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6월에 태어났다.
가난하지만 자존심 드높은 집안에서 남자 셋을 내리 낳고 얻은 귀한 딸.
말만 귀했지 배곯으며 나물 캐고, 들에 나간 외할머니 대신 집안일 손등이 트도록 하고 기저귀도 없던 시절 어린 동생 업어주느라 등에 진물이 날 정도의 고달픈 시절을 보냈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생전 화를 내거나 욕을 하지는 않았지만 참으로 지독한 분이었다고 했다.
이 얘기는 자주 하셨는데 서러워서 잊혀지지 않는 듯하다.
엄마는 10살 정도부터 먹을 게 없어 근처 신원사라는 절이 있는 산으로 자주 나물을 캐러 갔다고 한다.
아침도 제대로 못 먹고 가서 종일 나물을 캐서 저녁에 돌아오면 엄마 표현 그대로 하면 배가 등가죽에 들러붙을 지경이 되는데,
친구들은 엄마가 동구 밖까지 마중을 나와 캐온 나물을 들어주곤 했는데 외할머니는 절대 나오시는 법이 없으셨단다.
겨우 나물을 들고 집에 돌아오면 외할머니는 엄마가 뜯어온 나물을 삶아서 저녁을 하려고 솥에 물만 끓이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너무 서럽고 야속했다고...
또,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가야 하는데 외할머니가 일을 많이 시켜서 그 일을 다해놓고 가면 학교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는 한글만 겨우 띠고 학교를 못 다녔다.
언젠가 우리 아들 초등학교 졸업식에 엄마도 함께 갔는데 교실에 들어가서 졸업식을 보다 다리가 아프다며 맨 뒷자리에 앉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교실에 앉아서 공부만 할 수 있다면 다시 태어나고 싶다"
"........."(먹먹했다)
엄마가 스무 살에 시집을 가면서 외할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고 한다.
"아버지, 나는 태어나서 쌀 두말도 못 먹고 시집을 갈꺼야 아마"
이때 처음으로 외할아버지가 우셨다고...
그런 우리 엄마가 올해 81번째 생신을 맞이하셨다.
예전 같으면 엄마 생신 기념으로 모두 모여 여행을 갔을 테지만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엄마와 딸들만 1박 2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엄마가 절에 가는 걸 좋아해서 선운사에 가려고 고창으로 향했다.
기차를 타본 지가 20년도 넘었다는 엄마에게 색다른 경험을 주고 싶어서 동탄까지 가서 srt를 타고 정읍에 내려 렌트를 해서 고창으로 갔다.
기차를 탄 엄마는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엄마 고향인 논산을 지날 때와 시집살이 오지게 한 공주를 지날 때도 반가워하셨다.
기차 차창으로 풍경들이 지나갔지만
엄마에게는 그때 그 시절이 스쳐가는 듯했다. 어느 순간 말없이 차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엄마를 보면서 행복한 현재가 지나간 날의 상처를 치료해 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정읍역에서 가까운 내장사에 먼저 들렸다.
얼마 전 화재로 대웅전이 없어지고 조립식으로 만든 대웅전이 임시로 세워져 있었다.
대웅전 뒤 숲에 있는 나무들도 일부 불에 탔다.
우리는 대웅전 건축을 위해 쓰일 기와 하나씩에 각자의 축원을 담아 기부했다.
언젠가는 내장사 대웅전 지붕에 엄마와 딸들의 기원이 담긴 기와 몇 장이 오래도록 올려져 있을 것이다.
숙소는 선운사 근처에 정했다.
엄마는 피곤하다며 일찍 주무신다고 했다.
딸 넷이서 수다를 시작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종횡무진했으며 함께했던 어린 날의 아픔과 고통도 이제는 깔깔대며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새벽까지 이어지는 우리의 수다가 시끄러울 만도 한데 구지어 우리들 옆에 이불을 펴고 누워 코를 골고 주무신다.
화장실은 어찌나 자주 가는지 몇 번은 일어나서 "아이구 아직도 안 자냐. 얼른 자"하며 눈은 거의 감고 사자머리를 한채 화장실에 다녀와서 다시 코를 골며 주무신다.
