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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 괴롭힘 증거 수집법

상사가 이유없이 괴롭힐 때

by 젠틀LEE





세상은 늘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차 소리,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앵커의 목소리, 그리고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맴도는 사람들의 이름들. 우리는 무언가를 채우려는 본능에 이끌려 살아간다.


집은 물건으로, 일과는 과제로, 그리고 관계는 사람들로 가득 채운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이 내게 진정한 평화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인생을 한 편의 이야기로 보아왔고, 그 이야기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늘 단순함 속에 숨겨져 있었다.


2011년 7월 8일 금요일.

사무실은 무더위 속에서도 차가운 전쟁터였다.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햇살은 먼지로 흐릿했고, 에어컨 소리마저 적의 숨소리처럼 쉭쉭 거리며 들렸다.

나는 그런 냉혹한 공간에서 3년째 몸부림치는 평범한 사원이었다.


내 바로 앞에 앉은 상사 경민은 40대 후반의 포식자였다. 그의 회색 정장은 권력의 갑옷이었고, 매일 아침 9시 정각에 내 책상 위에 쌓이는 보고서 더미와 호출은 나를 짓누르는 쇠사슬이었다.


“어제 준거랑 오늘 주는 거 이건 야근이라도 해서 내 앞에 가져와~,” 그의 목소리는 독사의 쉭쉭거림처럼 날카로웠고, 그의 눈빛은 내 영혼을 하염없이 찔러댔다. 처음에는 다정한 말투로 하나하나 시키기 시작하더니 이내 나를 쇠사슬로 옭아맸다.


나는 그의 부하로 살아남기 위해 숨을 죽였지만, 어느 날 내 가슴이 터질 듯 아파왔다. 이 관계의 무게가 나를 삼키고 있었다.


나는 그를 처음 만난 날을 잊을 수 없다. 대면식에서 그는 한 손에 내 이력서를 훑어보고는 말했다.

“네가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내 말을 잘 따라야 해.” 그 순간부터 나는 그의 그림자 속에서 살았다.


야근은 기본이었고, 가족과 밥을 먹고 있던 주말 점심에도 갑작스러운 그의 호출에 매번 응해야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손이 떨리고, 내 목소리가 잦아드는 것을 느꼈다.

나는 깨달았다. 이 관계는 나를 파괴하고 있었다.


2년 먼저 입사한 선배 현철은 경민의 충성스러운 사냥개였다.

그는 경민의 차를 몰아주고, 그의 분노를 잠재우는 역할을 자처했다.

밤늦게까지 보고서를 손질하며 그는 경민의 신뢰를 얻었다.

하지만 지난해, 그의 눈이 붉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그 자식은 나를 사람으로 안 봐,” 어느 날 술자리에서 그가 이를 악물고 속삭였다.


현철선배와 나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경민의 터무니없는 명령을 하나하나 이행해 나갔다.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서로의 눈을 보며 더 이상 허기가 느껴지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만이 소리 내 울었다.


그러던 겨울이 시작되었을 무렵 사무실에 커다란 파란 박스를 들은 정장 입은 사람들이 쳐들어왔다.

그들은 경민의 자리로 가서 컴퓨터 본체와 따로 사용하는 노트북 그리고 중요문서가 적힌 파일, 수첩들을 모두 수거해 갔다.

사무실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멍한 눈으로 그것을 지켜봤다.


그때 담배를 피우다 말고 얼굴이 붉어진 경민이 사무실로 씩씩거리며 들어와 말했다

"뭐 하는 겁니까?!!"

파란 박스를 든 정장 입은 사람들은 경민의 모든 것을 가져가며 말했다.

"제보가 들어왔는데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나와 현철선배는 경민의 폭언과 억압 그리고 부당한 대우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가 사내업체 및 외부 업체와 거래할 때 부당한 돈을 받았던 사실과 그로 인해 업체들의 편의를 봐준 것들을 낱낱이 기록했다.

그의 폭언을 녹음하고, 다른 동료들에게도 그에게 당한 일들을 기록해 달라로 요청했다.

우리는 조용히 서로를 지켰다.




버텨야 하는 기준과 때려치워야 하는 기준이 있다.

내가 무언가를 배우려 하고, 그 일의 부족함을 이해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

부끄러움이 동반되어야 비로소 성장할 때는 버티는 게 맞다.


그러나 내가 나를 갉아먹으면서 타들어가고, 손이 떨리고 전화벨만 들어도 심장이 떨리는 느낌이 든다면 그때는 둘 중에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

내가 때려치우거나, 그 상황을 타개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끝까지 참고 버티는 것은 자신과 가족을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바쳐 하루하루를 갉아먹는 것이다.

당신은 언제나 당신의 편에서 스스로를 지킬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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