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지휘관의 '독전(督戰)'은 물론 꼭 필요합니다. 우렁차고 확신감에 넘친 지휘관의 호령은 어쨌든 병사들로 하여금 총을 발포하게 만듭니다. 발포는 무시무시한 적, 그리고 자신이 남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죄책감으로부터 병사들을 해방시켜 주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탕!' 하고 자지러지는 소음과 전신을 휘감는 진동은 병사들의 신체에 아드레날린을 활성화시킵니다. 이에 미국의 저명한 군인 조지 마셜(George Catlett Marshal)은 '두려움의 치료'를 위한 발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말씀드렸다시피 우크라이나 전쟁의 독전 지휘관은 단연 미국입니다. 뭐 따지고 보면 2차 대전 이후 발생한 거의 모든 전쟁이 그랬죠. 미국이 세계의 '경찰국가'라는 믿음은 여전히 굳건합니다.(물론 최근 들어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시청자들은 매우 자연스럽게, 지휘봉을 미국에 건넸습니다. 그들은 소련을 포함한 '포악한 세력들'을 상대로 빛나는 전과를 거둔 바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전쟁 국가"(레이철 매도)니까요.
전쟁 초기, 미국은 능수능란한 독전 지휘를 펼쳐 보였습니다.패튼 장군처럼 마냥 폭력적인 지휘로 일관하지도 않았죠. 미국은, 늘 그랬듯, '정의의 전쟁'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사실상 형해화되다시피 했던 '전범국가(war criminal countries)' 그리고 '전쟁범죄자(a war criminal)'의 낙인을 꺼내 들었습니다.
전쟁 시작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인 3월 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푸틴을 '전쟁범죄자'로 처음 언급함으로써 이 강력한 낙인의 효과가 발동되기 시작했습니다. 5월에는 러시아의 전쟁범죄 증거를 수집하는 '분쟁관측소'를 설립했고 6월에는 미 법무부 내 '전쟁범죄 책임팀'을 출범, 조사관들을 우크라이나로 파견했습니다. 여기에 이른바 '나치 사냥꾼'으로 불리는 36년 차 베테랑 법무부 직원이 포함되면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죠.
이쪽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시청자들은 자신의 선택이 도덕적으로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죠. 무엇보다 전범국이라니! 과거 나치 전범을 단죄했던 뉘른베르크 법정과 일본 군국주의자들을 단죄했던 도쿄재판이 시청자들의 뇌리 속을 스쳐갑니다. '만약 러시아가 패배한다면' 시청자들은 그때와 같은 세기의 정의구현을 목도할 기회를 얻을 것입니다.
어쩌면 단두대로 향하는 러시아 전범들의 모습을 역사의 필름 속에 담을 수도 있겠죠. 인생의 말미에 어떤 특별한 시대 -곧 맞이하게 될지도 모를 '뉴월드(New-World)'. 그것이 전쟁을 통해 열린 다는 것은 유감이지만- 를 경험했다는 역사적 효능감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결코 사악한 상상이 아닙니다. 거듭 강조드립니다만 침략전쟁은 그 자체로 면죄부를 얻을 수 없고 러시아는 이미 전쟁범죄라 불려도 마땅한 만행들을 우크라이나에서 자행했습니다. 러시아의 행위와 위선에 대한 분노는 비합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이 같은 미국의 전략은 시청자들이 망설임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도록 돕는 좋은 촉매가 되어줄 것입니다. '발포'가 시작되었습니다.
'탕!' 공포는 사라졌습니다.상대를 악마 같은 전범, 전범국가로 상정한 이상 죄책감도 일시적으로나마 치유됩니다.이제 시청자들은 지휘관의 독전 아래 자긍심 가득한, 성스러운 진격을 준비합니다.
물론 모두가 한결같진 않습니다. 묵묵히 도덕의 탄환을 채워 넣는 우직한 시청자들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옴짝거리고 있는 (저처럼) 예민한 시청자들도 있죠. 반면 '도덕적 전사들'은 극도로 흥분해 있습니다. 그들은 미국의 독전에 온 몸을 바쳐 호응합니다. 미국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박수갈채를 보내며 부스 안이 시끄럽도록 시청자들을 선동하고 고무시키죠. '자, 보라고. 러시아는 전범국이란 말이지.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놈들이야.'
