 뜯기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자신을 온전히 딸에게 맡기는 남편을 보면 딸 사랑하는 방법이 참 유난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곤 하네요^^



이 초승달이 그믐달 될 때쯤엔 머리카락이 자라 있으려나~^^


* 브런치 응원하기는 여전히 해제중입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요~ 브런치고객센터에 문의한 결과 알게 된 브런지 응원하기 수수료의 진실을 밝힙니다.


https://brunch.co.kr/@malgmi73/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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