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건해 Nov 01. 2023

파토난 중고 거래와 택배 대소동

요 며칠은 넘쳐나는 물건들을 처분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낡은 물건을 많이 쓰고 산다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미니멀리즘을 떠올리고 말끔히 살 거라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와 정반대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기야 하지만, 일반적으로 버려져야 마땅할 물건이나 혹은 정말로 버려졌던 물건 따위가 새 생명을 얻는 속도가 소비 속도보다 빠른 탓이다. 게다가 새 물건을 전혀 안 사냐면 그것도 아니니 물건이 쌓일 수밖에 없다. 제설 작업을 하듯이 물건을 치우지 않으면 순식간에 생활 공간이 엉망이 된다. 아무리 쓸만한 물건이라도 내가 정말 만족스럽게 자주 쓰는 범위를 벗어나면 포기해야 한다. 그럭저럭 괜찮은 것까지 모두 떠안고 살 수는 없다. 팔거나 기증해서 더 유용하게 잘 쓸 사람을 찾는 것이 더 넓은 행복에 기여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올해는 족저근막염을 핑계로 지나치게 많은 신발을 사거나 줍거나 고치며 테스트했고, 심지어 10월에는 등산까지 시작해서 신발 보관할 공간이 남아나지 않게 되었다는 게 몹시 심각한 문제거리로 떠올랐다. 그런고로 며칠간 지속적으로 신발을 팔아 치우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며칠 전에는 구매자로부터 택배를 보냈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접수를 하고도 깜빡 송장 정보를 알려주지 않은 탓이다. 요즘은 서비스들의 연계성이 높아져서 내가 따로 알려주지 않아도 자동으로 배송 정보를 알려주는 번개장터 같은 앱도 있는 반면에 당근은 직거래 위주로 출발해서 뭐든 수동으로 처리해야 한다.


나는 편의점 반값 택배를 접수할 때 쓰는 앱을 열어 송장 정보를 확인했다. 그런데 접수 전으로 나와 있는 게 아닌가. 잠시 당황했지만, 택배 처리는 원래 전산 반영이 늦는 경향이 있다. 나는 송장 뭉치에서 최근에 추가된 것들을 뒤적였다. 거래가 끝나지 않은 물품의 송장을 보관하는 나는 정말 용의주도한 놈이라고 스스로 감탄하면서. 그러나 잠시후, 나는 혹시 버린 송장이 없는지 쓰레기통을 뒤지게 되었다. 분명 발송한 기억이 있는데 그에 맞는 송장이 없었던 때문이다. 중고 거래 20여년 경력에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쓰레기통을 한참 뒤적이고도 필요한 송장을 발견하지 못한 나는 가계부를 열어 택배비 결제 내역을 살펴봤다. 어쩌면 접수를 했다고 믿는 건 다른 거래의 기억이고, 이번 거래에서 보낼 물품은 어디 올려놓고 깜빡했거나, 카운터 접수를 까먹었거나, 혹은 택배사에서 무슨 오류를 일으켰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계부에는 분명 이틀 전 택배비 결제 기록이 있었다. 나는 송장을 다시 하나씩 살펴봤다. 그 결과, 대단히 기괴한 문제를 발견했다. 가장 최근에 뽑은 송장의 날짜가 가계부와 일치했는데, 받을 사람이 반 년 전 거래했던 상대였던 것이다. 배송 추적에 나오는 정보도 내가 접수한 택배가 그에게 가는 중이라 표시되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확인할 길은 없지만 앱이 오작동했거나, 내가 조작을 잘못해서 예전 접수 정보를 누르고 예약 번호를 쳐넣었을 것이다. 둘 중에선 내가 조작을 잘못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오배송을 받을 사람의 정보가 접수할 때 누르는 아이콘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미 접수와 배송이 다 끝난 예약 번호가 반년이 넘게 유효해서, 그걸 그대로 입력했다고 또다시 동일한 배송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일반 상식에 비추어 보면 이런 접수 번호는 시간이 지나면 말소되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정신없이 바쁘다는 이유로 배송을 받을 사람의 이름도 연락처도 확인하지 않고 접수를 마친 것은 분명 나다. 어디 따질 수 있겠으랴. 나는 별수 없이 구매자에게 상황을 대강 설명하고 받았던 돈을 돌려주었다. 오배송을 받을 사람에게도 이러저러한 일이 일어났는데 택배를 찾지 않고 놔두면 반송되니 놔둬달라고 간곡히 빌었다. 답은 오지 않았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주문한 적도 없는 택배가 도착했다는둥 찾아가지 말라는둥 메시지가 자꾸 날아드는 상황은 무슨 밀수나 사기처럼 보일 게 틀림없었다. 세상이 흉흉하니 별 수 있겠는가……. 아무튼 택배사에도 연락해서 반송처리를 요구했는데, 상담사는 무슨 문제가 일어났는지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했고, 반송처리를 하면 된다는 마지막 부탁만 인지한 것 같았다. 그러나 반송 받을 주소를 입력하라는 메시지는 지금도 오지 않았고, 주인 없는 신발은 박스에 갇힌 채 어딘가를 표류하고 있다. 아무리 바빠도 택배를 보낼 때 디지털 기기만 믿고 가장 근본적인 정보인 이름과 연락처를 최종 확인하지 않으면 대단히 번잡하고 머리아프며 여러 사람 귀찮아지는 사고가 일어날 수 있음을 알려주면서…….



