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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아 Nov 12. 2023

밤 11시 3종세트

외롭다. 지친다. 배고프다

어제 만보기로 걸음수 14,465보 저녁은 가벼운 샐러드로 때웠다. 몸속 화력 0... 밤 11시, 전철 안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느릿느릿 걸어 나온다. 출근 때와는 달리 서두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잠들기 이 1~2시간이 온전히 나만를 위한 시간이다.  느닷없이 허기가 밀려온다... 지난밤에는 유명한 먹방 유튜버의 대창전골을 보며 허기를 달랬는데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잊었던 허기가 밀려오는 게 맞는 거 같다... 아니 참았던...  


낮 1~10 시대 시간대의 근무 시간대를 선택하여 일한 지 언 1년이 지났다. 밤 시간대의 허기가 익숙해 질만도 할련만 아직도 밤 11 시대에 허기는 천둥과 같다. 뭐든 다 맛있어 보인다. 이 시간에 무너지면 저녁에 애써 샐러드로 배를 꺼트린 보람이 없을 텐데도 말이다. 이 비대칭적인 식욕은 무엇이란 말인가?


공유오피스 마감 클리닝 일의 특성상  6~10시에 일을 몰아서 하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크다. 14,465보 이 걸음수는 아마도 이 시간대에 나온 것일 것이다. 지친다라는 감정은 또 밤 11시 전철에서 내릴 때 같이 몰려온다. 그때 드는 생각 하나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청소업이라는 게 미래가 보장되지도 않고 나라는 자원은 젊지 않고 이미 몸이 이곳저곳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면역력에 문제가 생겨 피부질환이 시작됐으며 무릎 및 손 관절이 좋지 않다.  같은 시간 파트너도 개인사정을 이유로 자주 바뀌어 내가 교육을 시키고 그의 실수까지 내 책임으로 끌고 나가는 게 버거울 때가 많다. 특히 최근에 온 신입의 경우는 일머리가 없어 팀장한테 못 맡겠다고 말했는데도 억지로 일을 같이 하고 있어 배로 스트레스다. 세상에서 가자미 눈을 뜨고 다른 사람이 잘못을 하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사감 노릇을 하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쁜 상사 노릇까지 하느라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청소일 그거 단순한 거 아냐? 나도 청소일을 하기 전에는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누가 봐도 깨끗이 정돈된 청결된 환경이란 많은 사람의 수고스러움이 거쳐야 나오는 환경이란 걸 내가 스스로 이 일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일을 즐겁게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진짜 요즘말로 퇴사 마렵다.


한국에서 온전히 1인분의 몫을 하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퇴근 후 밤 11시에 자조적인 생각 또한 밀려온다. 나의 체력과 에너지를 갈아서 일을 하고 있지만 매달 월급날에 돌아오는 건 카드사와 보험사에서 제하고 남은 텅장 뿐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안된다. 되뇌어도 ' 난 돈도 남자도 없어!'라는 허탈감만이 밀려온다. 지인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아무리 놀기 좋아하는 나 같은 베짱이 같은 타입이어도 곳간에 쌀이 있고 과자가 있어야 안심을 하고 놀 수 있다고 말을 했다. 그래 나를 밤 11시에 갉아먹는 건 '불안'이라는 또 다른 감정이다. 마음이 불안하고 안정이 안되니 먹을 걸로 누르고 싶어 진다. 식욕하나 누르지 못하는 1차원적인 내가 되기 싫어 상담하는 정신과에서 소량의 식욕억제제를  먹은 지 언 4달째 자주 먹던 야식의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4킬로그램 정도가 감량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데 가끔은 그 식욕억제제를 뛰어넘을 정도로 야식의 유혹이 클 때도 많다. 정말이지 다시금 그날 밤만은 1차원적인 내가 되어 불안 대신 따뜻한 라면이나 편의점 안주 등을 먹고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화장실을 다녀와 얼마나 불안의 몫이 늘었나 체중계로 올라선다. 이 어이 없는 반복이 밤과 아침 사이에 왔다갔다 한다. 야식을 잘 참으면 뿌듯함이 못 참으면 탄식이 나온다.


퇴근 후 나와 같은 직장인이 얼마나 많을까? 평생에 걸친 안정적인 직장이란 80년대~90년대 초에나 나올 법한 슬로건이 된 지 오래다. 나 역시 이 직장에 뛰어들기 전 프리랜서를 꿈꾸며 독립출판을 기반으로 한 나만의 강의업을 만들겠다고 온오프라인 강의를 만들고 제안도 받았으나 신통치 않았다. 회사가 아닌 한 명의 개인이 하나의 업을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는 일이 녹록지 않다는 걸 2~3년의 시간을 쏟아붓고서 알게 됐으나 가끔씩 스스로 일을 만들고 스케줄링했던 그 자율성과 자유가 못 견디게 그리울 때가 있다. 돈의 크고 작음을 떠나 그때는 성취감이란 감정의 풍만함이 내 마음에 고양이 되었으니 말이다. 가끔씩 퇴근을 할 때 저 멀리 전철 입구 너머에 걸려있는 달무리를 바라볼 때면 그런 생각을 한다.


" 나는 지금 어딘가로 가고 있을까? 이 방향으로 이렇게 떠밀리듯 가고 있는 게 맞는 것일까?

오늘따라 바람은 차고 마음은 또 왜 이리 시린 거지?"



나의 가슴 가운데 도넛 구멍에 오늘 밤 또한 바람이 지나간다. 이 외롭고 지치고 배고픈 3중고를 언제까지 가지고 갈 수 있을까? 매일 밤 고민하며 잠자리에 든다. 그러니 자꾸 괴랄한 꿈에 시달리는 것이겠지? 꿈없이 달디 단잠을 자야 다음 날 컨디션이 좋을 텐데 말이다.


왜 우리는 사서 걱정을 하고 덧붙이지 말아야 할 칼로리를 이고 다니고 행복 대신 불행에 익숙해 하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밤 11시 3종세트 외롭다. 지친다. 배고프다 세트 많이 드셔 봤지요? 3종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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