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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Sep 29. 2021

중고책과 하지 않는 게 나은 환경 보호

온라인 서점인 알라딘에서 200원이 입금되었다. 뭐지? 무슨 이벤트나 적립금인가? 의아해서 내역을 확인해 보니, 중고 서적 판매 정산금이었다.

아니, 책을 판 것은 맞는데 대관절 어째서 고작 200원만 쳐준단 말인가. 상세 내용을 살펴봤다. 내가 택배로 판매한 책은 10권 가량. 그런데 책에 낙서가 있거나 침수 자국이 있어서 폐기한 게 대부분이고, 값을 쳐준 것은 딱 두 권이었다. 알라딘은 만 원 이상의 책을 편의점 택배로 판매하면 택배비를 천 원만 받는데, 두 권 합쳐서 고작 2700원이라 택배비 1000원이 아닌 2500원을 제하고 200원만 입금된 것이다.

그동안 잡다한 저작물을 팔면서 너무나 사소한 금액만 정산받아 충격받은 적이 제법 되지만, 그래도 이번 200원은 상처가 나름대로 각별했다. 그야말로 내가 하등 쓸모없는 짓을 했구나 싶어 회한마저 느꼈다. 책 상태가 안 좋으면 그럴 수도 있는 법인데 가볍게 웃어넘길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이번에 판 책들은 사실 대부분 굳이 '주워온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러닝하면서 아파트 단지를 돌다 보면 종종 버려진 책 더미와 마주칠 때가 있는데, 책을 밥 비슷하게 보는 나로서는 멀쩡한 책이 버려지는 게 안타까워 그런 책 더미를 발견할 때마다 무슨 책이 버려졌나 한참 진지하게 살펴보곤 한다. 누가 무슨 책을 버렸나 궁금한 마음이 반, 뭐라도 건질 게 없나 싶은 마음이 반쯤 된다.

그런데 이렇게 버려지는 책들은 대부분 버려질 만한 것들이다. 십중팔구 어린이용 그림책, 동화 전집이나 30년쯤 된 듯한 전문 교재 따위고, 내가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 볼 만한 소설책이나 교양서는 아주 드물다. 다들 이런 책은 버리지 않거나, 애초에 사지 않거나, 혹은 중고로 팔아치우는 모양이다. 덕분에 지금껏 주워와서 읽은 책은 서너 권밖에 되지 않는다. 모바일 게임계의 뽑기보다 성공 확률이 낮은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에 러닝을 하다 발견한 책더미는 제법 내용이 괜찮았다. 대체로 경제학쪽 입문서였는데, 내가 읽고 싶진 않아도 그냥 버리긴 아까운 것들이었다. 주워다 팔아도 괜찮겠다 싶었다. 돈이야 몇 푼이나 받겠냐만, 멀쩡한 책을 폐기하느니 그대로 다시 활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게 환경을 위한 작지만 큰 한 걸음이 아니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하여 다음날 아침, 나는 커다란 쇼핑백을 갖고 나가서 눈여겨 봐둔 그 책들을 주워왔다. 하필이면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서 우산을 쓰고 옮기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는데, 포기할 정도로 빗줄기가 굵지도 않았다.

물건을 집으로 가져온 뒤의 작업은 익숙했다. 그동안 팔아치운 책들이 제법 되니까. 일단 시작은 상태 확인. 대강 봐서 버릴 수밖에 없겠다 싶은 책을 골라낸다. 그다음은 바코드 스캔으로 검색하기인데, 유념할 점은 매입이 원활히 이루어지는 온라인 중고서점이 알라딘과 예스24 두 곳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스마트폰 두 개에 각각의 중고 서점 앱을 띄워놓고 책 한 권을 두 번 스캔하는 게 요령인데, 매입가는 상황에 따라 다르므로 바코드를 찍을 때마다 책을 어디에 팔지 결정해서 분류하게 된다.

