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옴!?
익숙한 장소에서 익숙한 동료들과 일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어르신들도 절반정도는 얼굴을 알고 함께 지내온 분들이라 어색함이 적었고, 그사이 새로 입소하시어 생활하고 계신 분들을 대하는데서도 낯설음이 금세 해소되어갔다.
다만 그 여러분의 (나에게)새로운 어르신들 중, 요주의대상이 있다는 사실만이 나를 적잖이 당혹시켰다.
그것은 출근을 시작하고 나서야 알게된 사실이었다. 그러니 빼도박도 못할 상황에 처한 것이다.
405호에는 두분의 여자어르신이 계셨는데, 두분 다 와상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분은 살집이 제법있고 몸무게가 나갈 듯한 어르신으로, 녹내장으로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라 식사도 떠먹여드려야 하고 몸집이 무거워서 기저귀케어시 이리저리 돌리기도 힘이 들었다.
그러나 인지는 비교적 또렷하여 대화를 시도하면 반응하며 대답도 하시는 편임에도 스스로 몸에 힘을 주어 몸을 뒤척이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첫 인상은, 바짝마르고 조그만 체구에 온몸에 발진이 나있었으며 쉼없이, '선생님 도와주세요...일어나게 해주세요.'라고 중얼거리셨다.
피부병?? 온몸에 번진 발진은 무척 가려워서 양손을 다 묶어놓은 상태였다. 손이 자유롭기만 하면 온몸을 긁어대기 때문이란다.
아...이게 뭔가요?
나의 불안과 의구심에 답하는 동료들의 설명은 이렇다.
그분은 2~3달전에 입소하셨는데, 그 당시부터 온몸에 그런 피부병을 가지고 있었다. 입소 상담시, 그런 피부병환자는 입소가 제한되어야 하는데, 우리 박애주의자 원장님께서는 안타까운 가족들의 사정을 외면하지 못하고 받아주셨다. 입소후, 그 피부병은 어르신이 머물게 된 2층에 퍼졌고, 그제서야 확인해보니 옴이었다.
그로부터 모든 어르신과 근무자들과 당사자 어르신에게 옴치료제를 바르고 이리뛰고 저리뛰고 해가며 난리법석을 떨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어르신은 병원에도 다녀오고...하참. 정말 미안하지만 그때라도 옴의 원천인 형자어르신을 우선 요양원에서 퇴소 조치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어찌된 이유인지, 어르신은 지금까지 이곳에 머무르며, 한걸음 더 나아가 내가 출근하기 직전 1~2주일전에는 내가 근무하게될 4층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때는 옴이라고 해서 치료제 쓰고 해서 다 나았다고 했어요....지금은 그냥 알러지성 피부염이래요...
정말? 진짜로??
그런데 현재, 내가 출근해서보니 근무자들은 물론 다른 어르신들도 모두 여기저기 가려움증때문에 고초를 를겪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옴은 아니라고, 왜 그렇게 애써 진실을 외면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으나 모두들 제발 옴이 아니길 바라는 듯한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근무를 시작한지 2주정도가 지나자, 어느날 내 왼팔뚝에 발진이 생겨났다.
나도 가렵기 시작한다고 이야기하자, 근무자들은 또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옴은 아니래요, 그냥 알러지피부염이라고...해서 다들 각자 피부과 다니면서 약 사먹고 바르고 하면 나아져요. 그랬다가 여기 오면 또 가렵고....
무슨 바보천치들도 아니고....명백한 원인제공자가 버젓이 있는데도, 그저 알러지성피부병이라며 매일 연고만 처발라주며 근무자들과 그외 선의의 피해자 어르신들은 제 팔뚝만 긁고 앉아있는 꼴이 너무나 우스꽝스러웠다.
그때마다 원장님이 소극적이라고 전한다.
그때 원장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원장은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하나의 시설, 그곳에 상주하는 인원들에 대하여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다. 그런의미에서 입소상담 과정에서 피부병이나 매독 등 전염성 질환이 있는 대상자는 받아들이면 안 된다. 문제가 있는 한 사람이 입소함으로써 수십 명의 인원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 되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입소절차에서 허점이 있어서 입소했더라도 이와같은 문제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났을 때라도 즉각적이고 단호한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원장은 누가보아도 방관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의 태도에 대해, 근무자들은 말했다.
결론적으로 돈만 밝히는 시설장의 태도가 모든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시설장, 원장이 전권을 휘두른다 해도 모든이들의 건강과 관련된 이같은 상황에서조차 단호하고 적극적으로 항의하지 못하는 근무자들도 참으로 한심하다 싶었다.
아무튼, 소심한 불만의 소리일지언정 결국 원장에게 반복적으로 전해졌고, 마침내 그 가족이 다시 찾아왔다. 요양원의 모든 사람들이 전염증상을 보이니 다시 한번 병원에 가보시라고 한 듯하다.
그 가족은,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있을 때 감염되었고 심해졌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약간 호전된 상태에서 마치 대수롭지 않은 병인양하여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가족들도 어머니의 상태에 놀랐는지, 다음날 형자어르신은 병원으로 갔고 오후에 긴급공지가 떴다.
허탈했다.
알러지성 피부염이라고 애써 둘러대던 근무자의 말에 속아, 옴인 줄도 모르고, 나도 그분의 기저귀케어나 식사도움(떠먹여드림) 등을 수 차례했던 장본인으로서 그야말로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형자어르신은 병원진료 후 집으로 갔다고 했다. 옴 확진을 받았으니 요양원으로는 일단 돌아올 수 없을 뿐더러, 안타깝지만 완치되기 전에는 이곳으로 다시 올 수 없다.
솔직히, 그 소식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나는 형자어르신을 계속 돌보아야 한다면 퇴사를 할 수도 있다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출근한지 한달도 안 되어 피부병환자를 돌보기 싫어 도망친다는 낙인을 받는 것은 몹시 괴로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원장이 아무런 조치를 끝내 취하지 않는다면 나는 탈출을 시도할 생각이었다.
형자어르신이 떠난 요양원에서, 전 날밤 모든 어르신에게 옴약을 몸에 바르는 조치가 취해졌고 어제는 일제히 목욕을 시켜서 약을 닦아내는 조치가 더해졌다.
한편으로는 본의 아니게 옴에 걸린 어르신을 너무 탓하는 것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또 그런 피부병에 걸린 어르신을 걸러내고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런 분은 어디로 가야하느냐고 되물을 지도 모르겠다.
참 안된 말이지만, 옴과 같은 전염성이 강한 피부병환자는 일단 공동생활을 하는 시설에는 애초에 입소할 수 없다. 안타깝지만, 그 한 사람을 위해 시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분은 그 치료가 가능한 병원이나 자신의 집에서 격리상태로 철저하게 치료를 받는게 우선이다.
완벽하게 치료가 끝난 뒤에나 공동시설에 입소할 수 있다.
후진국형 피부병이라는 옴 환자가 늘어나는 원인은 요양시설 확대와 집단생활 증가, 과거에 비해 약해진 옴에 대한 인식, 옴이 번식‧전파되기 좋은 시설 환경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요양병원에서 감염되었다면 그곳에서 끝까지 치료를 받아 완치되도록 해야한다. 그렇지않은 상태에서 형자어르신처럼 다시 요양원 등으로 옮기는 것은 더 많은 피해를 확산하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물론 요양원에서도 옴에 감염될 수는 있다. 이번처럼, 옴에 감염된 환자가 입소한 경우가 그렇고, 그렇지 않더라도 위생관리를 철저하게 하지 않는 시설이라면 어디를 막론하고 안전하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