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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Aug 10. 2022

아껴쓰려던 폰을 거의 죽일 뻔하고

더 잘 살아보려는 노력이나 뭘 더 아껴보려는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 것도 모자라서 모든 것을 다 망쳐버린 경험이 있으신지? 나는 좀 과장하면 평생을 그렇게 꼼꼼이 망쳐왔는데, 이런 꼬락서니의 가장 큰 문제는 남탓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맛있는 카레를 다 해놓고 ‘와사비를 추가하면 더 맛있지 않을까?’ 같은 혼자만의 멍청한 생각에 사로잡혀 와사비를 한 컵 들이부음으로써 저녁 식사를 완전히 망쳐버리는 식이다. 하질 말든가 아니면 좀 잘 알아보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누구를 탓한단 말인가?

최근에는 아주 또렷하고 누구에게나 잘 와닿는 바보짓을 했다. 나는 LG G8을 쓰다가 석 달쯤 전에 갤럭시 S10E로 스마트폰을 바꿨는데, 기기를 바꾸자마자 주문한 강화유리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S10E도 G8과 마찬가지로 화면이 거의 평면이지만 끝부분에 살짝 곡률이 들어가는 통에 어지간한 강화유리는 테두리에만 접착면이 있고, 그밖의 부분은 살짝 떠있는 게 보통인 듯했다. 화면에 그놈의 곡률 좀 안 넣으면 안될까, 환경 보호를 위해 법으로 금지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아무튼 당장 도움이 되는 생각은 아니니까, 나는 UV경화식 강화유리를 주문했다. G8에도 잘 붙여서 만족도 높게 사용 중이기 때문이다.

이 UV부착식 강화유리에 대해 짧게 설명하자면, 화면에 부착 용액을 떨어뜨리고 강화유리를 얹어 공기를 다 빼낸 다음 자외선 조사장치로 자외선을 쏘면 부착 용액이 끈적하게 경화되어 강화유리가 빈틈없이 붙는 제품이다. 깔끔하게 공기를 빼내고 부착하는게 어렵긴 하지만 일단 부착에 성공하면 강화유리가 완전히 밀착되어 아주 매끈하고 화면 반사율이나 밝기에서도 손해를 덜 본다는 장점이 있다. 가운데가 들뜬 테두리 부착식 강화유리는 아주 밝은 곳에선 거울처럼 반사가 아주 심하기에 나는 지금(한여름)이야말로 UV부착식 강화유리를 쓰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예전에 쓰던 G8은 수화부 스피커가 화면 진동식이라 스피커 구멍이 없었기에 용액을 도포하는 게 아주 쉬웠다. 그에 비해 평범하고 보편적인 모양으로 수화부 스피커 구멍이 달린 S10E는 이것을 막기가 아주 어려웠고, 이런저런 고군분투 끝에 부착을 마쳤더니 수화부로 들리는 소리가 좀 먹먹하기도 하고 째지기도 했다. 강화유리가 너무 위에 붙은 데다 굳어진 용액 일부가 구멍을 막은 게 문제인 듯했다. 소리가 아예 안 들리는 것은 아니라 일단 몇 주를 그 상태 그대로 썼는데, 아무래도 나는 스마트폰으로 팟캐스트 듣는 게 낙인지라 결국 공포감 속에서 강화유리를 떼고 그릴을 잘 닦아보았다. 그랬더니 아주 멀쩡해지는 게 아닌가!

