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인가 뒤통수 세 곳에 화농성 여드름이 생겼다. 뒤통수에 여드름이 나는 건 상당히 드문 일이지만 아주 없는 일도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이것들을 짜내고 난 뒤로 상처가 크게 난 탓인지 작은 딱지가 앉았다. 여기부터가 문제였다. 원래 왼손을 가만두지 못하고 여기저기 잡아뜯는 버릇이 있었던지라 이 딱지들도 아물만 하면 긁어서 뜯는 게 습관으로 자리잡고 만 것이다.
상처에 약을 바르고, 긁는 걸 참고 버티다 나도 모르게 긁어서 또 뜯고 다시 참고…… 이런 식으로 2.1보 전진 2보 후퇴 같은 상황이 1년 이상 반복되었더니, 어느날 어머니가 내 뒤통수를 보고 빨갛게 된 상처 부분에 머리카락이 없다며, 그러다 탈모가 되겠다고 당장 피부과에 가라고 했다. 내가 긁어서 그렇지 놔두면 나을 텐데……라는 생각은 했지만, 사진으로 찍어서 보니 확실히 걱정스럽긴 했다. 상처가 오래도록 자리잡은 동안 모공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법했다. 그리고 머리카락 한 올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주변을 보면서 점점 깊이 느끼는 중인 데다가, 이뤄놓은 것도 가진 것도 한줌 밖에 안 되는 마당에 머리카락까지 잃어선 안되겠다 싶어서 결국 피부과에 갔다.
어머니가 몇 번 가 보셨다는 피부과는 아주 작은 동네 병원으로, 갈색 계통으로 꾸며진 정사각형의 대기실에 접수처와 진료실, 치료실 둘이 딸린 곳이었다. 누추하진 않지만 일부러 꾸며낸 듯이 검박한 병원이라 영화 매트릭스에 모든 진실을 아는 현자가 은거한 곳으로 나올 법한 느낌이었다.
잠시 기다리다 이름이 불려 진료실에 들어가니 나이가 지긋한 원장님은 확대경으로 뒤통수를 보곤 3초만에 ‘지루성 두피염’이라는 진단을 했다. 체질이나 머리를 잘 말리지 않는 습관 등으로 생기는 것이니 지속적으로 약을 먹고 바르라는 처방을 받아 병원을 나섰다. 심각한 병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살던 대로 문제 없이 살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싶었다. 살던 대로 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종종 자기 상태를 돌아보며 생활 습관도 조정해야 하는 것인데, 그런 점검을 너무 생각도 않고 살았던 모양이다.
이후로 먹는 약도 챙겨 먹고 바르는 약도 바르고 전용 샴푸도 쓰면서 2주쯤 지나자 가려움도 거의 사라지고 상처도 많이 아물었다. 빨리 낫지 않으면 돈이 또 나간다는 생각이 습관을 억눌러준 것인지 머리를 긁는 버릇도 대체로 사라졌으니, 병원을 좀 일찍 갈 걸 그랬나 싶다.
그런데 그렇게 두피염을 치료하며 지내던 하루는 오른쪽 어깨가 영 편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힘을 쓰면 가벼운 통증이 느껴지고 이물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6월에 회전근개 문제로 치료를 받고 많이 나아져서 산책할 때 팔 운동을 했더니 문제가 도진 것이다. 이대로 지내봐야 나아질 게 하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체험했기에 곧바로 병원을 찾았다.
새로 만든 건물에서 말끔한 병원을 운영하는 인상 좋은 원장님은 초음파 검사기로 어깨 안을 비춰보더니 아직 염증이 남아 있으니 운동은 아주 살살 하라며 주사를 세 방 놓아 주었다. 이번에도 초음파 화면을 보면서 영화 속의 생체 실험 장면처럼 주사를 맞았는데,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지금까지 맞아본 주사 중에서 가장 묵직한 주사였다. 심지어 세 번이나 그 맛을 연달아 보고 나니, 팔 운동은 다신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운동 중의 운동을 팔굽혀 펴기라고 생각하고 선호했는데, 이제 내 몸에 꼭 맞는 다른 운동을 찾아야할 모양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두피에 얽힌 생활 습관을 바꾸는 일과 달리, 주요한 근력을 유지해주는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어 다른 운동을 찾아야 하는 이 상황은 이상할 정도로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아마 나의 자존감을 유지해주는 몇 안 되는 기둥 중에 하나가 ‘그나마 상체는 운동 좀 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그로부터 일주일 후, 아침에 습관대로 손가락을 우둑우둑 꺾다가 검지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움직일 때마다 손가락이 아프고 조금씩 붓는 것을 보니 염좌인 모양이었다. 아니, 평소대로 했을 뿐인데 왜 손가락이 삔단 말인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다시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말고 아무 재주도 없는 사람에게 손가락은 소중하니까.
