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 party
-이 새끼 저기 왔네, 야 김동수!
상배의 장례식엔 서국대 09학번 동기들이 모여 찐하게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대학교 1학년 시절부터 상배를 포함한 5명의 친구들은 매일같이 몰려다니며, 미대생과의 과팅에서 성공확률을 높이는 법, 가을축제 주점에서 여학생의 번호를 따는 법 따위를 논하곤 했다. 주로 이런 대화는 목소리가 큰 창석의 주도로 시작됐다. 스무 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해박하고 노련한 그의 모습은, 풋내기 남학생들의 선망을 사기에 충분했다.
-어이구~ 우리 감독님 오셨어?
-감독은 무슨, 아니야
창석은 영화 일을 하는 동수를 늘 그렇게 불렀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작한 늦깎이 영화였기에, 동수에게 감독 입봉은 아직 머나먼 얘기였지만 창석은 언제나 그랬다. 동수는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가 초라해 보였는지 급히 화제를 돌렸다.
-다들 일찍 왔네?
-나는 퇴근하고 바로 왔지
-대기업이라 워라밸이 좋긴 좋구나. 박민기 성공했네?
-야 성공은 무슨.. 이거나 먹어라, 맛있더라.
민기는 홍어무침과 머릿고기를 동수의 앞으로 밀어줬다. 한 끼도 먹지 못한 동수는 허겁지겁 허기진 배를 채웠다.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창석과 성훈은 재미있는 놀림거리라도 발견했는지 키득거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자신을 향하고 있었지만, 동수는 두 사람의 눈빛을 애써 피하고 있었다. 지켜보던 창석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야, 넌 옷이 그게 뭐냐?
-아, 촬영장에서 급하게 오느라
-그래도 그렇지 장례식장에 추리닝 바람은 좀… 그렇지 않냐?
-촬영할 땐 이게 편해서
-촬영? 중요하지… 하여간 옛날이랑 똑같네. 학교 다닐 때부터 좀 특이했잖아 얘가. 남들 취업준비한다고 바쁠 때 혼자 1년씩 유럽여행을 가질 않나. 남들 대기업 갈 때 혼자 영화판에 뛰어들질 않나. 예술가야 예술가 아주. 자유로운 영혼!
3학년 2학기 가을축제가 끝난 뒤였다. 교내 게시판은 <미래그룹 채용설명회>, <2012 IT기업 취업박람회>, <08학번 국가고시 합격자 명단> 따위의 공고로 온통 도배가 되어있었다. 5명의 친구들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친구들이 변한 건 그날부터였다. 여학생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일도, 1교시 수업을 째는 일도, 중앙광장의 잔디밭에서 낮잠을 자는 일도 모두 그만뒀다. 창석과 성훈은 CPA 준비를 위해 인터넷 강의를 등록했고, 상배와 민기는 대기업 입사를 위해 스터디에 가입했다. 동수만은 예외였다. 동수는 프랑스 파리로 가는 편도 항공권을 끊었다.
-지금 동수 패션이 딱 그거 아니냐? 우리 상배 자취방 놀러 갈 때 딱 그 패션.
-오! 맞아 맞아.
와이셔츠에 넥타이까지 갖춰 입은 창석과 성훈은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상배와 동수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다. 촌놈들만의 알 수 없는 동질감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두 사람은 다른 친구들보다 더 빠르게 가까워졌다. 서울 토박이들이 막차를 타고 떠난 새벽에도, 상배와 동수는 집 앞 편의점에 앉아 맥주 한 캔씩을 더 마시곤 했다. 주말에도, 방학에도 오갈 데 없었던 두 사람은 늘 함께였다.
동수가 출국 하기 전날 밤, 상배는 동수를 집 앞 편의점으로 불러냈다.
-내일이냐?
-응, 새벽 6시 비행기
-언제 오게?
-모르지, 돈 떨어지면?
-이 새끼 존나 멋있네… 나도 너처럼 멋지게 살아야 되는디… 아따 여행 한번 못 가보고 대학생활 끝나게 생겼구만
-가면 되지, 알바해서 모은 돈은 다 어디가고
-월세 내고, 등록금 보태고, 책 사면 쥐뿔도 없지
-그러냐…
-응. 난 대기업이나 갈란다. 연봉 한 6000 된다는디. 그거면 살 만하지 않겠냐? 너 영화판 기어 들어가면 처음에는 돈도 못 벌 거 아니여. 술은 형이 살게. 걱정 말어. 대신 나중에 잘 되면 여자 연예인 소개 시켜주는거다. 알았지?
그날의 실없는 대화는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상배는 짐을 싸러 들어가는 동수에게 내년 가을축제 전에는 꼭 돌아오라고, 마지막으로 신나게 한 번 놀아보자고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10년의 시간이 흘렀고, 창석과 성훈은 바라던 대로 회계사가 되었다. 민기는 IT기업에 입사했고, 상배는 몇 번의 취업 실패 끝에 장흥으로 내려가 어머니의 정육점을 물려받았다.
-우리가 벌써 서른둘이다 동수야, 이십대 대학생이 아니라고. 언제까지 그렇게 자유로운 영혼처럼 살 순 없어. 응? 회계사든 영화감독이든 정육점집 아들이든 지켜야 될 선이란 게 있는 거야.
-에이~ 급하게 왔다잖아. 그리고 오는 게 중요하지 옷이 중요하냐? 그러니까 그만해 새끼야. 술 좀 작작 처먹고.
민기는 창석의 술잔을 옆으로 치웠다.
-그만하긴 뭘 그만해. 아니 내 말이 틀려, 김감독?
창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동수를 바라봤다. 술에 취해서인지, 상배의 죽음 때문인지, 창석의 눈엔 묘한 광기가 서려있었다. 쓰러진 술잔에서 흘러내린 소주는 동수의 추리닝 바지를 서서히 서서히 적시고 있었다.
-아이 시팔 진짜, 감독 아니라니까...
동수는 플라스틱 숟가락을 던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기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창석과 성훈은 새하얀 와이셔츠에 튄 육개장 국물을 닦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영정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상배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씁쓸해 보였다.
<마지막 축제> 21.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