나는 한시름 놓고 스마트폰을 대충 쓰기로 작정했다. 케이스를 안 씌운 것도 아니고, 중고로 사서 자잘한 흠집은 이미 많으니 돌바닥에 떨어뜨리지만 않으면 딱히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이나 화면에 아무것도 붙이지 않는게 화질면에서는 가장 좋기에 그런 생폰 생활은 썩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일상 생활을 하는동안 미세한 불안감이 서서히 몰려왔다. 스마트폰을 대충 던졌다가 보이지 않는 플라스틱 조각 같은 것에 찍히거나 런닝할 때 아스팔트에 미끄러지면 화면은 그날로 끝장이라는 불안감이 은근히 마음을 괴롭혔다. 어지간한 전자제품은 중고로 사고 쓰던 것은 또 중고로 처분하는 생활이 예전부터 기본이라 돈 생각을 하면 화면을 보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어느 유명 메이커의 강화유리를 할인하는 김에 주문했는데, 사서 뜯어보니 이것도 테두리 부착식이라 전에 쓰던 것과 다를 게 하나 없었다. 가운데는 들뜨고 반사는 심했다.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아직 하나 남아있던 UV부착식 강화유리를 꺼내서 심호흡하고 부착을 다시 시도했다. 스티커로는 스피커 보호가 잘 되지 않기에, 이번에는 지우개가루를 뭉쳐서 막아보았다. 내심 천재적인 방법이라 생각하면서.

이미 몇 번이나 해본 일인데다 그럴듯해 보이는 방법까지 떠올려서 너무 방심한 탓인지 부착 결과는 최악이었다. 화면에 기포가 남은 것도 모자라서 수화부 스피커에서 째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이번에도 그릴을 잘 닦으면 괜찮아지리라 생각하고 알코올 솜과 목공용 풀, 글루건 등 오만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그릴의 이물질을 뜯어냈다. 하지만 소리는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날부터는 볼륨 버튼이 먹지 않기 시작했다. 부착 용액이 안으로 흘러들어가 모든 것을 망치고 있었다.

처음 실패하고 강화유리를 뜯어냈을 때 포기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두 번째로 강화유리를 주문하는 대신 평범한 PET 필름을 주문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근본적으로 내가 작업을 부주의하게 한 탓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기 변호를 하자면  스마트폰의 방수 기능을 믿고 있었다는 게 내가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서 더 나아질 수 없는 지점이었다. 물보다 점도가 높은 부착 용액이 스마트폰 내부에 침투할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이 부착 용액은 기름 같은 성분이 있어서인지(불확실하다) 다른 접착물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특성이 있는 듯했다. 그리고 스마트폰의 방수 실링은 보통 접착제로 이루어진다. 부착 용액이 스미기 시작하면 스마트폰은 무방비인 셈이었다.

화면에 유리 한 겹 덧붙이고 살짝 맛이 가버린 스마트폰을 이대로 계속 써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째지는 소리가 신경 쓰여도 통화가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고, 스피커 좌우 밸런스 조절을 해서 하단부 미디어 스피커만 쓰면 소리를 아주 못 들을 지경은 아니니까 그렇게 그럭저럭 바꿀 때까지 쓰면 괜찮을 수도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볼륨 조절이 어려운 상태는 참고 쓰기 힘들었다. 나는 일단 물어나 보기로 하고 서비스 센터로 가서 사정을 대강 설명했다.

그런데 기사의 진단 결과는 내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수화부 스피커는 거의 죽었고, 볼륨 버튼의 고무는 다 떨어졌으며, 심지어 뒷판까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깨가 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척추에 금이 갔고 대동맥류가 있다는 격이었다. 게다가 정작 고치고 싶던 수화부 스피커는 화면에 붙어있는 것이라 화면까지 한꺼번에 교체해야 한다고 했으며, 심지어 안에 묻은 용액을 닦아내다 메인보드가 죽을 수도 있으니 동의서를 써야 한다 했다. 멍해질 지경이었다. 나는 일단 볼륨 버튼과 뒷판만 고치기로 예약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수화부 스피커를 스스로 고칠 수 없나 찾아봤는데,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부품 직구도 해야 하고 분해 과정도 복잡해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런 작업을 할 기력이 없었다.

