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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Sep 15. 2021

써야 하는 돈이 보여준 동네

재난지원금을 받고서야 동네 빵집과 서점이 보였다

작년(2020)에는 재난지원금을 받자마자 안경을 바꿨다. 나는 심각한 수준의 고도근시라서 안경 한 번 바꾸는 데에도 만만치 않은 재정적 각오를 해야 하는데, 스미듯이 찾아오는 시력 악화에 당장 쓰고 있는 안경을 바꾸지는 않게 되는 법이라작년 그때까지 그냥 대충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올해(2021)는 지원금이 나오자마자 엄마가 카드를 빌려 치과에 가시더니 시린 곳 두 군데를 레진으로 때우고 스케일링을 한 뒤 족발을 사왔다. 사람들이 지원금을 받으면 ‘적당히 참고 살아도 안 죽는 것’에 돈을 쓴다더니, 우리집이 딱 그랬던 셈이다.

이 사실을 절실히 느껴보니 영 씁쓸한 심정이었다. 안경도 제때 바꾸면 잘 안 보일 일 없이 편안하고 이도 제때 치료하면 시릴 일이 없거나 치료를 더 간단히 할 수 있었을 텐데, 25만원이 없거나 25만원을 쓰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만한 여유가 없거나, 혹은 그냥 참는게 습관이 되어 대충 버티고들 살았던 것이다.

한편 나는 지원금이 나온 날 저녁에 러닝을 하러 나갔다. 집을 나서자마자 비가 추적추적 쏟아졌다. 돌아서자니 개운치 않고 맞으며 뛰자니 부담스러운 비였다. 나는 결국 우산을 쓰고 뛰는 것도 아니고 빠르게 걷는 것도 아닌 애매한 운동을 개시했다. 적당히 이겨낼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자면 영혼 곳곳에 스며드는 일상의 고통처럼 느껴지는 비였다. 나는 친구 둘이서 집 사서 같이 사는 것도 그럭저럭 괜찮다는 내용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두어 바퀴를 뛰다가 걷다가, 타인의 소소한 행복이 너무나 멀고도 아름다워보여 마음이 지친 나머지 운동을 그만두었다.

그런데 그대로 돌아가자니 아무래도 울적하고 나온 보람도 없는 것 같아서, 기왕 나온 거 동네 빵집에 갔다. 검색해보니 생긴지 3년도 넘었다는데 여태 한 번을 가지 않은 곳이었다. 빵을 반쯤 주식으로 삼을 정도면서 왜 동네 빵집을 가지 않았느냐? 물론 돈 때문이다. 대형 할인매장에서 싸게 잔뜩 사서 쟁인 빵만 먹으니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끼니만 해치우면 편하고 싼 게 제일이라는 식으로 밥 하나 국 하나만 계속 먹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나는 공돈을 갖고도 빵집 앞에서 한참 시간을 보냈다. 이 빵집 평판이 어떤지 메뉴가 어떤지 찾아봐야 했던 탓이다. 실패하지 않으려는 오랜 습관을 떨쳐내지 못한 셈인데, 크게 열린 문 앞에서 우산을 들고 애매하게 시간을 죽이는 것도 할 짓이 아니다 싶어 그냥 들어갔다. 주인은 과장 없이 적당한 반가움을 담아 인사했고, 나는 밥으로 먹을 만한 메뉴를 찾아 봤다. 애초에 작은 가게라 빵은 딱 대여섯 가지였다. 나는 어제 팔고 남은 빵을 포함해서 빵 세 덩이를 골랐다. 값은 만 원 정도. 순간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금방 지워버릴 수 있었다. 그럴 수도 있지, 아무렴 어떠랴. 빵은 다음날 점심부터 이틀을 먹었고, 다음부터 가끔 사먹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재난지원금이 막 나눠지기 시작했을 때, 인터넷에서 돈 쓸 곳이 없다고 욕하는 사람들을 욕하는 글을 봤다. 돈 쓸 곳이 없다는 사람들은 인터넷, 대형 마트, 프랜차이즈에서 받지 않는다고 불평했고, 이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동네에 소규모 점포가 많은데 그걸 찾지 않는 게으름을 개탄했다. 내가 보기엔 둘 다 잘못된 소리가 아닌데, 종합하자면 우리가 간편하게 대기업 상품 사는 데에 무섭도록 길들여져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게 게을러서는 아닌 것 같다. 하루 한 번 설거지 하기도 힘든 사람들이 널려 있는 시대인데,  느긋하게 걸어다니며 새 점포도 구경하고 맛이 어떨지 예상하기 힘든 음식도 시험 삼아 사먹는 여유를 부릴 수 있을 턱이 없지 않은가.

