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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민재 Mar 17. 2024

이름의 비밀

지속가능한 취미를 찾는 중입니다 - 수필 쓰기 1


내 이름은 당시에 고등학생이던 막내이모가 지어주었다. 남동생의 이름은 할아버지가 집안의 돌림자를 넣어서 지어주셨다고 들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자 자아의 일부분이다. 타인에게 우리는 이름으로 불리 운다. 하루에도 수십 번 이름은 내 귀로 들어와 나라는 사람의 마음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생각난다. 꿈속에서 몸이 뒤바뀐 도시 소년과 시골 소녀가 만들어가는 기적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데 둘은 만난 적이 없다. 이 영화에서 이름은 잊고 싶지 않은 사람, 잊으면 안 되는 사람을 기억해 내는 중요한 단서이다.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자체를 타인이 인식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려고 머리를 굴려봐도 동생의 이름과 내 이름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의 간극을 메꾸기가 어렵다.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초등학생일 때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엄마가 고등학생 나이일 때 돌아가셨다니 엄마는 막내이모에게 언니이자 엄마였을 것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 막내이모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어떤 생각을 하며 내 이름을 지었을까? 자신에게는 없는 엄마가 있는 나를 질투했을까? 아니면 여동생처럼 생각하면서 한 자 한 자에 정성을 기울였을까? 공부를 잘해서 전교 1등을 했지만 대학등록금이 없어서 대학을 가지 못했던 막내이모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갓 태어난 자기 자식의 이름을 고등학생에게 맡겨 버릴 수가 있지? 우리 부모님은 부모님의 눈치를 많이 보는 수동적인 사람이었을까?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에 대한 문화적 관습에 충실한 사람이었을까? 엄마는 남동생을 낳고 아마도 시댁에서 기를 좀 펴고 지냈을 것이다. 부모가 없는 엄마에게 할머니의 관심과 인정은 굉장히  중요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손자들에게만 돌림자로 이름을 지어주신 걸 보면 아마도 손녀들은 존재감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댁에 들어서면 살짝 미소를 머금고 나를 ‘몬순아’하고 부르시던 할머니의 음성이 들린다. 남동생과 나를 차별했다고 엄마에게 이야기하면 엄마는 절대 그런 일 없다고 딱 잡아떼시지만 이름에서부터 드러나지 않는가.




알고 보면 이름은 그 사람에 대한 많은 것을 품고 있다. 돌이켜보건대 내가 나에게 높은 이상을 들이대고 거기에 못 미친다고 못마땅해하던 시절에는 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성스러움과 모범생 같은 반듯함이 물씬 풍기는 이름에서 벗어나고 싶어 중성적인 이름을 스스로 지어 사용해 보기도 했다.   


수필 쓰기 교실에서 첫 수업에 각자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나누었다. 내 이름에 대해 스스로 느끼는 것이 달라졌다는 걸 그때 알아차렸다. 신기하게도 내 이름이 전처럼 싫거나 갑갑하지가 않았다. 아마도 암에 걸리고 회복하는 지난한 과정을 겪은 후 생긴 변화이지 싶다. 살아남기 위해 병을 받아들이고 누군가를 용서하고 감사할 것들을 찾아내느라 들인 시간의 결과이지 싶다.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던 나라는 사람의 틀을 부수고 스스로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그 시간들.




이제는 내 이름이 나의 일부인 어떤 측면을 잘 표현해 준다고 느낀다. 사실 나는 단정하고 반듯한 사람을 좋아한다. 유연하고 순발력 있는 사람도 좋아한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 좋고 내 이름이 그런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좋다.


이름 때문에 내 정체성 안에 민첩함과 단정함이 스며들었는지, 내가 타고난 기질이 그렇기에 운명처럼 막내이모가 한자옥편에서 그 두 가지 한자를 골라 들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지금은 그 이름이 내게 잘 어울린다고 느껴진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름은 자아의 일부이다. 자아인식의 변화가 이름에 대한 감정적인 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개인의 특성과 상황에 따라서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지는 다양할 것이다. 이름을 바꾸고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는 사람이나 이름을 바꾸고 자신감이 커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아와 이름 둘 중에 어떤 것이든 먼저 바뀌면 남은 것은 그 변화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이름이 가지고 있는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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