원장님에게 민망해하면서 사정을 설명하니 그는 이번에도 초음파로 손가락을 보곤 심하진 않다며 약을 처방해줬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그런지 손가락 꺾지 말라는 조언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검지의 손톱 밑 부분이 두툼한 게 원래 그랬냐고 묻긴 했는데, 그건 마침 나도 신경 쓰이던 곳이었다. 평범하게 매끈했던 손가락이 좀 변한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염좌의 영향인가 싶어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틀쯤 지나자 손톱 밑쪽이 명백히 곪기 시작했다. 이건 또 무슨 변고란 말인가? 염좌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어 자세히 살펴 보니, 작은 상처가 나 있었다. 그제야 며칠 전에 뭘 고치다가 커터칼로 베인 것을 떠올렸다. 피도 나지 않을 정도로 경미한 상처였던 데다가 손을 베는 게 하루이틀 일도 아니라 알코올로 가볍게 소독하고 넘어갔는데 칼이 너무 더러웠던 모양이다.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그리하여 검지에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고 손가락을 조심하면서 머리에 약도 바르고 먹는 약도 먹고 지내길 또 일주일. 손가락도 어깨도 거의 나았는데, 이번에는 겨드랑이에 땀띠가 나서 사라지지 않았다. 10월에 무슨 땀띠란 말인가? 그래서 땀띠약을 바르면서 이틀 쯤 보냈는데 땀띠와 가려움은 여전했다. 결국 피부과를 다시 찾아가서 물으니, 이번에도 원장님은 확대경을 들어보곤 곰팡이 따위의 감염이란다. 남자들이 사타구니를 자꾸 긁게 만드는 백선 따위와 비슷한 셈이다. 점입가경이다. 허탈해진 나는 내가 더럽게 살거나 뭘 잘못했기 때문이냐 물었는데, 원장님은 아니라며 씻은 뒤 잘 말리라 했다.
나는 예전부터 몸과 마음에 부정적인 변화가 일어났을 때, 나이 때문에 그렇다는 생각을 가급적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해봤자 한탄만 늘 뿐 나아질 구석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아서 일어난 문제라면 나이를 되돌려야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세상에 나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번에는 사소하지만 다양한 증상이 한꺼번에 몰려오니 이건 역시 나이 탓인가 싶어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다. 건강에 이상이 있는 날은 하루하루 늘어나고 삶에 남는 것은 고통밖에 없을 텐데 나는 언제까지고 빈손으로 세월에 저항하다 결국은 떠내려가 익사할 것 같다는 두려움도 느껴졌다.
그러나저러나 괴로워도 슬퍼도 시키는 대로 머리 약도 바르고 겨드랑이 약도 바르고 손가락 약도 바르고 먹을 약도 먹고, 전용 샴푸로 머리를 감고 잘 말리며 시간을 보냈다. 덤으로 비누도 좋다는 것으로 바꾸었다. 내가 특별히 성실하고 말 잘 듣는 희망적인 환자라서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그게 가장 나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의사의 처방을 받았으니 그게 소용 없다는 증명이라도 되기 전에는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엄밀히 생각하면 특별한 맥락이 없는 자잘한 사건들이 어쩌다 재수 없이 몰려왔을 따름이니 무슨 천사들이 나팔을 불자 바다가 붉어지고 불덩이가 떨어지는 식의 종말적 징후로 여기고 암담해할 일도 아니었다. 인간이 무작위한 일들 사이에서 존재하지 않는 인과관계와 패턴 따위를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굳이 스스로 감정적 진창으로 향하는 길을 상상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적당히 우울해하며 할 일을 하는 일상을 영위하다 엊그제 다시 피부과에 가니 좋은 소식이 돌아왔다. 많이 나아졌으니 약을 조정하고 다음주에 오라는 것이다. 남의 눈, 전문가의 의견으로 확인을 받자 그래도 뭐가 좀 나아졌다는 게 실감났다. 가만 보니 머리도 겨드랑이도 별로 가렵지 않고, 안 나면 어쩌나 싶던 머리도 다시 나고 있다. 베인 상처도 고름이 빠지고 표피가 재생되고 있으며, 검지의 부기도 다 빠졌다. 어깨도 한결 가벼워졌다.
생명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소한 증상을 갖고 이런 소리를 하자니 민망하긴 하지만, 이번 일로 나는 달갑지 않은 변화에 부딪치더라도 문제에 어찌저찌 대처하며 살다 보면 어떻게든 나아진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고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반드시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고 한탄하지 않는다고 만사가 해결되지도 않지만, 한탄하면서도 나아질 거라고 믿고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씩이라도 해야 변해가는 삶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리라. 반드시 지금보다 훨씬 나아지겠다거나 웅대한 목표를 이루겠다는 희망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야 않겠지만, 실제로 사람을 우울한 망상과 체념의 진창에서 조금씩 끌어내는 것은 하루하루 상처에 약을 바르고 습관에 신경 쓰는 정도의 사소한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아플 때 병원이라도 빨리 가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 상책 중의 상책임을, 나의 뒤통수와 어깨와 겨드랑이와 손가락을 걸고 말할 수 있다.
*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은 본작,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도 아까운"이 개정되어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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