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도 미워하되 사람도 미워하라

by 오롯하게

왜인지는 모른다. 유독 어렸을 때 미운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을 꼭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안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오롯이 나만 힘들다는 것을. 그럼에도 밉다. 미운건 어쩔 수 없다.



아직도 한자를 닳도록 쓰게 하는 선생님으로 지내고 계실지 참 궁금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사를 왔다. 그 당시 그 도시는 교육의 메카로 일어나고 있던 신도시였는데 그래서인지 ‘ㅇㅇ’ 학원을 말만 하면 학교만치 인맥이 만들어지는 수준이었다. 어찌 되었건 4학년 때 한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뭐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다. 친구들과는 그럭저럭 별 탈없이 잘 지냈으나 최악의 담임을 만났었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자 선생님으로 기억을 하는데, 주특기는 반 아이들을 집에 보내지 않고 오후 저녁이 늦도록 한자만 쓰게 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들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기억나는 것이라곤 뉘엿뉘엿 해가 지는 붉은빛이 창가를 비추도록 우리 반 아이들이 모두 남아서 한마디 말도 없이 공책에 빽빽하게 한자를 쓰는 장면이었다. 도대체 그 선생님은 한자에 무슨 원수를 졌는지, 툭하면 한자를 쓰도록 했다. 오죽하면 저녁 늦도록 쓰지 못한 한자는 집에 가서 모두 써오는 것이 숙제였는데 그게 한두 자 쓰는 것이 아니라 거의 기하급수적인 한자를 쓰는 것이라서 오른팔이 너무 아파도 연필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 서러워 엉엉 울 정도였다. 내일까지 써가지 않으면 써야 할 한자의 수가 두배가 아니라 제곱이 되는 걸 알고 있었기에. 집에 가서 한자를 쓰다가 엉엉 울면 옆에 계시던 엄마가 내 몫까지 화를 내시며 대신 써주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엄마의 팔이 아파지면 그다음은 아빠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반에 부모님도 계시지 않고 얼굴과 손에 사마귀가 가득한 조그만 아이가 있었는데 그 선생님은 유독 그 아이만 미워했다. 툭하면 혼을 내고 아이들 앞에서 면박을 주기 일수였다. 그래서 초등학교 4학년, 그때에 그 선생님이 참 밉고 싫었다. 아직도 한자를 닳도록 쓰게 하는 선생님으로 지내고 계실지 참 궁금하다.




그게 뭐였냐면 링 귀걸이는 ‘학교짱’만 할 수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다사다난했다. 지금 와서 보면 웃음밖에 나질 않는데, 그 당시에는 무엇이 그토록 두려웠는지. 슬슬 머리들이 커지고 사춘기가 다가오자 소위 말하는 ‘학교짱’ 같은 무리가 생겨났다. 4학년 때까지 잘 어울려 놀던 친구 하나가 그 무리에 들어갔고 뭐 이래저래 멀어졌다. 그 ‘학교짱’에 속하는 애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동했는데 뭐 이런 것 들이다. 한창 이성에 눈을 뜨고 멋을 부리려는 여자아이들에게 엄수해야 하는 몇 가지 규칙들이 학교를 떠돌았다. 그게 뭐였냐면 링 귀걸이는 ‘학교짱’만 할 수 있다. 하고 싶다면 콕 박히는 귀걸이만 하도록, 또는 짧은 치마는 ‘학교짱’만 입을 수 있다. 입은걸 보면 뒤진다. 뭐 이런 식이었는데 지금 와서 보면 웃음밖에 나오질 않는다. 그래도 그 당시 학교 여자애들은 참 그 규칙을 잘 지키려 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그 또래들에겐 학교가 사회이자 국가였으니 그럴 수밖에. 아, 더 웃겼던 건 ‘학교짱’ 뿐만이 아니라 ‘학교짱’은 아니었으나 평범했던 아이들과 그 학교짱들 중간에 어설프게 껴서 학교 짱이 되고는 싶으나 그들이 껴주지 않으니 그 밑을 살살살 긁어주는 역할을 했던 무리도 있었다. 자신들은 ‘학교짱’이라 생각했겠지만 ‘학교짱’들이 들으면 헛웃음칠 그런 아이들. 아무튼 그런 애들은 평범한 여자아이들이 링 귀걸이를 하거나 조금이라도 짧은 치마를 입었다 치면 쪼로로 학교짱들에게 달려가 몇 반에 누구누구가 링 귀걸이를 했다더라 갖다 바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 당시 그 학교짱들의 비위를 살살 맞춰주는 어설픈 아이들 중 한 명은 4학년 때 나와 친했던 인물인데 나중 되니 아는 채도 하지 않고 나와 인사를 하는 것이 쪽팔리기라도 하듯, 자신은 뭐라도 된 듯 우쭐거리며 다니는 모습이 같잖았다. 그 아이는 미안하지만 지금도 싫다. 아직도 이 동네에 사는 듯한데 마주치고 싶지도 않다. 뭐 나중에는 그 잘 나가던 아이들에게도 이용당하고 멀어졌으나 그 우쭐댐은 사라지지 않았더라. 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 별것 아닌 아이가 아직도 생각만 하면 치가 떨릴만치 싫다. 아마 나에게 그 아이는 아직도 초등학교 4학년생이기 때문일 거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그래 봤자 니 손해지’ 할지도 모른다.

피크였다. 6학년 때는 완전 막장이었다. 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그냥 무작정 대놓고 나를 싫어하던 A명과 그 A가 무서워 나를 같이 싫어해주던 B와 C가 있었는데 대놓고 나를 괴롭혔다. 생일선물로 오빠가 사준 다이어리를 들고 갔던 소풍에서는 그 다이어리를 훔쳐가 나를 엉엉 울게 만들었고, 결국 선생님이 내 다이어리를 훔쳐간 그 아이들을 불러 혼을 냈으나 당당하고 우쭐하게 잘못을 ‘훈장’쯤으로 여기며 아무렇지 않아 했다. 분하고 억울했고 부모님은 걱정하셨다. 시간이 지나자 A에 지친 B와 C가 슬금슬금 내 눈을 피했고, 혹시 눈이라도 마주치면 미안함과 어쩔 수 없었음이 가득한 눈망을을 흘리기도 했다. 그래도 내 옆에 있었던 친구들 덕에 초등학교를 잘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었던 어느 날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친 A는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잽싸게 눈을 피했다. 그것 봐라. 결국 그럴 거면서 왜 그토록 당당해했는지. 아직도 A만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A가 평생 잘 살지 못하기를 바란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그래 봤자 니 손해지’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밉고 싫고 그 아이가 잘 살지 못했으면 한다. 어쩔 수 없다. 괘씸하고 분한 마음을 아직 삭히지 않은 건 내 선택이다. 부디 잘 살지 못하길.




죄도 미워하되 사람도 미워하라

이렇게 주욱 기억들을 돌이켜보면 나는 참 미웠던 혹은 미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나는 결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그 죄가 그 사람의 안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죄와 사람이 동일시되고 그렇다면 죄도 미워하되 사람도 미워하라. 가 되어야 맞는 말이 아닌가. 나는 유독 초등학교 시절 미워했던 사람들이 많다. 미워할 사람들일 한 시기에 몰아 미워해서 그런지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그런 사람들이 모여사는 세상이니까. 혹 이 글을 읽다가 미워했던 혹은 미워하는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미워함을 그만두지 않았으면 한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이 꼭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다들 미워하는 사람 한 명쯤은 있지 않은가 혹은 미워하고 싶은 사람 한 명쯤은 있지 않은가.






갑자기 나만 이런가 싶다. 나만 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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