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정체

우리는 AI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by 아린

AI에 대한 이야기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지난 편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이 미래, 누가 만든 것입니까.


오늘은 그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두려움에는 실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어두운 골목에서 발소리가 들릴 때,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병원 복도에서, 아이가 열이 펄펄 끓는 새벽에 느끼는 두려움. 실체가 있습니다. 이 두려움은 정직합니다. 원인이 있고 대응이 있습니다.

반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누군가 말해준 이야기,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장면에서 오는 두려움은 실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두려움은 종종 실체가 있는 두려움보다 더 강하게 사람을 붙잡습니다.


AI에 대한 두려움은 대부분 후자입니다.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AI가 실제로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 것도, AI가 실제로 자신을 지배한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 그럴 것이라고 했고,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봤고, 뉴스에서 그런 가능성을 다뤘습니다. 그 이야기들이 쌓여서 두려움이 됐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는 매일 AI를 씁니다. 검색할 때, 길을 찾을 때, 쇼핑할 때, 음악을 들을 때. 그런데 AI를 쓴다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그냥 편리한 서비스를 쓴다고 생각합니다. 두려움은 AI를 직접 마주할 때가 아니라 AI에 대해 생각할 때 찾아옵니다.

이것이 두려움의 정체입니다.

우리는 AI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AI에 대한 이야기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어두울까요.

밝은 AI 이야기는 잘 퍼지지 않습니다. AI 덕분에 희귀병 진단이 빨라졌다는 뉴스보다 AI가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뉴스가 더 많이 공유됩니다. AI로 시간이 절약됐다는 이야기보다 AI가 가짜 정보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더 오래 기억됩니다.

이것은 AI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의 문제입니다.

인간의 뇌는 부정적인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위험을 빨리 감지하는 뇌가 살아남았고, 그 뇌가 지금 우리 안에 있습니다. 좋은 뉴스는 흘려보내고 나쁜 뉴스는 붙잡아두는 것이 우리의 본능입니다.

AI는 그 본능의 희생양이 됐습니다.


두려움이 커지면 두 가지 극단적인 반응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완전한 거부입니다. AI는 위험하니까 쓰지 않겠다. 모르면 모를수록 안전하다. 이 반응은 세상이 바뀌는 속도를 무시합니다. 강물을 등지고 서 있다고 강물이 멈추지는 않습니다.

또 하나는 맹목적인 신뢰입니다. AI가 말했으니까 맞겠지. AI가 찾아줬으니까 정확하겠지. 이 반응이 어쩌면 더 위험합니다. 두려움이 없어진 자리에 무비판적인 복종이 들어서는 것입니다.

단톡방을 보십시오. 무슨 이슈가 생기면 AI 답변이 도배됩니다. 모두가 전문가가 됩니다. 그런데 그 AI 답변이 그 특수한 상황을, 공개되지 않은 판례를, 전례가 없는 사례를 알고 있을 리 없습니다. AI는 과거의 데이터로 만들어졌습니다. 전례가 없는 것은 데이터가 없는 것이고, 데이터가 없는 것은 AI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답변을 들고 싸웁니다. AI가 그렇다고 했다고.

두려움보다 맹신이 더 조용하고 더 빠르게 퍼집니다.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은 AI가 아닙니다.

AI를 모르는 채로 AI를 두려워하는 것, 그리고 AI를 모르는 채로 AI를 믿는 것. 이 두 가지가 진짜 위험입니다.

두려움의 정체를 알면 두려움은 반으로 줄어듭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다른 무언가가 들어설 수 있습니다.

당신이 AI에 대해 직접 경험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누군가에게 들은 것은 무엇입니까.

AI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AI에 대해 이런 점이 두렵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AI가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십시오. 좋은 대화는 AI도 바꿉니다. 그리고 그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다음 편 예고

AI에 대한 두려움의 정체를 알았다면, 이제 더 불편한 질문이 남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는 건 AI입니까, 인간입니까.


토, 일 연재
이전 02화우리는 왜 AI를 두려워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