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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 죽이기 02

by 이건해

#2


양준범 팀장이 예선을 따로 불러낸 것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아무도 없는 회의실로 가자, 양 팀장은 책상위에 걸터앉더니 팔짱을 끼고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어제 일은 안 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갔네요?”

그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운 날이 서 있었다. 예선은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절대 들키지 않게 신경 쓰며 몰래 간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오가는 길에 자신을 알아볼 만한 사람을 본 것도 아니니 기록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출입 시간 뿐이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뭘 먹으러 갔다는 걸 아는 걸까.

예선은 죄인처럼 조심스럽게 끄덕였다.

“네, 잠깐 뭐라도 먹으면서 기분 전환 좀 하고 싶어서요…….”

대체 어떻게 안 거냐고 물으려다 그럴 처지는 아닌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양 팀장은 그런 예선의 마음을 읽은 듯, 한숨을 쉬고 말했다.

“작년 말에 내부 자료가 인편으로 유출돼서 사옥 근처 100미터까지는 항상 CCTV로 촬영하고 있어요. 원래 이것도 알려주면 안 되는 건데, 예선 씨는 이번 일로 고생하니까 딱해서 내가 알려주는 거야. 앞으로 조심 안 하면 괜히 짓지도 않은 죄까지 뒤집어쓸 수 있으니까. 알았어요?”

사옥에서 벗어난 사원의 행적을 추적하는 게 과연 합법적인 일일까? 그것도 따져 물을 처지는 아니었다. 예선은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양 팀장은 그런 예선의 모습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아니, 노려보는 게 아니라 훑어보는 것 같기도 했다. 고개를 숙인 예선은 양 팀장의 시선을 직접 볼 수 없었지만 시선이 동반하는 공기의 질감은 알 수 있었다. 옷차림이나 행동거지에서 트집을 하나라도 더 잡으려던 중년의 학생 주임이 그런 느낌을 풍기곤 했다.

그는 그렇게 잠시 뜸을 들이다 한숨을 쉬었다.

“안 잡히는 식당도 몇 개 있으니까 오늘 저녁에 알려줄게요. 앞으로는 괜히 남의 팀이랑 이상한 데 갈 생각 말아요.”

예선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말의 내용이 앞으로 근무 똑바로 하라는 경고와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녁에 알려준다는 말은 거길 가자는 말일 텐데, 어제 나갔다 와서 처리할 일이 밀린 만큼 뺄 시간이 없었다.

“감사하지만 오늘은 데이터 처리가…….”

“그거, 오늘 위에 따져서 외주로 돌리게 됐어요. 그 얘기 하자마자 예선 씨가 누구랑 뭘 먹으러 갔다는 소리가 들려서 내가 얼마나 무안했는지 모르죠?”

멍해진 예선에게 양 팀장이 미소지었다. 힐난하는 듯하면서도 생색을 내는 자의 기쁨이 깃든, 과히 아름답지 않은 미소였다. 예선은 양 팀장이 준수한 외모로 멋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아무래도 그 모습이 보기 싫게 느껴졌다. 과중한 업무가 사라졌다는 기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떫었다.

그러나 예선은 다시 고개 숙여 인사해야 했다.

“죄송합니다. 신경 써주신 만큼 열심히 하겠습니다.”


양팀장이 감시도 안 당하고 좋은 곳이라고 소개한 가게는 사옥 바로 옆에 위치했으면서도 병원에 가려져 동선이 촬영되지 않는 술집이었다. 인테리어는 중국풍인지 일본풍인지 모를 국적 불명의 아시아풍이었는데, 문화적인 근간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빼면 제법 고급스러운 편이었다.

