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만큼 했다.
맏며느리 그녀,
24살에 결혼해서 81세가 되는 작년까지 57년 동안 제사를 지냈다.
심지어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41년을 더 제사음식을 차렸다. 남편의 제사까지 보태서...
어린 자녀들을 줄줄이 남기고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인생 가장 참혹한 시기에도 제사를 거르지 않았던 그녀.
남편의 남동생이 두 명이나 있었음에도 맏이라는 이유로, 그 맏이가 세상을 떠나 어린 조카들과 죽지 못해 사는 형수만 남았어도 그들은 제사를 가져가지 않고 그녀가 차린 제사상에 잔만 부었다.
잔만 부으러 오면서 고기 한쪽, 제사음식에 보태라고 봉투 하나 내밀지 않았고 입만 달고 왔다. 심지어는 그들의 아이들까지 달고 왔다.
인간보다 잔혹한 동물이 있을까 싶은 날들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제사 지내는 사람이 복 받는다고, 자식들이 잘 된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없는 살림에 제사음식은 제대로 차려냈다. 불평하지 않았고 원망도 하지 않았다.
싫고 좋고가 뚜렷하고 한 성질 하는 그녀도
제사는 자식을 위한 의식이라는 생각에, 제사를 지내면 조상님들이 살펴 주실 거라는 믿음에 그 모든 어려움을 견뎌냈다.
그랬던 그녀가 작년에 암수술을 했다.
일 년에 두 번 명절 제사와 남편의 제사까지 세 번의 제사에 대한 대책이 필요했다. 많은 의논 끝에 그녀와 자녀들은 선언문 같은 합의를 했다.
한 인간으로서도 능력을 넘어서는 헌신을 했다.
-명절 제사는 그녀와 자녀들이 함께 산소로 가서 간단한 음식(포, 사과, 술)으로 인사를 드리고 온다.
-남편 밤 제사는 제사가 있는 전주 주말에 산소에 다녀온다.
-산소에 가는 사람은 그때그때 가능한 사람으로 구성한다. 강요는 없다.
-그녀와 자녀들은 나들이 가듯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간다. 두 손은 가볍게! 마음도 가볍게!
-추석에는 근처에 숙소를 정해 여행 가듯 다녀온다.
선언문을 이행하는 첫 번째 명절인 2022년 설날.
아침 9시에 그녀 집에 모여 차 한 대로 출발을 했다.
막내딸은 심지어 설렌다고 행복하다고까지 했다. 나도 그랬다.
몹시 기분이 좋은 그녀는 산소에 가는 두 시간여를 한시도 쉬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전날 밤 이상하게 잠이 안 와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나는 졸려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그녀의 이야기에 웃고 탄성을 지르느라...
게다가 오랜만에 만난 딸들의 수다는 차 안을 가득 채웠다.
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우리는 걱정하지 않았다.
차창밖 겨울 풍경을 보며 탄성을 지르고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했다.
산소 근처에 많은 눈이 쌓여 있어서 얕은 비탈도 차가 올라가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모두 내려서 산소 앞 나무에 주려고 가져간 거름흙을 바닥에 뿌리고, 뒤에서 차를 밀었다.
헛바퀴를 돌던 차가 다행히 부릉하고 언덕을 올라갔다.
어린 시절이 생각나 우리는 깔깔깔 웃었다.
아득한 기억너머 명절이 축제였던 날들이 우리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아내가 된 이후 명절은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날이었는데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게 낯설고도 신기했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가능한 일이었다.
온 세상이 하얀 산골에 우리의 발자국만이 새겨졌다. 가족묘라서 맨 위부터 아래까지 아주 많은 산소들이 있었다.
우리는 증조할아버지(+할머니), 할아버지(+할머니+할머니), 아버지, 작은아버지 이렇게 네 기의 산소에 잔을 올릴 것이다.
간단한 음식을 차리고 인사를 드리려 하는데 갑자기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산소마다 아래와 같은 취지의 안내 말씀을 전했다.
"제가 늙고 병들어서 이제 집에서 제사를 못 지내게 됐으니 앞으로는 집으로 오시지 마셔유.
ㅇㅇㅇ 절로 오셔유. 저도 있는 힘껏 했지만 늙고 병들어서 더는 못하겠슈.
저도 할 만큼 했어유. 이해하셔유"
할아버지(+할머니+할머니) 산소 앞에서 그녀는 평소에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아버님 평안하게 잘 계세유. 엄니 철 좀 들게 많이 가르쳐 주시구유.
