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소소일상 03화

좌 건축 우 개발

내 삶을 흔들었던 먼지바람

by 정안

우리 가족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17번째 계절을 맞이했다.

아이들은 초등학생부터 스무 살이 넘은 지금까지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보낸 공간이다.


주위에 대규모 개발이 많았지만 아이들이 전학을 가고 싶지 않다고 강력하게 원하기도 했고

아파트 신청에서도 번번이 떨어져서 어찌어찌하다 보니 17년째 살고 있다.


같이 입주를 한 우리 동 입주민들 대부분은 근처 신도시나 신축아파트로 떠났다.

입주할 때부터 살고 있는 세대는 몇 집 되지 않아서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알 수 없는 동질감으로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삶은 평화로웠다.


그랬는데 오래전부터 소문으로만 들리던 일들이 근처에서 일어났다.

우리 아파트 왼쪽 구역에서는 3천 가구가 넘는 재건축이 시작되었고,

오른쪽 구역에서는 1천 가구의 재개발이 시작된다고 한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양쪽 어딘가에 여분의 집을 사두어서 몇억씩 올랐다고 했다.

부럽기는 했지만 용기가 없었고 대출도 부담이 돼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을 하는데

걷기 좋은 하천옆에 새 아파트가 위풍당당 들어서고 있었다.

저곳에 살면 하천을 산책하고 하천을 따라 시장에도 가고 성곽에도 갈 수 있고 산에도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이사를 가야겠다!


처음에는 살고 있는 집을 팔고 새 아파트를 사려고 했는데 가격 차이가 많이 났다.

이자도 비싼 시기에 대출은 부담스러웠다.

고민 끝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전세 주고 새 아파트로 전세를 가기로 했다.


근데 새 아파트 전셋값이 비싸기도 하고 추가비용도 많이 들었다.

게다가 우리 집은 오래돼서 리모델링을 하지 않는 한 전세가 쉽게 나가지 않았다.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좌측 재건축 지역에서 좋은 매물이 나왔다고 했다.

퇴근하고 부동산으로 달려가서 정보를 받아왔다.


그런데 이 재건축 조합원 지위를 승계한 아파트의 가격은 참으로 기묘했다.


현재는 17평인데 34평을 배정받았다고 한다.

매물가격은 6억 3천만원

*감정가격(5억 1천만원 -> 1억 2천만원 프리미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조합원분담금(입주할 때 납부) 1억 7천만원

합이 8억


하아.... 그래도 위치도 좋고 단지도 커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많이 오를 거야 생각하면서.


이것도 끝이 아니었다.

재건축은 초과이익환수금이라는 게 있다고 했다.


현재 금액은 아무도 모르지만 준공시점에 공사비 들어간 금액과 조합설립시점 집값과 준공시점 집값의 차액을 내서 주변시세보다 많이 오른 부분에 대해 과세를 한다고 했다.

(유튜브 보면서 공부했는데 내가 제대로 이해했나 확신은 없지만 대략 이런 요지였다.)


검색을 통해 찾아보니

법이 개정될 예정인데 현재는 최대 2억 9천이라고 한다.

법이 개정되어도 1억 정도


그래서 34평 새 아파트에 살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최소 비용이 9억 ~ 최대 10억 9천


퀴즈를 푸는 것도 아니고 미로를 찾아 떠나는 여행도 아니고

재건축 아파트 진짜 가격을 찾아 떠난 길의 끝은 허걱이었다.


내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금의 불확실성 때문에 망설여진다고 했더니,

다시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우측 지역 재개발에서 빌라가 하나 나왔다고 했다. 좋은 매물이라고 하면서


24평(대지지분 21평)인데 33평 신청가능

매물가격은 5억

조합원 분담금(입주할 때 납부) 1억 8천

합이 6억 8천

*조합원 분양가(향후 변동가능) 33평 4억 3천 -> 프리미엄 2억 5천


단, 재개발은 초과이익환수금은 없지만 재개발 시기가 유동적이라 조합원 분양가가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재개발은 그나마 미로가 덜했다.

하지만 불확실성은 만만치 않았다. 취소될 수도 있는 상황이 존재했다.


저녁에 동네 공원 산책을 나가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재개발 매물이라는 빌라에 가봤다.

40년이 넘은 2층짜리 빌라인데 내일 무너져도 사람들이 크게 놀라지 않을 정도의 상태였다.


전재산에 대출까지 받아 저 빌라를 샀는데 혹시나 만에 하나 재개발이 취소된다면....

머리를 흔들었다. 평화롭던 일상이 무너질 것 같은 위기감이 몰려왔다.


이 과정을 남편과 상의하고 고민하고, 걱정하는 남편을 윽박지르며

어떻게든 지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좌 건축 우 개발의 혜택을 누려보고자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기묘한 경험을 했다.


평소에는 그래도 열심히 살았고 집 한 채는 있고 퇴직하면 연금도 받을 수 있어

미래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새 아파트를 사려고 하니 가지고 있는 재산은 집 한 채뿐.

아무리 파헤쳐도 여윳돈이 별로 없었다.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주식투자로 돈을 날린 남편을 원망했고 더 알뜰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탓했다.

진작에 가격 쌀 때 근처에 있는 아파트 하나 사놓지 못한 서로의 무감각을 질타했다.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밀려왔고 미래가 불안해졌다.

심지어 쿨한 성격의 남편은 내 눈총에 우울해하기까지 했다.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그리고 우리는 새 아파트를 포기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천년만년 살 것이다. 더 낡으면 리모델링으로 위로받으면서


아들들에게 이 사항을 알려줬더니 한마디 한다.

"우리 집이 제일 좋아요"


우리는 다시 평화로운 삶으로 돌아왔다.

다시 미래를 꿈꿀 수도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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