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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y 10. 2020

남편의 오지랖으로 만난 운명 같은 그날.


우리의 미래는 때로는 예상치 못한 시기에 짐작도 되지 않는 곳에서 우연히 만나 지기도 한다.


그날은 초록이 우거지다 못해 울창한 나무 사이로 어디선가 매미가 울어 댈 것 같은 더운 여름날이었다.

한 달 뒤면 막내가 세상에 나오기로 되어 있어 배는 남산만 하고 그냥 서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던 7월이었다. 이런 날에 일을 만들어 온 남편에게 눈으로 욕을 하며 투덜투덜 부지런히 무거운 몸을 움직 였다.

남편과 함께 자동차 트렁크 안으로 아침 내내 준비한 것들을 차곡차곡 옮겨 담았다.

그렇게 어디 이사라도 가듯 가득 고 큰아이의 학교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그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금 대학교 졸업반인 우리 큰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독일은 초등학교가 4학년까지 밖에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4학년 2학기 말이 되면 아이들은 이미 진학할 학교들이 정해 지고 더 이상 진도 나갈 수업 내용도 없어 대부분 특별 수업이나 다양한 행사들을 한다. 그 당시 임신 중이라 쉬이 피곤했던 나는 늘 가던 학부모회의에 남편을 대신 보냈다. 언제 어떤 학교 행사가 있는지 꼼꼼하게 잘 적어오라는 당부와 함께 말이다.


그런데 남편은.. 적어오라는 내용은 안 적어 오고, 기왕이면 부모님들 중에서 아이들 특별수업을 진행해 주시면 어떻겠냐는 담임 선생님의 제안에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번쩍 들었단다.

그리고는 용감하게도 우리 마눌이 아이들과 한국요리 강습을 해줄 수 있다고 했다는 거다.

자기가 할거 아니라고 오지랖 떨며 신나 하던 남편에게 담임선생님과 다른 학부모 들은 열광 하며 뜨거운 박수를 보내 주었다. 그 덕분에 만삭의 나는 요리할 부엌도 제대로 없는 학교에서 삼복더위에 아이들과 무슨 한국 요리를 해야 하나 고민해야 했다. 그냥 내가 학부모 회의 가고 말걸... 꺼이꺼이 하면서...


나는 어떻게 하면 20명이 넘는 아이들과 배 나온 내가 안전하게 그리고 재미나게 한국 요리를 함께 할 수 있을까? 하다 재료 손질도 미리 준비가 가능하고 부엌이 없어도 책상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꼬마 김밥으로 메뉴를 정했다.


그렇게...

학교 교실에서 아이들은 도마 대신 종이 접시 위에 여름이면 그릴 용으로 슈퍼에서 살 수 있는 일회용 플라스틱 칼로 싱그러운 초록의 오이도 빨간 게맛살도 노란 단무지도 신나게 썰어 담았다.

중간중간에 그냥 먹어도 맛난 달걀지단과 소시지를 처음 먹어보는 짭조름한 갈색의 볶은 어묵 맛보는 잔재미는 덤이었다. 거기에 아이들의 이해를 돕고 흥미를 끌어올리기 위해 실전에 들어가기 전에 여러 가지 김밥 사진들과 다양한 식재료 사진들을 보여 주며 퀴즈 게임 같은 이론 수업도 곁들였다.

그리고 각자 넣고 싶은 식재료 들을 넣어 꼬마 김밥을 말았다. 조그만 손으로 조물닥 조물닥...


또, 자신의 작품을 집에 가져가고 싶어 할 아이들을 위해 미니 도시락 통도 준비했다.

아이들은 처음으로 만들어 본 옆구리 터진 귀여운 꼬마 김밥을 나누어준 통에 조심스레 담았다.

그날, 배운 대로 집에서 가족과 함께 김밥을 만들어 보라고 레시피가 적혀 있는 한국요리 수료증도 나누어 주었다.

그 하루를 위해 몇 날 며칠을 준비한 정성이 통했던 걸까?


날씨도 덥고 낯선 요리보다는 나가 놀고 싶을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두 시간을 집중하며 재미있어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 되자 우리 반 아이들의 자랑으로 덩달아 끼게 된 옆 반 아이들과 교사들 그리고 교장선생님까지 40여 명의 크고 작은 사람들로 교실 안 이 꽉 찼다. 옆구리 터진 것부터 리본처럼 묶어 땜빵한 것까지 생김새도 각양각색이었던 김밥을 나누어 먹으며 실내 소풍 이 되었다.

아마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와 함께 가슴속 저 깊은 곳에서 간질간질한 것이 파도처럼 밀려온 것은...

 강습이 내 생애 요리강습이었다.


그날의 강습은,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가 물 위로 동그라미를 연이어 그려내듯 그렇게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래서, 독일 미대에서 서양 회화를 전공한 나는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어야  시간에..

아이들 학교, 유치원, 복지회관, 어머니 회관, 시청 문화 센터 할 것 없이 한국요리 강습을 원하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건 달려갔고 대상이 아이들이던 어른들이든 간에 열정적으로 강습을 했다.


그리고 현재는 독일의 시민대학이라 일컫는 문화센터 Vhs와 가톨릭 문화센터 KFB 두 곳에서 요리강사로 일하 다양한 독일 사람들에게 한국요리를 통해 한국을 알린다. 남편의 오지랖으로 꼬맹이들과 만나 김밥을 만들던 운명의 그날처럼 즐겁고 신명 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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