나는 다음날까지 이리저리 검색을 하고 돌아다니다 한강 건너에 있는 사설 수리점에 문의했다. 거기선 스피커도 따로 교체할 수 있다기에 천만다행이라 생각하고 찾아가서 수리를 맡겼다. 사장은 아무거나 다 고쳐보기로 잔뼈가 굵은, 영화 속의 베테랑 기술자처럼 시원스럽게 스마트폰을 받아들고 금방 수리를 마쳤다. 심지어 UV부착식 강화유리도 말끔하게 새로 붙여주었다. 수리비는 총 6만원. 사설 수리에서 방수 실링은 한계가 있다지만 이 정도면 그럭저럭 교훈으로 생각하지 못할 것도 없는 가격이었다. 그렇게 화면 보호용 강화유리를 둘러싼 나의 삽질과 출혈은 끝…….난 줄 알았다.


스마트폰을 사고로 박살내보면 억울하긴 하지만 비참하진 않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수리를 마치고 몇 시간 지나서 보니 뒷판이 다시 벌어진 상태였다. 수리점에 연락해보니 그건 좀 이상하다며 다시 오면 봐주겠다고 했다. 나는 당장 가보려다가 시간상 주말로 미루고 하루를 대충 버텼다. 그리고 다음날, 일단 공식 서비스 센터로 갔다. 실링만큼은 공식 센터를 믿는 게 낫기 때문이다. 다만 사설 수리를 하면 공식 서비스센터는 다시는 수리를 안 해준다는 얘기도 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었다며, 제발 이것만 고쳐달라고 통사정을 해보고, 안 되면 사설 수리점에 다시 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기사는 내 생각과 동떨어진 진단을 했다. 배터리가 부풀었다는 것이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침수 때문에 흔히 있는 일이니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부푼 배터리를 방치하고 대충 밀봉만 하는 건 폭탄을 주머니에 잘 쑤셔넣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선택지가 없었다. 교체를 부탁했다. 비용은 4만원 가량.

그리하여 나는 3일에 걸쳐 10만원이나 들여 강화유리 한 장을 깨끗이 붙인 셈이었다. 배터리를 바꾸긴 했으나 원래부터 배터리 상태는 좋았으니까, 바꾸지 않고 대충 써도 되는 일이었다. 중고가 15만원에 구한 스마트폰 수리에 10만원이 들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포기했으리라. 그리고 25만원이면 조금만 더 보태서 훨씬 나은 모델을 구할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하니 영혼이 비명지르는 것 같았다.

삶을 더 낫게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삶을 어떤 방식으로 파괴하는가? 10만원이야 따지고 보면 잃어버렸다고 땅을 치고 후회할 돈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해본다고 해본 노력이 완벽한 역효과를 일으키는 것을 체험하고 나니 무슨 노력이라는 것을 해볼 의욕이 생기질 않는다. 흔히 ‘인생이란 걸음마를 배울 때처럼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아가는 것’이라거나, ‘비싼 수업료를 치렀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식으로 실패에 대한 위안을 얻곤 하는데, 그런 관점의 전환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최소한 한 번 주저앉았다가 일어날 시간은 필요하다. 10만원짜리 좌절에는 10만원에 합당한 시간이, 1억원짜리 좌절에는 1억원에 합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다행히도 이번에 내가 겪은 10만원짜리 실패는 어찌저찌 안 하는 게임들을 팔아치워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결코 피할 수 없을 더 큰 실패 앞에서 내가 쓰러졌다 일어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암담할 따름이다. 아마 그런 여유를 확보해두기 위해서 다들 필요 이상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겠지……라는 생각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끔해진 스마트폰을 볼 때마다 떠올리게 된다.

*추신: 나중에 알고 보니 스마트폰은 말끔해지지 못했고, 삼성페이의 마그네틱 카드 결제 방식이 고장나서 메인보드 교체 외에 수리 방법이 없게 되었다.



*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은 본작,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도 아까운"이 개정되어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 – Daum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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