거기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하면서 지내세유. 엄니는 자기밖에 몰랐던 거 많이 뉘우치고 거기서는 그렇게 살지 마시구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아니 말을 못 한다.
그녀는 산 자의 권리로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답변은 일체 필요 없다. 집이 아닌 산소에 오니 이런 좋은 점도 있구나.
우리는 웃음보가 터질 것 같았지만 입을 틀어막고 엄숙하게 서 있었다.
할머니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심한 시집살이를 당했던 그녀는 아직도 그 한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부유하게만 살아 세상 물정을 전혀 몰랐던 할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원망이 담긴 뼈 있는 말도 있었다.
할머니의 가혹한 시집살이도 힘들었지만 연로하고 힘없고 우유부단했던 할아버지도 엄마에게 고통스러운 존재였다.
곳간에 철철이 넘치는 쌀과 반찬거리들이 있어도 무우 꽁다리 새끼 하나 파뿌리 하나 남에게 줘 본 적 없다는 할아버지.
가난한 할아버지 동생이나 친척이 배가 고파 한 끼 때울 수 있을까 하고 식사 때 찾아와도 같이 밥 먹자는 소리 한마디 없이 혼자 남김없이 식사를 다 하셨다고 한다.
작은할아버지가 우두커니 대청마루 끝에 앉아 계시다 힘없이 돌아가는 모습이 그녀는 너무도 마음 아팠다고.
밥 한 그릇 수북이 퍼서 겸상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그랬다가는 할머니한테 머리채를 잡히고 성질 고약한 작은아버지, 고모까지 거들며 난리를 피울게 뻔해 그렇게도 하지 못했다는 그녀.
다음은 아버지 산소 앞
"여보 한시도 당신을 잊은 적이 없어유(흐느낌). 젊어서 돌아가셔서 을매나 한이 많것슈. 그래두 걱정 말아유.
애들 다 이렇게 뽀득지게 잘 크고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말고 거기서 잘 계시유"
우리는 마음이 울컥했다. 오랜 세월 잊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살아났다.
마지막으로 작은 아버지 산소
지나친 음주로 병을 얻어 요양원에서 돌아가신 작은아버지는 젊은 시절 재산 문제로 다투다 형인 아버지의 등을 낫으로 찍었던 인물이다.
그녀는 이때를 회상하며 작은 아버지에 대한 엄청난 분노를 표출했고 아버지 등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고 몸서리를 치곤 했다.
(작은 소리로 혼잣말) 제 형 등을 낫으로 찍은 놈...
종이컵에 남은 술을 다 부어 산소에 놓고 그녀는 휙 돌아선다. 내가 술을 산소에 뿌리려고 하자 그녀가 그냥 두라고 한다.
나중에 차 안에서 그 이유를 말해준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들 세 형제 공동명의로 되어 있는 고향의 선산 문제로 그동안 별 탈없이 잘 지내던 작은 엄마와 사이가 틀어져서 왕래가 거의 없게 되었다. 그 작은엄마네 가족이 산소에 와서 누군가 다녀갔다는 걸 알아채라고 그리 두었다고 한다.
그녀는 시대를 잘 타고났다면 정말 큰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성묘를 마치고 걸어 나오다 뒤를 돌아보니 오랜 세월 동안 이루어진 가족묘의 봉긋한 봉분들이 조용히 천천히 내리는 눈 속에서 우리에게 방긋이 웃으며 인사를 하는 듯하다.
돌아오는 길,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갔다. 온실 속 정원이 있는 곳이었는데 나무 냄새며 커피 냄새가 기분 좋은 곳이었다.
우리는 커피와 빵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산소에 가서 조상들도 뵙고 하고 싶은 말도 속시원히 다 한 우리 엄마 그녀는 기분이 엄청 좋아져서 씽씽 돌아가는 소리를 내며 역사책에나 나올 법한 얘기부터 이번 대통령 선거 후보자 품평회까지 종횡무진이다.
행복했다.
명절은 지루하고 마음 상하는 일이 많은 우울한 날이었는데, 이렇게 알차고 보람 있고 기분 좋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즐겁다.
코로나가 준 선물인가.
코로나 이후 우리가 마스크 없는 삶으로 돌아간다 해도 누군가의 고통과 희생 위에 세워진 안락은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