힘든 기간을 넘긴 기념으로 양팀장이 사겠다 해서 팀원 둘이 더 끼어 거기서 회식 엇비슷한 것을 했다. 그러나 예선은 그 제안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힘든 기간이라고 해봤자 무의미한 대량의 작업에 시달린 건 예선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술집에서 파는 음식은 죄다 인테리어와 어울리는 퓨전 음식들이었는데 맛은 먹을 만했으나 그냥 간이 세서 느껴지는 착각인 듯싶기도 했다. 그리고 애초에 음식 자체보다는 그것을 날라주는 인간형 로봇이 더 인상적이었다. 이찬영 과장은 차이나드레스를 입은 미녀 형상의 로봇을 보고 휘파람을 불었다가 김미래 주임의 눈총을 맞고 입을 다물었다. 한편 양 팀장은 그런 게 아예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듯이 딱히 반응을 하지 않았다. 예선은 유흥업소 분위기를 내는 것 이전에 굳이 인간형 로봇이 서빙을 하는 것부터 반갑지 않게 보였다.

식사하는 동안 팀원들은 의미 없는 잡담으로 시작해서 퇴사한 심 주임 욕을 좀 하다가, 양 팀장이 은근히 편치 않은 기색을 보이자 회사 욕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이 역시 양 팀장이 좋아하는 주제는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고 로봇 동반자 얘기를 했다. 로봇 동반자는 그들 팀에서 작업한 데이터가 반영될 최종 결과물이었고, 당장 이 주점에도 로봇이 도입된 데다가, 세계 곳곳에서 권리나 제약, 세금 따위에 대한 정책이 요동치고 있는 상황이라 할 말이 많았다.

“일이라 만들곤 있는데, 완전히 자연스럽게 인간처럼 움직이는 로봇 동반자를 만드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는 모르겠네요. 잠깐 부려먹을 기계가 아니니까요.”

이 과장은 회의적이었다. 반면에 김 주임은 단호히 환영했다.

“저는 좋은 방향이라고 봐요. 인간은 신뢰할 수 없지만 로봇은 신뢰할 수 있잖아요.”

의견이 갈려 설전이 이어졌다. 이 과장은 회사의 모토대로 완벽한 로봇이 만들어져 삶의 파트너가 된다면 최종적으로는 가족이라는 역할마저 로봇이 차지한 나머지 인간은 인간끼리 가족을 이루지도 않고 소통하지도 않게 될 거라 주장했다.

반면에 김 주임은 자신이 만난 남자들이 얼마나 추악하고 이기적이고 자기 말만 떠들었는지 하소연하면서,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 확실히 믿을 수 있고 심지어 내 마음대로 대할 수도 있는 지적 존재와 함께 살며 안정을 구할수 있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발전이며 가정을 꾸릴 의지나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도 미칠 행복의 보급인지를 설파했다.

예선은 의견을 내지 않았다. 다 남의 일처럼 느껴졌고, 토론 방송에서도 답을 내지 못하는 화제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자리에서 떠나 집에 가고 싶을 따름이었다.

한편 양 팀장도 가끔 맞장구를 칠뿐 또렷한 의견을 내지는 않았다. 대신에 예선과 눈을 몇 차례 마주쳤는데, 그게 모두를 다 보는 와중에 그녀도 보다가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예선만 따로 관찰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술을 곁들인 식사 자리에서 나오는 얘기가 뭐든 그렇듯이, 로봇 이야기는 아무 결론도 없이 다른 얘기로 건너가길 반복하다가 아무렇게나 흐지부지 끝났다. 그런 복잡하고 머리 아픈 얘기를 굳이 길게 하려는 사람도 없어서, 이 과장의 아내 욕과 김 주임의 전 남친 욕이 줄줄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떠나고 싶었던 예선은 한층 더 괴로워졌다. 연애와 결혼 얘기가 나오면 필연적으로 불똥이 튀어 누굴 사귀고 있는지, 결혼 생각은 없는지, 자기가 아는 누굴 만나볼 생각은 없는지 추궁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예선은 슬슬 모든 말이 다 넌더리나고 피곤했고, 회사의 인간들은 빈틈없이 지겨웠다. 차라리 서빙중인 로봇과 대화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자기들끼리 욕을 나누기도 바빴던 두 사람은 이야기에 예선을 끌어들일 겨를이 없었고, 음식이 다 떨어지자 자연스럽게 파장 분위기가 되었다. 가정이 있는 이 과장이 스마트폰을 보며 슬슬 일어나는 게 어떻겠냐고 말을 꺼냈다. 예선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때,

“예선 씨는 남아서 얘기 조금만 더 하고 가지.”