지원금을 받고 며칠 지난 금요일에는 피로와 고민이 심했다. 모기 때문에 잠을 설쳐 몸이 아주 괴로웠고, 소설에 써먹을 적당한 설정이 떠오르지 않아서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학대해야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도저히 못참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방을 들고 집을 뛰쳐나갔다. 걷다 보면 뭐가 생각날 때도 있고, 생각은 나지 않더라도 기분은 좀 나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으로 몇 걸음 걸으려다 문득 동네 서점 생각이 났다. 얼마 전에 근처에 작디작은 서점이 하나 생겼는데, 책 한 권 산 뒤로 안 간지가 제법 되었다. 찾는 책이 거기 없더라도 입고를 요청하면 곧 살 수 있고, 그러면 재난지원금도 쓸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전자책과 도서관을 애용하는 습성 때문에 선뜻 갈 수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는 것도 좋지만 좋아하는 물건이 있는 공간에서 잠시라도 시간을 보내고 타인과 간단한 말 두어 마디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닫혀 있을 때가 많았던 서점은 다행히 열려 있었다. 나는 종종 내 동선을 바꿔놓을 정도의 매력이 있는 그 공간에 들어가서, 예전부터 내 시선을 잡아끌던 책을 집어들고 뒤적였다. 다른 곳 같았으면 도서관에 없는지 검색해 봤겠지만, 이번엔 그런 짓은 하지 않고 곧장 사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책 두어 권을 더 구경하고, 괜히 그 사랑스러운 공간을 둘러보고, 전부터 살까말까 고민하며 장바구니에만 넣어뒀던 책 두 권(곽재식의 아파트 생물학, 그럴수록 산책)을 주문해달라고 부탁했다.

서점 주인에게 책을 들여달라고 메모를 남기는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사장님은 월요일이면 올 거라고 주문을 받고, 책을 계산하고, 비타민 알약을 한 판 넣어줬다. 이렇다할 대화를 한 건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정신이 좀 맑아지고 좋은 일이 다가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쓸 수 있는 돈을 쥐고 탐나는 물건을 뒤적이다 뭘 사기도 하고 물건을 들여 달라고 주문을 하기도 해서 그런지 부자가 된 느낌도 들었다. 생각나지 않던 소설의 설정은 걸어가는 동안 떠올랐다.


잊고 있었는데, 나의 생활 반경에서 잠시 멈춰서 볼 가게가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대기업이 아닌 소상공인 점포를 이용한다는 것은 금전적으로 보면 불합리할 수 있다. 하지만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과 거래한다는 기분은 때때로 그런 금전적 단점을 이길 만도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냄새가 나는 소상공인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각박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지혜…… 이런 소리를 하자는 건 아니고, 어떤 상품을 누가 만들거나 골라서 전시하고 파는가, 그 사람은 어떤 취향과 주관으로 공간을 구성했는가 감상하는 것은 직접 가서 즐길 만한 기쁨이라는 뜻이다. 작은 점포를 잘 알게 되는 일에는 타인을 잘 알게 되는 일의 소박한 행복이 존재한다.

다만 이 즐거움을 새삼 떠올리는 데에 정부가 부여한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돈’이라는 강력한 동기가 작용했다는 사실은 여간 씁쓸하지 않다. 삶을 더 낫게 만들고자 하는 노력들이 삶을 더 납작하고 답답하고 옴짝달싹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눈 옆을 가리고 당근을 쫓아가는 말처럼 뛰어다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고의 억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타인의 조그만 가게에 다니며 문득 깨달은 것 같다.



*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은 본작,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도 아까운"이 개정되어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 – Daum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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