그들 중 몇몇은 얼핏 '기뻐'보이기까지 합니다. 설마 하니 전쟁의 참혹함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려는 그런 사람들이 있겠느냐만, 합리적 의심이 가는 부분이 없진 않습니다. 어쩌면 일부 시청자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을 겁니다.만약 미국의 의도대로 러시아가 '새로운' 전범국가로 규정된다면 그 타이틀(전범국가)을 벗게 될 국가들 또한 있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죠. 바로 독일과 일본입니다.
특히 일본은 독전 지휘관인 미국의 숨소리마저 놓치지 않으려는 듯, 아시아 그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경제, 군사, 외교 등 여러 면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췄죠.미국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일본이 가졌던 전범국의 멍에를 완전히 벗겨주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지난 5월 미국은, 사실상 러시아를 대체한다는 의미에서,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했죠. 전범국이라금기(禁忌) 시 됐던 군사적 제한들도 서서히 풀려나갈 기미가 보입니다.
그러나 -일본이 전범국으로서 치른 대가가 부족하며 2022년 현재도 여전히 진정성 어린 반성과 화해를 모색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분노하고 있는- (저를 포함한) 한국의 시청자들에게는 불편한 지점입니다. 적어도 한국의 시청자들은, 러시아가 새로운 전범국으로 떠올랐기 때문에 일본의 과거사는 묻고 넘어가자는,그런 뉘앙스의 논리를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문제는 '일본의 시청자들'도 과연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거겠죠.
2022년 4월 7일,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러시아의 전쟁범죄 책임을 엄격히 물어야"하며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전쟁범죄 수사를 요청"할 것이라고 발언했습니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88%의 일본 국민이 이 말에 지지를 보냈습니다. 즉, 대다수의 일본인(시청자)들이 전쟁범죄에 대한 러시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거죠. 한국의 시청자로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자기 전쟁범죄도 책임지지 못하는 주제에!'
물론 과거에 저지른 잘못이 있다고 해서 현재의 잘못을 지적할 권리조차 없다고 이야기할 순 없습니다.보편적인 평화와 인권을 말하고 러시아의 침략을 비판하겠다는데 그것을 나쁘다 할 수도 없죠.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가진 영향력을 생각해본다면 일견 바람직한 태도라고 평가해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입니다. 위선이냐 아니냐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그것. 과거사 논란이 있을 때마다 한국의 시청자들이 외치는 그것 말입니다.
그즈음, 우크라이나 정부 공식 트위터에 의미 있는 동영상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의 제국주의가 파시즘과 다를 바 없는 극단적 이데올로기, 즉 러시아식 파시즘(ruscism)이라 비판하는 내용이었죠. 특히 영상은 “파시즘과 나치즘은 1945년에 패배했다”는 문구와 함께 2차 대전의 전범을 상징하는 3명의 인물을 거론했습니다.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그리고 일본의 '쇼와 천황'이었죠. 일본 국민 입장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 -과거 대일본제국 헌법에 따르자면 '만세일계'의 통치자이자 '신성불가침'의 존재인 천황이-이 히틀러와 같은 전범, 역사의 피고인으로 등장했던 겁니다.
관련 동영상 캡처
일본 열도는 당혹과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우크라이나 지지를 철회하겠다', '배신당했다' '지원을 끊어야 한다'는 등 일본 국민의 항의가 빗발쳤고 외교적 문제로 확산될 조짐까지 보였습니다. 이에 결국 우크라이나 정부는 사과와 함께 관련 사진을 삭제했습니다. 기시다 총리의 '전쟁범죄' 발언이 있은 뒤로부터 불과 2주 정도 지난 시점의 일이었죠. 일본 국민들의 분노는 “쇼와 천황이 항상 일본의, 그리고 세계의 평화를 바랐던 것을 우리 우크라이나인들은 알고 있다”는 주일 우크라이나 대사관의 사과까지 받아낸 뒤에야 간신히 사그라들었습니다.
이 같은일본의 두드러기적 반응은 누가 봐도 위선적입니다. 어떻게 보면 전범국가의 낙인을 더 이상 자신에게 찍지 말라는 선언처럼도 보입니다. 러시아를 전범국가로 규탄하려는 '대의'에서 만들어진 이 동영상이 꼬이고 꼬여 일본의 쇼와 천황이 '평화주의자'임을 인정하는 지점에까지 이르게 된 것만 봐도 그렇죠.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이 사건으로 한국 그리고 일제의 침략에 피해를 입은 바 있는 여러 아시아 국가들은전범국가라는 낙인이 일견 묵직해 보이지만(개념 자체로는 천형(天刑)과 같은 무게감을 가지지만) 누군가에겐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정치적 규정이었다는 뼈아픈 교훈을 새삼 되새겨보게 됩니다.