(요즘 택배가 간편하다곤 해도 방심하면 개고생을 하기 십상이다)



 이런 사고도 살다 보면 한 번은 할 수 있지 생각하며 신발 처리에 고심하던 다음날, 당근에 올린 나이키 러닝화를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깎아달라는 소리부터 하면서. 당연히 기분이 상하고 시작한 거래였다. 물건 값을 깎아달라는 요구가 왜 좋지 않은지 설명하자면, 일단 당근은 해당 요청이 가능한지 표시하는 기능을 공식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걸 무시하고 깎아달라는 요구를 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은데, 필요없는 물건을 빨리 치우는 데에 중점을 둔 판매자는 아쉬워도 그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결국 규칙을 무시하고 풍습을 따르는 사람만 이득을 보고, 규칙에 따라 얌전히 줄을 선 사람은 죄다 바보가 되는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면 판매자도 물건을 팔릴 법한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에 올릴 수밖에 없다. 모두 자기 이득 보는 방향으로 움직인 탓에 물건 가격이 ‘싯가’에 가까워지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어지간해선 흥정을 들어주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돈도 공간도 시급해서 어쩔수 없이 요구를 따랐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대가 물건의 출처까지 요구하는 게 아닌가. 무슨 골동품이나 보석도 아니고 뭐가 문제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나이키 신발은 정교한 모조품이 하도 많아서 믿을 수 있는 구매처 증빙이 되어야 가치가 인정되는 모양이었다. 수십 만 원짜리 한정판이면 모를까 고작 몇 만 원짜리 중고 신발에 보증서까지 필요한 일인가 싶긴 했으나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다만 나도 중고로 구한 물건인 터라 영수증도 태그도 상자도 남아있지 않았다. 별수 없이 문제가 있으면 환불해주겠다고 약속하고 물건을 부쳤다. 바빠서 죽고 싶을 지경이었지만, 한 순간이라도 더 빨리 공간을 확보해야 했던 터라 광속으로 물건을 포장해서 편의점까지 갔다왔다. 받을 사람과 송장을 꼼꼼이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접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문제가 또 발생했다. 구매자가 인터넷에서 찾은 정품 가품 비교 사진을 보여주며 내 것은 가품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판 물건이 가품일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요즘 가품은 전문가도 구분하기 어렵다고 하니까. 그러나 가품인지 정품인지 직접 봐야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든가 아닌 것 같다든가 얘기를 해볼 것이 아닌가. 하필이면 접수를 하고 나서 항의를 하다니 공교로워도 정도가 있다 싶었다. 나는 내가 찍어둔 상품 사진만으로 정품의 근거를 찾아보려다, 애초에 유명한 모델도 아닌 터라 자료 찾기가 어려워 그만두고 환불을 해주겠다고 말했다. 이틀만에 구매자 두 명에게 환불이라니, 중고 거래따위 다 그만두라는 신호가 아닐까?


