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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Jul 13. 2024

4.초승달/초생달

-초승달 뜬 밤이면 당신이 생각납니다.

맞춤법이 헛갈리는 네번째 단어는,

초승달/초생달 입니다.  

 



당신은 초승달을 본 적이 있나요?


음력 초하루부터 며칠 동안 보이는 달을 초승달이라고 합니다.


'음력으로 그달 초하루부터 처음 며칠 동안' 초승이라고 하는데, 그 짧은 기간동안에도 초저녁에 잠깐 서쪽 지평선 부근에서 볼 수 있는 달 '초승달' 일컫습.


기억을 더듬어보니, 저역시 '여인의 눈썹같이 고운' 초승달을 깜깜한 밤하늘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어휘의 근원을 더듬어 가보니, 초승달 '初生'이라는 한자어에 '달'이라는 우리말이 만나 이루어졌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초생이라고 해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닌 듯한데, 왜 표준어로 삼지 않았을까요?


그에 관해, 국어생활백서(김홍석 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초승에 뜨는 달은 ‘초승달’이 옳다.
물론 이 단어는 ‘초생(初生)’과 ‘달’이 합성한 경우이나, 어원에서 멀어져 굳어진 경우 관용에 따라 쓴다는 원칙에 따라, ‘초승달’이 올바른 표현이다.

이러한 풀이는, 15세기즈음의 문헌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 초승달의 옛말 초생달(初生ㅅ달)이 시간의 흐름속에 현재에 이르는 동안 변화를 겪으며 '초승달'이라는 형태로 굳어져 표준어가 되었다, 고 이해됩니다.

우리의 언어는 생성-성장(변화)-소멸의 과정을 겪습니다.

언젠가 생겨난 어떤 말(어휘)은 그 사회의 화자들에게 사용되는 정도에 따라 조금씩 변화되며 더욱 널리 쓰이거나 혹은 상대적으로 잊혀지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초승달이라는 단어 역시, 처음에는 초생달이라는 형태로 생겨나고 사람들 사이에서 쓰였으나,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자연스레 초승달로 변화되고 굳어졌습니다.

저역시, 막상 쓰려고 하면 '초승달'인지 '초생달(X)'인지 헛갈리는 경험이 없지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어휘의 역사를 염두에 두면 앞으로는 더이상 헤매지 않고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 것같습니다.


초승달이 문장에 쓰이는 예는 이렇습니다.

'혜성같이 등장한 그녀의 매력은 초승달 같은 아미에 있다.'

'까만 밤 하늘에 뜬 초승달 점점 둥글어 가는 열흘께 밤이다.'

'어린 시절, 초승달  밤이면 외갓집 마당가에 있는 변소에 가야할 때마다 무서움에 벌벌 떨었.'


맞춤법이 종종 아리송하여 헛갈렸던 분들도 이제부터는 잘 사용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봅니다.


초승달의 의미를 생각하며 다음 이야기를 읽어볼까요.



“엄마! 아빠 언제 와요? 아빠 보고 싶어요...”


이제 다섯 살이 되는 정미는 오늘도 어머니를 붙잡고 몇 번이나 이렇게 묻습니다.

어머니는 작은 한숨을 삼키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딸내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꾸합니다.


“응...지난번에 엄마가 말했잖아? 하늘에 달이 우리 정미 눈썹처럼 예쁜 초승달이 되면 오실 거라고...”

“으응...그랬지?! 언제 초승달이 되는데? 아직 멀었어요?”


밤 8시만 되면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자리에 드는 어린 정미는 밤하늘의 달을 제대로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때마다 정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눈썹만 만지작거리며 막연하게 초승달을 떠올려 봅니다.


그때였습니다.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던 오빠 정우가 동생을 향해 짜증스레 내뱉었습니다.


“어휴..저 바보가...아무 것도 모르면서!! 초승달이 백번 변해도 아빠는 안 온다고! 이 바보야!!”


초등학생인 정우는 이렇게 쏘아붙이며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꽝 닫아버렸습니다. 어머니는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에 딸내미의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았습니다.


“엄마, 왜-?! 오빠는 왜 아빠가 안 온대?! 올 거지...오는 거 맞지? 초승달 되면 오는 거 맞지? 으아....앙...!”


정우와 정미 아버지 오준식 소방관은 지난 겨울 심야 화재 현장에 나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장례식을 치른 뒤 어느 날 아버지를 찾으며 보채는 어린 정미에게, 어머니는 마침 유리창 너머로 방안을 훤히 비추던 둥근 보름달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둥근 달이 우리 정미 눈썹처럼 예쁘고 날씬한 초승달이 되면...그때 아빠가 돌아오실 거야!”


그로부터 벌써 봄과 여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빠를 기다리는 어린 딸을 볼 때면 어머니 가슴은 찢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 어린들을 두고 먼저 그렇게 가버리면 어떡해요...난 어떻게 살아요?!! 흑흑흑..”

“엄마-엄마, 정미가 아빠 또 언제 오냐고 해서 우는 거야? 안 그럴 게요...엄마 울지 마세요...으앙-앙!”


정미는 어머니의 품에 안긴 채, 흐느끼는 어머니를 꼭 끌어안으며 더욱 서럽게 울었습니다.

언제나 의젓하던 초등학교 5학년생 정우도 방안에서 혼자 흐느꼈습니다.


“저 바보 같은게...왜 자꾸만 아빠를 찾아...흑흑...이젠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건데...아빠...왜 우리만 남겨놓고 떠나셨어요..? 네...? 나는 아직 아빠가 필요하다고요...불난 곳에 제일 먼저 출동하는, 세상에서 제일 멋진 소방관 우리 아빠였는데!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워 했는데요....아빠...보고 싶어요....흑흑흑!”


다음 날 저녁, 어머니는 정우, 정미와 마주 앉았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정우, 정미야! 너희들이 우리에게 와주어서 아빠와 엄마는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지...너희도 잘 알고 있지? 그래...그래서, 이제는 좀 더 솔직해져야겠다고 엄마가 생각했어...”


어머니의 말씀에 정우가 불안한 듯 정미를 보며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무슨 말씀하시려고요....엄마...!”


정우의 마음을 아는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그래...맞아...정우는 오빠니까 이미 알고 있지만, 우리 정미한테는 엄마가 거짓말을 했거든...초승달이 뜨면 아빠가 돌아오실 거라고 했던 말...정미야, 엄마 말 잘 새겨들어야 한다?! 정미한테는 아빠가 외국으로 파견 나가셨다고 했지만, 사실대로 말할게....정미가 가장 사랑하는 아빠는 지난 겨울 화재 현장에서 건물이 무너지는 바람에 돌아가셨어! 그래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실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는 엄마하고 우리 셋이 똘똘 뭉쳐서 살아야 해! 그래도 아빠가 훌륭한 소방관이셨다는 사실은 잊으면 안돼, 정미야!”


그러자, 정미가 참았던 울음보를 터뜨리며 서럽게 말했습니다.


“다 알아!! 나도...알아...아빠가 안 오는 거.... 다 알아...그래도, 나는 달 볼 때마다 아빠 생각할 거야! 으앙! 아빠 보고 싶어!!!”


그날 밤, 정미의 작은 방 창가에 고운 초승달이 떠올랐습니다.




초승달 음력 초하루부터 며칠 동안 보이는 달. 초저녁에 잠깐 서쪽 지평선 부근에서 볼 수 있다.

흔히 '초생달(X)'이라고 쓰기도 하지만 표준어는 아닙니다.


기억하세요!

초승달만 표준어로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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