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모든 잘못을 판가름하기에 아주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모든 기억은 잊힌다. 그래서 나는 고통스럽다. 잘못은 용서되지 않지만 그 기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혼란스럽다. 결코 맞는 답은 없다. 그렇다. 답이 없기에 더 어렵다.
옳고 그름 또한 없다. 애써 잊히고 있는 잘못들을 떠올리려 노력한다. 그러면 그때의 그 감정들이 다시 되돌아올 거라 생각하며, 혹은 그러길 바라며. 증오로 가득 찼던 올곧았던 그 한 길로 다시 걷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여러 갈래 쪼개진 길을 눈 앞에 두고는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도리질하는 일을 그만하고 싶다. 잘못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잘못에 대한 기억들은 잊힌다. 잊히기 마련이다.
이런 날이 있었다. A 씨와의 안 좋은 기억들은 모조리 사라진채 그간의 좋았던 기억들만 잔뜩 생각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작은 몽우리로 남아있던 분노와 증오와 어떤 붉은 핏덩어리 같은 것들이 사르르 녹는 것이다. 그러면 녹아버린 그 형체 없는 묶은 감정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면 나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무언의, 무형의 혼란 같은 것들이. ‘그래, 이렇게나 좋은 친구였는데 그 작은 몽우리들로 이 관계를 잃는다면 그건 너무 안타깝잖아’하며. 하지만 이중적인 잣대가 있다 함은,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녹아버린 그 형체 없는 감정들은 나도 모르게 다시 내 안에 고스라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 혼란스러워진다. ‘아냐, 그래도 나한테 이런 행동들을 했던 건 절대 용서할 수없지. 절대 안 되는 일이지.’
이러한 것들의 끊임없는 굴레의 원인은 ‘기억’에 있다. 모든 기억은 잊히기 때문이다. 묵어버린 감정은 남을지언정 기억은 잊히기 마련이다. 그 기억에 따른 잘못 또한 잊히기 마련이다. 내가 겪은 혼란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분명 과거의 잘못들은 그 자리에 뻔뻔하게 박혀 그대로 잘 지내고 있는데, 거기에 살로 더해져 있던 기억과 감정들은 그 자취를 드러냈다 감췄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억과 감정들이 그 행태를 감추게 되었을 때, 나는 과연 묵묵히 자리를 잡고 있는 이 ‘잘못’들에 나의 감정을 소비할 필요가 있는가. 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혼란스러워진다.
이 모든 게 기억 때문이다. 잘못은 남아있으나 사라져 버린 잘못에 대한 기억.
그러나 기억이 사라져 버렸을 때, 묵은 감정이 사라져 버렸을 때야 말로 내가 온전히 이성적으로 정신을 차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감정을 쏙 뺸 담백한 이성만 남았을 때야 말로 그간의 잘못들이 용서할 수 있는 잘못이었는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잘못이었는지 판가름할 수 있는 좋은 때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위에 올라와있고 올바른 판가름을 할 것이라 굳건히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