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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May 29. 2024

안녕 내 사랑니



지난 4월 중순에 가벼운 치통을 느꼈다. 치통이란 심하면 머리가 다 지끈거리고 미칠 지경이라던데, 다행히도 나는 왼쪽 위 어금니와 사랑니 부근이 욱신거리는 정도였다. 왜 그쪽이 아픈지 이유는 명백했다. 3월에 검진 받을 때 사랑니가 약간 썩었다는 판정을 받은 데다가, 그로부터 몇 주 지나지 않아 사랑니 일부가 깨져서 씹힌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진료 때마다 의사는 문제의 사랑니를 뽑으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나는 거부했다. 영구치를 뽑아내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뽑는 과정의 고통도 두려웠고, 재생되지 않는 신체 일부를 제거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잘 놔두면 나중에 어금니 대신 쓰는 경우도 있다니 최대한 보존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내 마음대로 진단했다. 의사는 강요할 생각은 없는 듯, 쓰는 데까지 쓰시라며 깨져서 날카로워진 부분을 갈아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치아 건강의 상실이 통증이라는 고지서를 들고 찾아온 것이다. 나는 자다 깨서 진통제를 먹으며 두려움에 시달렸다. 4월 말까지 처리할 원고가 둘이나 되는 데다가 공모전에도 투고해야 했으므로 치통따위 문제에 발목을 잡히고 싶지 않았다. 발치 후에 먹을 걸 가려 먹으며 부기를 빼는 과정에 시달리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치과에 언제 갈 것인지 저울질해야 했는데, 충치와 사랑니에 대해 검색하다 보니 이가 심하게 썩으면 어금니나 신경에도 문제가 생길수 있다는 정보가 있기에 그날 아침 곧바로 치과에 갔다. 예측할 수 없는 수준의 재난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만 괴로울 치료와 회복을 택하는 게 나을 것이었다.


치과에선 사랑니를 들여다보더니 약물을 도포하고 소염제를 처방했다. 의사는 슬슬 충고하기 지친 것인지, 그냥 잘 쓰라는 말만 했다. 낡은 무기를 고집하는 용병을 상대하는 대장장이 같은 모습이었다. 이 멍청이가 죽을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생각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나는 간호사들에게 물어 사랑니 발치를 예약했다. 염증을 없앤 뒤에야 발치가 가능해서 그 다음주로 결정되었다. 약 한 봉지는 뒀다가 발치하는 날 아침에 먹고 오라고 간호사들이 신신당부하기에, 약을 받아서 집에 오자마자 봉지에 표시를 했다.


약을 먹으니 치통은 사라졌다. 나는 간사한 인간답게 바빠 죽겠는데 굳이 지금 아프지도 않은 이를 뽑으러 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 다시 생각했다. 치과 예약을 했다는 이유로 이를 뽑을 의욕과 용기가 갑자기 샘솟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썩어서 깨질 정도가 된 충치를 내가 잘 관리해서 더 심해지지 않게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치아 관리에 꾸준히 실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0년 가까이 치과 진료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는 게 소박한 자랑거리였는데 충치가 조금씩 생기며 그 기록도 무너졌고, 그 이후로는 이를 잘 닦는다고 닦은 것이 치경부 마모를 일으켜 값비싼 레진 치료를 하게 되었다. 아주 부드러운 칫솔을 사다 주의깊게 위아래로 움직여 닦았는데도 두 번째 치료마저 피하지 못했다. 나는 거의 평생에 걸쳐 삶을 가꾸고 더 낫게 하려는 노력이 허사가 되는 수준을 넘어 모든 걸 망치는 비극에 시달렸는데, 혹은 그런 비관적 사고에 사로잡히곤 했는데…… 치아 관리도 마찬가지였다. 백날천날 조심스럽게 닦아봐야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내가 아끼는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결국 닳고 썩고 깨지는 것을.


(오랜 나태와 잘못을 뉘우친다고 버려진 육체가 돌아오지 않는다)


치경부 마모를 생각하면 이렇게 만사 헛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으나, 이번에는 그 생각이 최종적으로 나를 치과로 이끌었다. 아껴본들 헛일이니 관리를 포기하고 폐기를 선언한 셈이다. 사랑니는 없어도 사는 정도가 아니라 없는 게 오히려 낫다고들 하니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뽑는 게, 그것도 더 바빠지기 전에 발본색원하는 게 여러모로 나을 것이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말라 비틀어진 나뭇가지를 잘라내듯 관리 불가능한 삶의 일부도 제거해야 했다.


