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팔러 갔다. 작년 10월까지 언론사의 협력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그곳으로는 여러 출판사들의 신간도서들이 온다. 시사지나 신문에 광고를 넣을 책들을 여러 권 회사로 보내줬는데, 그걸 공짜로 가져갈 수 있었다. 행운이었다. 본래 괜한 책 욕심이 크기도 하고 유난히 소설이나 에세이 혹은 산문을 좋아하는데, 마음에 드는 책이 들어오기라도 하면 누가 먼저 가져갈까 싶어 냅다 챙겼다. 야근수당이다-생각하며. 근데 그게 많아지다 보니 책장이 비좁다. 답답해 보였다. 그리고 새로 올 책들이 들어올 공간이 없다. 안 되겠다 싶어 당장에 책을 팔러 나섰다.
그저 가벼워질 줄 알았던 어깨가 괜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나이가 이토록 들었는데 면허도. 차도 없다 보니 오래된 책들을 고르고 골라 여덟 권을 챙겨 버스에 탔다. 버스를 타고 15분 거리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다. 고작 여덟 권인데도 한 팔로 들다 보니 손 끝이 저리고 봉투 끈을 든 손이 슬슬 아파왔지만, 곧 있으면 가벼워질 어깨와 놓지 못하고 있던 묵은 짐을 털어낸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무엇보다 새 책들이 들어갈 공간이 생긴다니. 순번표를 뽑고 내 차례가 되어 카운터에 책을 올렸다. 근데 이게 웬걸. 이리저리 책의 위아래 양옆을 살피고 넘겨보던 직원이 말했다. “이 두 권은 곰팡이가 슬었네요” 그래서 안된단다. 그러더니 또 곧장 “이건 증정 도장이 찍혀있네요” 그래서 안되고, 또 곧이어 “아 이건 물량이 너무 많아서 받을 수가 없네요”란다. 항상 중고서적을 사러만 갔던 그곳에서 처음으로 책을 팔자니 모르는 것도 서툰 것도 이만저만이아니었다. 결국 낑낑대며 매고 왔던 여덟 권의 책들 중 제일 가볍고 얇았던 세 놈만 서점에 던져놓고, 제일 두껍고 무거웠던 다섯 놈은 아직도 고스란히 내 품 안에 안은채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 이게 뭐람. 솔직히 중고서점이니 그냥 아무 책이나 가져가면 다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값을 얼마 받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워낙 저렴한 가격에 재판매하다 보니 내가 받을 가격이 짐작은 갔다만, 이렇게 까다로울 줄이야.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심지어 같은 책이 많으면 받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세 권을 팔아 받은 돈은 4200원이다. 돈을 바란 게 아니다. 그저 가벼워질 줄 알았던 어깨가 괜히 더 무겁게 느껴졌다.
굳이 따지자면 그날의 수확은 4200원을 얻고 10400원을 냈으니, 6200원을 밑진 셈이다.
산다는 건 언제나 예상을 빗겨나간다. 멀쩡히 걸어가던 길에서 내가 내 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찾아갔던 유명한 맛집에서는 집 앞에서도 맛볼 수 있는 정도의 음식만 내오기도 한다. 꿈꿨던 일은 막상 해보니 내 일이 아니었고, 혹시나 했던 누군가의 마음은 나의 생각보다 대략 이천 킬로 정도 먼 곳에 있기도 한다. 고르고 골라 챙겨갔던 여덟 권의 책들 중 다섯 권을 다시 안고 올 줄 몰랐고 언젠가 새로 올 책들의 자리가 세 권밖에 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스럽기도 했다. 그렇다고 하여 예상을 빗겨 난 일들이 썩 나쁘지많은 않다. 엊그제 우유를 사러 갔던 집 앞의 작은 슈퍼마켓에서 추억이 담긴 이백 원짜리 불량식품을 발견하기도 했고, 타고난 길치라 한참이나 길을 헤맸던 탓에 의도치 않은 운동을 하기도 했으며, 비록 여덟 권의 책들 중 세 권의 책들만 팔 고올 수 있었으나 한참을 기다리고 기다렸던 책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책은 중고서적들 중 상태가 최상이라 만원을 내야 내 가방에 넣을 수 있었지만 좋았다. 굳이 따지자면 그날의 수확은 4200원을 얻고 10400원을 냈으니, 6200원을 밑진 셈이다. 하지만 그 어떤 마이너스가 이만치 큰 가치를 나에게 쥐어질 수 있을까. 중고서점을 이용하며 데려왔던 책들 중 가장 상태가 좋았다. 거의 서점에서 파는 책이나 다름이 없을 정도였다. 이 예상치 못했던 책 한 권 덕분에 다섯 권을 짊어져야 했던 무거운 어깨를 그나마 조금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오늘처럼 혹은 어제처럼,
우리가 산다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 좋지 않은 일 그리고 그저 그런 일들로 가득 차있다. 해와 월과 주와 일, 모두가 그러하다. 그렇기에 오늘처럼 혹은 어제처럼, 혹시 모를 좋은 일들로 가득할 내일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여덟 권의 책들 중 다섯 권을 팔지 못했으나 보석 같은 그 한 권의 책을 만날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의 꽃망울이 혹시나 내일 피어날지 모를 아름다운 꽃송이로 피어나려, 반짝이는 햇빛을 만나기 위해서 그때 만난 그 보석 같던 책으로 오늘을 달래려 한다. 그 보석 같던 책 속에서 더 반짝이는 무언가를 만날지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