"1951년 4~7월간 영·미 협의를 거쳐 확정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문에는 결국 일본의 전쟁책임과 관련된 어떠한 조항도 포함되지 않았다... 일본은 추축국의 일원으로 아시아·태평양에서 2천만 명, 일본에서 3백만 명의 인명피해를 불러일으킨 전쟁의 원인 제공자였음에도 어떠한 전쟁책임도 명시되지 않았다. 전쟁의 책임은 도쿄재판에서 소수의 전범들에게 돌려졌고, 평화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전쟁책임에 대한 국제(법)적 규정과 책임이 주어지지 않았다." -정병준 ,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동북아시아의 유산」-
만약 정말 그런 것이라면 러시아에게도 희망은 있습니다. 지금 막 세계가 러시아에 '전범국'의 멍에를 부과하려 하지만 그들 또한 그럴듯한 기회만 있다면, 언젠가는 (일본처럼) 쉽게 벗어던질 수 있을 겁니다. '낙인의 소유자'(미국)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자신을 대체할 또 다른 악(惡)을 전범국으로 상정할 수 있을 테니까요. 다만 그때 우크라이나는 조금 불편해질 겁니다.
"세력권 확장을 꿈꾸며 주변국에 쳐들어가 고립과 파국에 이르렀던 일본의 과거는 지금의 러시아와 크게 겹쳐진다." -<아사히신문> 사설 (2022.7.15.)-
사진 출처: 픽사베이
보는 사람(특히 유럽의 시청자들 입장에서)에 따라 별것 아닌, 사소한 논쟁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사건은 일종의 '신호'였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분열의 전조'라고나 할까요. 실제로 이 시기, 그러니까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한 달 반여가 지난 시점부터, 전쟁 해석에 대한 서방의 엇박자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엇박자라는 것이 -아시아에서 일어난 '쇼와 천황' 논쟁처럼- 과거사의 청산, 즉 역사적 사건을 둘러싼 논쟁으로 표면화되었다는 점입니다.
먼저 프랑스와 독일은 러시아의 민간인 학살을'제노사이드'로 규정한 미국의 해석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제노사이드라 함은 "국민적, 인종적, 민족적 또는 종교적 집단의 전부 또는 일부를 말살할 의도를 가지고 이루어진 행위"로 규정(제노사이드 협약 제2조) 되고 있죠.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러시아가 '제노사이드를 저지르고 있다'(2022.4.12.)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선언에 대해"격한 용어 사용은 전쟁 종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반발했습니다.
이걸 그저 단순한 개념 대립의 문제로 보긴 어렵습니다.아이러니하게도 두 나라, 프랑스와 미국은 1994년 100만여 명의 사람들이 희생당한 '르완다 제노사이드'에 일정한 책임이 있는 국가들입니다. 프랑스는 제노사이드 '발생'에 대한 원죄를, 미국은 제노사이드 '방치'에 대한 원죄를 가지고 있죠. 프랑스는 1970년대부터 르완다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종족 갈등(이 또한 벨기에의 30년 식민지배 부작용)을 부추겨왔고 학살 주도세력을 간접적으로 지원했습니다. 2021년 프랑스가 공개한 조사보고서에서는 르완다 제노사이드의 '압도적인 책임'이 프랑스에 있다고 적시하고 있죠.
한편 당시 미국은 르완다 제노사이드를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인도적 노력을 의도적으로 가로막았습니다.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르완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을 '제노사이드'로 인정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유엔 평화유지군의 파병도 사실상 거부했죠. 그 사이 르완다에서는 매일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다. 클린턴은 2005년이 되어서야 당시 미국의 방치 책임에 대한 사과를 했습니다.