예약일 아침에 챙겨둔 약을 먹고 가방에 밀폐용기를 챙겨서 치과로 갔다. 자리에 눕기 전, 나는 상당히 민망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준비했던 질문을 했다. 뽑은 사랑니를 가져갈 순 없겠냐는 질문이었다. 내 이빨을 너무 아끼고 사랑해서 그러려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집은 어째서인지 젖니를 모아두는 전통이 있으므로, 기왕이면 사랑니도 뽑은 김에 컬렉션에 추가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젖니와 달리 비용을 들여 애써 뽑은 이빨이니 더 의미가 있다고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말을 듣자마자 의사는 법률상 반출할 수 없다고 했다. 받아본 적이 있는 질문인듯 담담한 투였다. 하기야 그렇겠지. 감염 문제를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먹던 음식 싸가듯이 가져갈 순 없는 것이다. 내가 내 신체 일부의 소유권을 주장하기가 어렵다는 게 불합리한 감은 있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90퍼센트만 뽑아주시면 나머지는 제가 밖에서 할게요, 라고 주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쨌거나 내가 내 몸을 포기하고 자리에 눕자 곧 의사가 와서 마취 주사를 놓았다. 따끔할 거라더니 별반 감각이 없었다. 뭘 잘못 씹어서 잇몸을 찔렸을 때에 비하면 희미한 촉감이었다. 잠깐씩 이물감이 느껴지는 수준에 불과했다. 의사의 실력이 좋은 것일까, 주사가 좋은 것일까? 잠시 기다리자 마취가 진행되어 왼쪽 입 안쪽이 먹먹해졌다. 차갑지 않게 얼어붙은 기분이었다. 이윽고 간호사가 추악하게 일그러질 내 얼굴을 가렸고, 의사가 와서 입을 벌리곤 수술 도구로 사랑니를 단단히 틀어쥐더니 힘껏 잡아당겼다. 마취가 되었는데도 펜치 같은 것이 이를 붙잡고 힘을 가하는 건 느낄 수 있었다. 그냥 당긴 것 같기도 하고 한번 다른 곳에 대고 힘을 분산한 것 같기도 했다. 어느 시점이 되자 잇몸에서 덩어리가 쑥 빠지는 느낌이 전해졌다. 그 와중에 억, 하고 신음을 흘렸다. 어째서인지 이를 뽑은 곳에서 통증이 느껴진 탓인데, 의사는 곧장 다 됐다고 달래며 손을 치웠다.


발치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충치가 심해서 치아가 깨지면 과정이 복잡해진다고 들었는데 고작 몇 분만에 아주 매끄럽게 빠진 모양이었다. 물론 의사의 실력도 좋았으리라고 믿는다. 곧장 소독하고 거즈를 물었다. 간호사는 한 시간인가 두 시간인가 거즈를 물고 있어야 하며 그 뒤에도 한동안 침을 뱉어서도 빨대를 써서도 담배를 피워서도 안 되고, 오늘 하루는 근육 운동조차 하면 안된다고 했다. 의료 기술의 발달로 금방 출혈을 막을 줄 알았는데, 약간 실망이었다. 물론 그런 기술이 있어도 자연 치유가 될 수준이라 안 썼겠지만…… 그나저나 침을 뱉는 것만으로 다시 피가 날 수 있다니, 인간의 몸은 어째서 이다지도 나약하단 말인가?


치과에서 이빨을 뽑은 한국인답게 택시를 타고 아무데나 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할일이 쌓여있어 곧장 집에 돌아왔다. 마취가 제법 오래 지속되니 느낌이 상당히 이상했다. 부분적으로 마비된 혀가 이물질 같기도 했고, 피 섞인 침을 삼키려 해도 구강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음식물이 걸린 듯 구역질이 나기도 했다. 생전 처음 겪는 종류의 구역감이었다. 아주 고분고분한 자를 ‘입안의 혀 같다’고 하는데, 입안의 혀도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건 새로운 지식이었다.


거즈를 뱉고 마취가 풀리자 좀 아팠다. 그리고 조금씩 흐르는 피가 멎지 않았다. 슬슬 아물었나 싶어도 입을 헹구고 물을 뱉으면 핏물이 섞여 나왔다. 자고 일어난 다음날까지도 계속되었다. 늙고 병들며 희망이 상실되고 생명이 소진되는 과정의 일부처럼 출혈이 계속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치아를 한번에 몇개나 뽑고 택시에 타면 안 되는 이유를 약간 알 수 있었다. 다 나은 줄 알고 전자담배를 좀 피운 게 문제였을까? 이런 상황의 결정적인 문제는 아무도 명확한 답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다음날에도 출혈이 계속되면 치과에 가는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잠을 청했다. 다행히도 피는 결국 멎었다.


한 달이 지난 이제는 사랑니가 사라졌다는 게 그럭저럭 익숙해졌다. 다만 혀로 더듬어보면 전과 달리 어금니 뒤가 만져지는 게 이상하다. 가만히 입을 다물고 혀를 입천장에 붙이면 끝이 잇몸에 닿는 것도 어색하다. 원래 느낄 수 없는 게 느껴진다는 게 편치 않다. 아무래도 나의 육체 같지 않기도 하다. 좀 썩었더라도 사랑니가 그 자리에 단단히 버티고 있는 게 바로 내 입이었던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상실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지만 피할 수 있는 만큼은 피하는 게 옳은 게 아니었을까……. 물론 더 악화되기 전에 해결하긴 했으니 중간은 갔다고 생각한다. 굳이 더 나은 정답을 도출하자면 썩지 않게 잘 닦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소중한 것을 잃지 않으려면 잘 아껴야만 한다는 진부한 결론인데, 진부하더라도 그게 사실이다. 다만 우리가 무엇을 적절히 잘 아끼는 방법을 몰라서 쓸모없는 일이라 느낄 따름이리라.


이번달 초에는 고민 끝에 전동 칫솔을 샀다. KC인증은 없지만 CE인증은 있는 물건으로, 30초 진동하고 잠깐 멈추길 반복해서 치아의 네 부분을 골고루 닦게 유도하는 기능이 아주 유용하다. 물론 이 물건이 정말 효과적이었는지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겨우 알 수 있을 것이다. 전혀 쓸모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든다. 그러나 그럼에도 희망을 품으려는 것은 모든 노력이 쓸모없다는 허망감보다 시간의 흐름에 저항없이 쓸려가며 삶의 일부를 하나씩 잃어버리는 무력감이 두려운 까닭이다.



*추신 

저는 언제나 돈과 일을 구하고 있습니다.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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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살려주세요...

종이책: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9577892619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kz1M5 

밀리의 서재 요약본 오디오북: https://millie.page.link/ExY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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