이 작업까지 끝난 뒤에 할 일은 물론 박스를 구해서 포장하고 발송하는 것이다. 보통 지정 택배사를 집으로 부르면 싼데, 박스를 집에 쌓아두기 싫어서 손해를 감수하고 근처 편의점으로 가서 맡기곤 한다. 이번에도 그렇게 했다. 우산을 쓰고 묵직한 박스를 겨드랑이에 낀 채 편의점까지 찰박찰박 수십 미터를 걸어가 택배를 접수한 것이다. 보통 이러면 돈이 생겼다는 기쁨보다는 책장이 좀 깔끔해졌다는 기쁨이 크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버려진 책을 주워온 터라 몇 푼이나 벌자고 시간 버려가며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후회가 더 컸다. 그래도 이미 저지른 일이고, 돈을 벌긴 번 셈 아닌가. 나는 기왕 편의점에 오기도 했으니 과자라도 사가자 싶어 3000원어치  과자를 사서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그런 복잡한 프로세스의 결과가 200원 정산이었으니, 결과적으로 안 해도 될 짓을 해서 시간도 버리고 2800원도 버린 셈이었다! 과자를 산 것이야 헛돈을 쓴 건 아니니 완전히 손해는 아니겠으나, 편의점에 가지 않았더라면 100퍼센트 쓰지 않을 돈이긴 했다. 삽질 중의 삽질이었다. ‘재활용과 환경 보호’ 같은 명분을 대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푼돈이라도 줍자는 발상이 더 강한 동기였으니, 하찮은 욕심을 냈다가 괜히 손해만 봤다는 우화로도 손색이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 바보짓이 나 한 명의 삽질로 끝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놔뒀으면 폐휴지를 수거하는 분이 잘 가져가거나 전문 업체에서 한꺼번에 처리했을 테니 재활용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굳이 그걸 중고서점까지 운송해서 버리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택배 기사도 괜히 무거운 짐을 날랐고, 서점 직원도 못 팔 물건을 굳이 확인하고 전산 처리하게 되었다. 나의 멍청한 결정으로 얼마나 많은 탄소가 발생했을지 상상해보면 입안에 쓴맛이 돈다. 요즘 환경을 생각하는 상품을 사라고 유혹하는 마케팅으로 아예 만들어 팔지도 사지도 않는 게 환경적으로 명백히 이득인 에코백, 텀블러 따위를 내세우곤 하는데, 이것도 안하느니만 못한 환경보호 활동 사례집에 추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을 지키려면 일단 좀 영리해져야 할 모양이다.

내가 한 행위나 내가 산 상품이 정말 환경에 이로운지 계산하기는 의외로 어려운 편


그러나저러나 버려지는 책들이 아깝다는 생각은 여전히 자주 드는데, 그런 생각이 아주 궁상스럽거나 이상한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나만해도 요 몇 달 사이에 팔기 귀찮아서 그냥 폐지로 버린 책이 제법 되는데, 그때마다 어디 기증을 하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가치가 어느 수준 이하로 떨어진 책들이 마구 택배로 기증되면 내가 저지른 것과 같은 바보짓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으니, 동네마다 기증 도서 책장 같은 것을 비치해서 일정 기간 방치된 책부터 처분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면 괜찮지 않을까? 공공도서관에서 이미 엇비슷한 창구를 마련해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일은 가까이서 편하게 할 수 있어야 이용률이 높을 것이다.

다만, 막상 잘 생각해보면 또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누가 책임지고 공간과 설비를 마련하고 관리한단 말인가? 그리고 그 비용을 그냥 환경 보호에 쓰는 게 나을 수 있지 않나? 결국,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버릴 책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예쁘게 버려놓고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겠거니 생각하는 것 정도다. 그리고 한 가지 더하자면 괜한 욕심에 보지도 않을 책을 집어다 멀고 먼 중고 서점에 팔려 하는 바보짓을 하지 않는 것. 괜찮은 책 여러권을 한번에 파는 것이야 환경에도 재정에도 도움이 되겠으나, 상하거나 마음에서 멀어진 책이 버려지고 그것이 새 주인을 찾지 못해 책의 형체를 잃어버리는 일은 그저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은 본작,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도 아까운"이 개정되어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 – Daum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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