그런데 환불해주겠다는 말에 구매자는 이번에는 회수 절차가 귀찮으니 자기가 아주 싼 값에 사겠다는 제안을 했다. 이것도 생전처음 겪는 일이었다. ‘네가 팔려는 그거 가짜같은데, 내가 싸게 사줄 수도 있어’라니, 온갖 골동품이 등장하는 미국 전당포 쇼프로그램에서나 보는 상황이 아닌가. 물론 나도 제안이나 논리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한순간 더 번거로워지는 것도 귀찮고 공간도 확보해야 하니 냅다 싸게 팔아버릴까 싶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언제 접수할 것인지를 물어놓은 다음, 접수를 확인하고 나서야 가짜라는 주장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도적으로 내가 옴짝달싹 못하는 타이밍을 쟀다고 의심할 만했다. 아니,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내가 반값택배로 접수한 물건을 그냥 놔두면 자동 반송되니까 놔두라고 했더니 그렇지 않더라는 답을 했으니까. 진품을 가품이라고 우겨서 싸게 살 작정이었는지 가품임을 확신하고 거기에 합당한 가격을 제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물건이 손을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는 점에서 악랄하기 짝이 없었다. 20여년간 본 것중 가장 불쾌한 거래 상대였다.


이번 거래에서 다행이었던 점은, 접수를 편의점 반값 택배로 했다는 점이었다. 반값 택배는 편의점의 유통망을 이용하는 택배라 싼 대신에 처리가 느리다. 검색해보니 물건이 떠나기 전에 찾으러가면 접수를 취소할 수 있었다. 나는 자꾸 설득하려는 상대에게 단호히 돈을 돌려주고 신발을 되찾았다. 성질이 뻗쳐 혈압이 걱정될 지경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신발이 정말로 가품은 아닐지 걱정스러워서, 인터넷 곳곳을 뒤적여보았다. 아주 유사한 모델의 비교 정보를 보면 미세한 부분이 모두 정품과 동일했다. 그러나 유사한 모델이지 정확히 내 신발은 아니었으므로 정품인지 가품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요컨대 정품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누구에게나 자신있게 권할 수는 없는 신발이라는 말이다. 그 정도로 구별이 어렵다면 가품도 그냥 중고로 쓸 만한 가치가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한데, 신발의 성능을 극한까지 써야 하는 운동 선수나, 진짜만을 가져야 하는 수집가들이라면 생각이 다를 수도 있으리라. 그런 분들에게는 자신있게 권하지 못해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나도 정품을 잘 따져서 샀으면 좋았으련만…….


그런 연유로 나는 전례없이 두 번의 거래에 연달아 실패했고, 정말이지 만사 다 넌더리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대충 필요한 것만 사서 쓰고 닳으면 내다버려서 편하게 살 일이지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번거로운 짓거리를 계속 하고 있단 말인가……. 한탄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답은 알고 있다. 절약하고 환경도 아낀다고 얘기하면서 실상은 돈을 덜 들이고 많은 물건을 갖거나 써보고자 하는 물욕 때문에 자꾸만 채우고 또 비우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물건을 아끼고 버려진 것도 살려내는 것도 좋지만, 내게 필요한 것만 적정히 갖는다는 생각으로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사고팔기의 번뇌와 그에 따른 고통은 영영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욕심은 어떻게 버리면 좋단 말인가. 너무나 어려운 질문이니 그건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다. 일단 저놈의 신발부터 팔아야 그럴 여유가 생길 텐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