지금 프랑스와 미국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제노사이드 인정 논쟁은 그때와 정반대의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시청자들은 혼란스럽죠. 르완다 제노사이드에 대한 두 나라의 책임을 상기함과 더불어 '제노사이드'라는 파탄적 상황이 '영향력 있는 특정 국가'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규정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강력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언제 이 용어가 사용되는지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군사 행동을 취하기를 원하는지에 달려 있다." -Sam Ord, 「'War crimes' flow from the logic of the imperialist attacks」, socialistworker 2800(Friday 08 April 2022)
사진 출처: 픽사베이
한국전쟁도 조명됐습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에서 남한과 북한을 만드려고 시도하고 있다!"(키릴로 부다노프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장) 이 정도 언급으로만 끝났다면 좋았겠죠. 하지만 공교롭게도 우크라이나 분단 논쟁은미국의 외교적 영웅이자 냉전의 산증인으로 추앙받는 헨리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에 의해 재점화되었습니다. 키신저가 제시한 '이상적인 분단'의 상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일정 영토를 양보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죠. 시청자들은 또 혼돈에 빠져버렸습니다. '끝까지 싸우자던 그 정의의 용사 어디로 갔나?' 한국 시청자들은 괜히 움찔움찔합니다. '그렇게 쉽게 말할 일이 아닌데...' 간신히 봉합된 역사의 흉터가 헤집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달까요.
참, 키신저는 그 존재만으로도 미국의 '전쟁범죄'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등장에 노엄 촘스키는 이렇게 일갈했습니다."미국에도 전쟁범죄자 널려 있잖나?"
"이 자(키신저)는 베트남 전쟁 당시 전쟁 당사국이 아닌 캄보디아에 대해 "보이는 것은 모두, 움직이는 것은 모두 폭격하라"며 비밀 공습을 지시한 인물이다... 그뿐인가. 1973년에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칠레의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을 군사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이 나라를 사악한 군사독재 하에 고통받게 했다...우리는 우리의 전범들을 어떻게 대접해야 할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인의 정신 구조를 표현하려면 '선택적'이란 말로는 부족하다. '놀라 자빠질 정도(beyond astonishing)'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노엄 촘스키, <톰디스패치>('22.6.16.), <프레시안>('22.6.21.) 기사에서 옮김-
다소 장황했습니다만 정리해보겠습니다.전쟁 초기, 전쟁범죄 아젠다를 이용하여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하려 했던 독전 지휘관, 미국의 의도는 분명 효과적이었습니다. 미국을 주축으로 한 서방 세계의 저명한 지도자, 오피니언 리더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타전되면서 시청자들은 스스로의 도덕적 우위를 확신할 수 있었죠. 이에 시청자들은 마음 놓고 러시아를 향한 '발포'를 감행했고 그 위력은 강력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도덕적 우위는 얼마 가지 못해 큰 장애물에 봉착하게 됐습니다. 과거사를 둘러싼 분열과 난맥상이 드러났던 거죠.시청자들은 혼란에 빠져 당황했고 도덕적 우월감은 점점 사그라들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자격'입니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자신들이 과거 언젠가 저질렀던 전쟁범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전쟁범죄라는 아젠다는 양날의 검과도 같죠.
심지어 미국은 전쟁범죄를 조사하는 국제기구인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설립에 반대표를 던지고 가입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전쟁범죄 혐의로 기소당하는 일만은 어떻게든 피하려 했던 것이었죠. '대체 누가 누구를 고발한다는 건가.'
물론'약육강식'의 국제정치 관점에서 보면과거사 관련 논쟁은 대단히 사소한 해프닝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서방 세계(우리 편) 분열의 결정적 원인은 결국 각자의 '국익 챙기기'였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테죠.(러시아의 자원 압박, 세계적 물가 상승 등)
하지만 시청자들은 국제정치의 직접적인 '플레이어'가 아닙니다. 한 나라의 외교부가 할 수 없는 말, 예컨대 미국을 향해 자신의 전쟁범죄를 먼저 직시하라는 등의 지적을 시청자들은 '할 수 있습니다.'시청자들의 개별 의지는약육강식의 논리에 굴복당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는 드물지만 때때로 거대한 여론의 물결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국제정치의 현실론을 뒤엎어버릴 만큼 큰 물결을요.
때문에미국의 입장에서 이런 상황은 그리 달갑지 않을 겁니다. 과거사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늘어간다는 것인 즉 러시아의 전쟁범죄를 강조하면 할수록 자신의 치부(위선)가 드러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니까요. 일본의 위선적 모습에 한국의 시청자들이 탄식을 보내듯 말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미국만 탓할 순 없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 그리고 시청자들은 인정해야만 할 겁니다.누군가를 비난하는 나의 목소리, 그 호전적 음성이 가장 먼저 울려퍼지는 곳은 다름아닌 자신의 '귀'라는 사실을 말이죠.
"2차 대전 중에 3,400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1990년대의 전투에서는 모든 전쟁 사망자의 75%에서 90%가 민간인이었다." -크리스 헤지스, 『당신도 전쟁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