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엄마는 양파를 캐놨으니 가져가라고 하셨다.
텃밭에서 수확하는 양파를 본 주위 사람들이 사겠다고 난리라며,
좋은 것은 우리 자식들 줘야 한다고 버티고 있다고 하시면서.
그래도 밭에까지 찾아온 사람들은 어쩔 수 없어 아주 조금 몇만 원어치 팔았다고도...
퇴근하는 길에 빵을 사가지고 엄마집에 들렀다.
엄마가 안 계시면 일단 베란다로 가서 텃밭을 내다본다.
모자를 쓰고 느리지만 부지런히 오가는 엄마의 모습이 멀리 보인다.
걷는 모습, 쓰고 있는 모자, 움직이는 방향만 봐도 엄마인지 알 수 있다.
오래된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도시 텃밭,
다양한 사람들이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각자의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다.
뉘엿뉘엿 지는 해와 어우러져 콧등이 시큰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집안은 나간 집처럼 정신없었고 설거지는 어제저녁부터 쌓인 듯하다.
대충 먹고 빨리 밭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을 엄마의 아이 같은 모습이 그려진다.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며칠 동안 닦지 않은 것 같은 식탁을 닦고 농가처럼 흙이 흩어져 있는 거실을 닦고 밥솥과 냉장고를 살폈다.
무얼 먹고 사시는지...
딸들이 영양소가 있는 반찬이나 음식 재료가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 쓰기는 해도 뭐 필요하냐고 물어보면 엄마는 늘 필요한 게 없다. 그래서 알아서 주문해 드려야 한다.
엄마는 늘 아픈데도 없다.
어느 날 엄마집에 왔는데 엄마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
"아파서 죽는 줄 알았어. 며칠 동안 앓았어. 이렇게 아프면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 모든 엄마의 행동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하나, 자식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이다.
명치끝이 찡하다...
엄마집의 좋은 점은 조금만 치워도 확 표시가 난다는 것이다.
한 시간도 안 되는 수고로 집이 다른 집처럼 깨끗해졌다.
더 치울 게 없나 하고 둘러보고 있는데 엄마의 발소리가 들린다.
삐. 삐. 삐. 삐 삐리리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 오신다.
나는 가만히 웃으면서 서있었다.
에고 하시며 밭에서 가져온 이것저것을 내려놓고 흙 묻은 신발을 벗으려다 나를 보고 화들짝
"아이고 우리 딸! 바쁜데 어떻게 왔어"
양파 가져가라고 성화시더니 웬 딴소리...
사가지고 간 샌드위치를 펼쳐놓으니 아이처럼 눈이 동그래지며
"아이고 맛있겄다! 그렇잖아도 밥 먹기는 싫고 뭘 먹나 하며 들어왔는데 어떻게 내 마음을 이렇게 잘 알았어!"
드시며 한마디 하신다
"이거 만든 놈들은 입이 얼마나 크길래 이렇게 입을 있는 힘껏 벌려야 겨우 입에 들어가네"
".... 아주 맛있네!"
엄마와의 대화는 유쾌하다
"아주 재밌어. 밭에만 가면 살맛이 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몇 달은 넉넉히 먹을 양파와 대파와 완두콩을 들고 집으로 왔다.
가족들은 각자의 일로 모두 외출한 주말 오후 식탁에 홀로 앉아 완두콩을 깐다.
손에 뽀드득 닿는 기분 좋은 느낌과 함께 초록의 우주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이처럼 작고 연약하고 초롱한 모습 속에 알 수 없는 가슴 시림이 있다.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와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한가로운 오후,
천천히 완두콩을 까며 엄마 생각을 한다.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
언제든 싹을 틔울 기세로 쫑긋이 나와 있는 생명선들에는 감동이 있다.
"덩굴콩 한 알이 목욕탕 타일바닥에서 혼자 싹을 틔웠다.
생명은 “내재율”이다. 얻을 미래가 없어도 오늘 당장 시작한다"
-『이철수의 웃는 마음』
저녁에 완두콩을 넣어 밥을 했다.
가끔 생각한다.
우리에게 다른 생명을 당연한 듯이 먹어치울 권리가 있을까.
이철수의 판화집에 이런 글이 있었다.
"내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된 생명들에게 인사건네고 먹습니다.
미안하게 되었다고 네 목숨값은 내가 잘하마고, 인사하는 거지요"
-『이철수의 웃는 마음』
한 그릇의 밥이 주는 평화를 생각한다.
한 그릇의 밥이 내 앞에 오기까지의 수고들을 생각한다.
이 밥 한 그릇에는 살아갈 힘이 들어있다.
얼마 후 엄마가 다시 전화를 하셨다.
마늘 캐 놨으니 가져가라고~
엄마의 텃밭은 엄마의 생명선이다.
다리가 아파도 몸이 힘들어도 당장 밭으로 나가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