어린 자식들을 먹여 살리느라 늘 고달프던 엄마의 코 고는 소리가 이제는 편안하게 들린다.
아침을 먹고 상하 농장에 들렸다가 책마을 해리로 향했다.
책마을 해리를 찾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갑자기 바다를 만났다. 바다와 구시포 해수욕장을 차 안에서 눈으로만 보고 책마을 해리로 왔다.
들어가는 입구는 여느 카페와 다를 바 없이 아기자기하다.
들어서면 작은 책방이 있고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입장료는 한 사람당 책 한 권을 사면 된다.
오랜만에 종이책을 보며, 또 책을 고르며 행복했다.
책마을 해리 블로그 소개글
"누구나 책, 누구나 도서관!
책마을 해리는 바다 가까운 폐교 나성초등학교에서
책마을과 책 학교, 박물관, 도서관을 일구는 공동체입니다.
종이와 활자, 책의 은하계로 떠나는 오랜 모험, 함께해요"
책과 공동체라는 말이 유난히 마음으로 들어온다.
운동장이 보이는 곳에서 차를 한잔 마시고 쉬다가 학교로 향했다. 어린 시절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와 거의 흡사한 모습이다
교실이 도서관이 되었다.
고요함과 책 냄새가 좋다. 매끈한 나무 바닥에 앉아 책을 읽고 싶어지는 곳이다.
책 목록을 훑어보는데 이런저런 추억이 바람처럼 몰려왔다.
문득, 나는 책과 함께한 많은 추억이 있음을 깨달았다. 책이 있어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내 인생의 봄날은 책과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교실과 교실 사이 담쟁이 덩굴이 가득한 벽 아래 낡은 피아노 한대 놓여 있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피아노를 배운 둘째 딸이 피아노를 친다.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었겠지...
색색의 꽃들이 아이들 대신 피어있다. 그냥 꽃씨가 바람에 날려 여기저기 꽃을 피운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한 운동장 정원이다.
오두막 나무 창문을 통해 보는 바깥은 동화 같다.
방금 전 나는 동화 속을 걸어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풍경은 편안하고 학교는 추억을 살아나게 한다.
서점에서 엄마는 이 글귀를 집어 들고 소리 내어 띄엄띄엄 읽는다.
"참. 잘. 살.았.구.나."
엄마의 손에 엄마의 삶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얼마 전 엄마는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대장암 3기였지만 수술은 잘 됐고 전이는 미약해서 항암 없이 조심조심 사셔야 한다.
엄마의 암은 우리가 고창에 갔을 때도 진행 중이었다. 몰랐을 뿐이지...
자식들 걱정할까 봐 지독한 변비의 고통을 내색하지 않았다.
세심히 살펴야 했음을 아프게 깨닫는다.
수술하고 엄마가 잊지 못하는 한 장면이 있다.
수술이 끝나고 병실에 와서 자고 있는데 의사가 와서 갑자기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아직 더 사셔야 하는데 죽고 싶으세욧!!!! 당장 일어나서 운동하세요!!!!"
엄마는 이 경험으로 집에 와서 열심히 운동을 한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침을 드시고 친구분과 동네를 걷고 텃밭에 들려 식물들에게 인사하고,
뜨거운 낮에는 복도를 걸어 다니고,
저녁 먹고 다시 친구분과 놀이터 주위를 걷고 텃밭에 들려 식물들과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집에 오신다.
엄마 운동의 이유는 단 하나다.
자식들에게 걱정 끼치지 않겠다는 일념.
이번 추석에 엄마가 우리들에게 봉투를 하나씩 주셨다. 병간호하느라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얼마 전 엄마 집에 갔는데
책마을 해리에서 사 온 동화책 세 권이 거실 탁자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동화책을 보며 생각했다.
엄마가 이제까지 걸어온 삶이 뜨거운 운동장을 걷는 일이었다면
이제는 나무 그늘 안온한 오두막에서 내다보는 동화 같은 내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