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편은 오십 일곱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오랜 세월 독일에서 부모형제도 일가친척도 없이 달랑 우리 식구끼리만 살다 보니
가족의 생일이란 우리에겐 국경일 이자 명절이다
때문에 아이들은 직장에 휴가를 내서라도 집으로 오려고 노력한다.
특히나 이번 아빠의 생일은 지들마저 없다면 엄마 아빠 단둘이 강아지 나리뿐 일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터라 오스트리아에 있던 큰아들도 베를린에 있던
딸내미도 아빠 생일에 맞춰 집으로 왔다.
교환 학생으로 캐나다에 가 있는 막내는 영상 통화로 빈자리를 대신했다.
우리 집의 생일 파티는 일단 생일 맞은 사람이 그날 저녁메뉴와 케이크를 선택할
권리를 갖는다.
그래서 어느 때는 미역국에 한식이 될 때도 있고 또는 이태리식 누들, 스페인 요리, 중식 또는 베트남 요리 일식 초밥, 독일 가정식,독일식 돈가스, 햄버거 기타 등등…
생일 맞은 사람이 원하는 데로 생일상을 차리기도 하고 식당을 예약해서 가기도 한다.
케이크는 무조건 원하는 종류로 집에서 굽는다.
이번 남편의 생일날에는 그가 원하는 미역국 한상과 티라미수 그리고 딸기 케이크를 대령했다
한식을 가장 좋아하기도 하고 저녁 먹고 막내와 시간 맞춰 온 가족이 영상 통화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여기로 11학년 우리로 고등학교 2학년인 막내는 캐다나로 일 년간 교환학생을 갔다
독일 아이들은 10학년 11학년 우리로 고등학교 1학년 2학년 때 어디론가 교한학생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학교마다 또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주관하는 기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아이들은 짧게는 이삼 주에서 길게는 삼 개월, 육 개월, 일 년 교환학생을 다녀온다.
아이들 마다 가는 나라도 그리고 일정도 다를 수 있다. 개인이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요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겠습니다!)
우리 막내는 태어나서 17년 지인생 처음으로 이렇게 길게 집 떠나 용감하게 지내고 있다.
잘 지내고 있는 막내는 괜찮은데 때마다 아이의 빈자리에 울컥하는 내가 문제다.
어째 이런 건 매번 적응이 잘 안 되는지..
큰아이도 딸내미도 그 나이 때 이미 일 년씩 다녀온 교환학생인데..
나는 그때마다 늘 새롭다.
이렇게 가족이 모여 생일 상을 차릴 때면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없는 아이의 접시와 수저를 들고 눈가에 눈물방울을 그렁그렁 매단 체 코끝이 찡해 진다
그럴때마다 콜라 마시고 트림 안 나올 때
처럼 맵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막내는 아빠 생일 축하를 실시간으로 해 주겠다며 일일 리포터를 자처했다.
시차가 9시간이나 있다 보니 우리는 저녁을먹고 난 시간이 그 동네는 학교에서 아이들 점심시간이었다.
막내에게 걸려온 영상 통화를 함께 하느라 나머지 식구들이 옹기종기 소파에 모여 앉아 서로 얼굴을 들이미느라 핸드폰의 작은 화면이 꽉 찼다.
막내는 점심 도시락을 먹어 가며 실시간으로 학교 그리고 학교 주변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리포터처럼 설명을 해 주었다.
이 동네보다 화창한 날씨.. 파란 하늘..
캐나다의 학교 건물과 동네 모습.. 중간중간에 들려오는 그 동네의 자연스러운 소리 들과 간간이 들려오는 아이들 웃음소리..
그때마다 막내의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해설? 에 우리는 박장대소했다
아이가 생활하고 있는 학교와 동네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나니 왠지 얼어 있던 손이 온기로 풀리며 따뜻해지듯 마음이 스르륵 하고 녹아내렸다.
30분 동안 이어지던 영상 통화가 수업을 가야 하는 체격은 크지만 아직도 귀여운
막내의 안녕~! 인사로 막을 내렸고 우리는 함께 남편 생일 축하 노래를 힘껏 불러 주었다.
아이처럼 좋아하던 남편은 케이크에 꽃은 생일 촛불을 입으로 장풍을 날리듯 한 번에 껐다.
물론 이제는 나이 대로 초를 꽂으려면 한참을 꽂아야 하고 케이크에도 구멍이 숭숭 뚫린다.이번엔 큰 숫자 초를 꽂아 굵고 간단했다
그렇게 케이크를 나누어 먹으면서도 우리는 연신 막내와 통화했던 캐나다 일상에 관한 내용들이 떠올라 재미나게 웃었고..
큰 아이들의 지난 교환 학생 때의 추억들을 소록소록 소환해 냈다.
그리고 대망의 선물 증정 시간!
아이들 마다 포장해 둔 선물을 꺼냈고 한상 가득한 선물 꾸러미에 신이 난 남편은
입이 귀에 걸렸다.
선물 속에는 책도 나오고 옷도 나오고 향수도 나오고 건강 체크 하는 시계도 나왔다.
그런데 단 하나 카드에 적혀 있는 딸내미의 비공개 선물!
마치 백지 수표 같던 선물은 흔들어 보아도 만져 보아도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카드에는 생일 축하 메시지와 함께 날짜와 시간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딸내미는 곧잘 이렇게 수수께끼 같은 선물을 하고는 한다.
지난번에 내 생일에는 날짜, 시간, 장소만 적혀 있었다
가보니 마사지 샵이었다
이번엔 장소가 집으로 되어 있었다 뭘까? 하며 우리는 궁금해 못겼디겠다는
얼굴로 딸내미를 쳐다보았다.
그표정에 빵 터진 딸내미는 퀴즈 같던 선물의 정체를 공개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온라인 피아노 강습 이였다.
동생들이 많아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울 기회를 제때 갖지 못했던 남편은
가끔 아이들이 피아노 치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며 우와 멋지다 좋겠다를
연발하고는 했었다.
딸내미는 아빠의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있었던 게다.
남편은 딸내미의 기특한 선물에 얼굴이 빨개지며 뛸 듯이 좋아했고 그 모습에 우리도 덩달아 감동했다.
딸내미 덕분에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남편은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요즘 우리 집에는 저녁마다 맑고 고운 피아노 소리가 난다.
세상 진지한 얼굴로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 위를 날아다니는 남편의 긴 손가락들은
세계적인 명곡들을 연주 하느라 바쁘다
그중에 겁나 유명한 곡이 있다
어린 시절을 보낸 누구 에게나 친숙한 그 곡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오늘도 씩씩하고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우리 집 거실을 가득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