양 팀장의 말이 날아들었다.

상사가 단둘이 무슨 얘기를 하자는 걸 반가워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예선은 직위나 업무와는 무관한 불안을 느꼈다. 아무 죄도 없는데 부당한 요구를 받고, 거절하는 것만으로 대단히 나쁜 사람이 되어 인생이 피곤한 길로 접어들 것 같다는, 그런 불길하기 짝이 없는 예감이 들었다.

예선은 생각나는 대로 변명거리를 꺼냈다. 이럴 때 가장 튼튼한 방패는 부모였다.

“저, 어머니 올라오셨다고 해서 빨리 가봐야 하는데요…….”

“택시 태워 줄 테니까 5분만 앉아봐요.”

저 진짜 급한데, 어머니 아프시다는데, 등등의 변명이 떠오르긴 했지만 도저히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었다. 나오지 않은 상사의 말을 필사적으로 피하는 것도 밉보이는 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짧은 침묵이 감도는 사이 취기가 오른 김 주임이 무슨 재미있는 얘기라도 있냐며 다시 자리에 앉으려 하는 걸 이 과장이 말려서 데리고 나갔다. 예선은 그 짧은 시간 동안 김 주임이 구원자로, 그녀를 말린 이 과장이 불구대천의 원수로 느껴졌지만, 어떻든 도움될 것도 없는 감정이었다.

결국 양 팀장과 사석에서 둘만 남았다.

예선이 마지못해 엉덩이 끝만 걸치고 앉자, 양 팀장은 위스키를 반 잔 마시고 다소 게슴츠레한 눈으로 물었다.

“혼자 산다는 게 가끔 막막할 때가 있어요. 가령 만취한다 해도 누가 데리러 나오지도 않고, 술병이 난다해도 죽 끓여줄 사람도 없잖아요.”

“네에.”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예선으로서는 아무 상관도 없는 얘기였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문방구와 장난감 가게 따위를 하느라 바빴고 형제는 없었기에 예선은 혼자인 게 당연했다. 대학 때도 상경해서 자취했으므로 집에 누가 더 있는 쪽이 더 어색할 지경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건성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양 팀장은 예선의 답에 공감을 얻기라도 한 듯 말을 이었다.

“예선 씨도 혼자 살면 쓸쓸할 때가 있을 테죠.”

예선은 예선은 공감을 재확인하려는 말이 피곤했다.

“그저그래요. 몸이 바쁘면 원래 딴 생각이 안 나잖아요.”

나름대로 항의의 뜻을 담았지만 전달된 것 같지는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를 일이었다. 양 팀장은 어조의 변화 없이 말을 이었다.

“혹시 예선 씨도 로봇 동반자랑 살 만하겠다고 생각해요?”

예선은 양 팀장이 그와 같은 의견을 바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저녁 식사 때 나온 로봇 이야기에 자기 의견을 분명히 나타내지 않았으므로, 예선은 어느 장단을 타야 할지 알 수 없었고, 그런 고민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넌더리가 났다.

“생각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양 팀장은 예선이 탐색하려는 걸 뻔히 알겠다는 듯이 씩 웃었다. 여러 번 연습하고 활용해본 것처럼 매끄럽게 나오는 웃음이었다. 예선은 그 웃음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함부로 얘기할 입장이 아니죠. 누가 어디서 듣고 위에 일러바칠지 모르는 일이고. 하지만 나는 예선 씨 같은 젊은 사람들이 이제 인간보다는 로봇이야말로 믿을 만한 존재라는 식으로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게 마냥 좋게 보이진 않아요. 시대의 흐름이라곤 해도 사람이 기댈 수 있는 건 결국 사람뿐이야. 로봇은 보조적인 도움을 주는 거고. 그렇지 않아요?”

“네…….”

예선은 대강 대답 아닌 대답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양 팀장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도 알듯말듯 했고, 지금 자신을 굳이 남겨서 그런 말을 하는 이유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양 팀장은 예선을 보았다. 응시가 지나치게 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씩 웃고 말했다.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을 찾아봐요. 보편타당한 인간으로. 예선 씨는 영리하니까 뭐가 옳은지 잘 알 거예요. 그리고 슬슬 여유 부릴 나이가 아니라는 것도 알만하잖아.”

말이 대체 어떻게 굴러가는 건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결혼할 때가 된 것 아니냐는 참견질의 일종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졸업한 직후부터 돈을 벌면 버는 대로, 벌지 않으면 벌지 않는 대로 잡다한 잔소리를 듣고 산 예선은 그런 종류의 헛소리에는 아주 민감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정제된 분노가 치밀었다.

팀장님이 뭔데 사람을 사귀라 마라에요? 애초에 전 로봇에도 관심이 없어요.

예선은 잠시 치맛자락을 매만지다 겨우 입을 열었다.

“네, 잘 생각하고 처신하겠습니다.”

다행히도 양 팀장의 헛소리가 더 이어지진 않았다. 조심해서 앞으로도 일을 잘 해보자는 하나마나한 얘기를 끝으로 그는 예선을 놓아줬고, 예선은 자율 주행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빛무리 사이를 달리는 동안, 승객이 적적하지 않게 해준다는 인공지능 스피커는 어떻게 학습했는지 모를 잡담을 꺼냈다.

“어휴, 젊은 아가씨가 늦게 다니면 위험해요. 데리러 오라고 남자 친구라도 불러야지.”

“음소거.”

스피커가 입을 닥치자, 예선은 다시금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다스리며, 인간 기사가 아니라서 부담없이 대화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로봇 동반자가 인간보다 낫다던 김 주임의 말이 확실히 일리 있었다.

마침내 집에 도착한 예선은 익숙한 어둠을 마주하며 간신히 숨을 돌렸다. 고요가 그렇게 포근하고 아름다울 수 없었다.

잠시 후에 출근할 걱정 따위 집어치우고 영원히 이 어둠 속에 잠기면 안 될까……. 예선은 그런 충동에 사로잡혔지만, 그러면서도 착실히 몸에 익은 대로 움직여 씻고 영양제를 먹은 뒤 자리에 누웠다.

잡다한 기기의 LED 불빛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방에서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스마트폰을 보니 한 시 반이었다.

불안했다.

어디선가 자신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근거 없는 느낌과 비슷한 종류의 불안이었다. 당장 조치를 취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충 무시하거나 다스리기엔 고통스러운 크기의 불안.

예선은 몇 번을 뒤채며 마음을 다시 돌아보았다.

속이 상했다. 가만히 더듬어 보니 제법 상한 것 같다. 그런데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예선은 곰곰이 생각했다. 속상할 이유는 넘쳐났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은 역시 양 팀장이 웃어른이라도 되는듯 늘어놓은 헛소리였다.

대체 지가 뭔데 남의 인생에 이래라 저래라야, 미친 새끼.

예선은 자기도 모르게 쌍욕을 중얼거리며 돌아누웠다가, 내일 맑은 정신으로 일을 하려면 빨리 자야 한다는 생각에 수면 유도 명상 앱을 실행했다. 앱에서 시키는 대로 심호흡을 하며 몸 이곳저곳을 점검하듯 힘을 주기도 하고 빼기도 하자, 어느샌가 잠이 장막처럼 의식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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