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넘치는 대기를 힘차게 걸어보리라 결심하고 깜깜한 새벽에 배낭을 짊어지고 집에서 나와 9시도 되기 전에 제주에 도착했다. 처음 도전하는 제주 올레길, 제주공항에서 우선 '제주올레 패스포트'를 구입했다.
올레는 제주말로 '좁은 골목'을 의미한다.
새벽에 길을 나서느라 아침도 못 먹은 우리는 성산읍에 있는 '막둥이해녀 복순이네'로 갔다.
허기가 져서 배가 등짝에 붙을 지경이라 대표메뉴 물회와 그곳에 있는 음식을 다 한 가지씩 시켰다. 해산물 모둠, 전복 칼국수, 전복죽.
그런데 우리는 밑반찬으로 나온 초록 고사리에 꽂혔다. 너무 맛있었다!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공용반찬으로 세팅된 고사리를 거의 다 먹어 버렸다. 게다가 우리는 그 가게 첫 손님이었다. 고사리가 너무 맛있어서 다 먹었다고 우리가 실토하자 처음에는 뚝뚝하던 주인장이 음식을 만들며 우리와 조금씩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먹어치운 고사리는 이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귀한 고사리였고 오늘 하루 종일 손님상에 내놓을 양이었다고 한다. 몹시 미안해하는 우리에게 남은 고사리를다 갖다 주면서 고사리 이야기, 해녀의 물질이야기, 가게 이름인 복순이는 자신이 아니라 이모라는 이야기를 했다.
잠시 후 물회가 나왔는데 먹어본 물회 중 가장 시원하고 맛있었다. 다른 음식들도 너무 맛있어서 남김없이 먹었다. 시작이 좋았다.
식당을 나와 조금 가다 보니 현수막이 하나 붙어 있었다. '(경) 강복순여사 어촌계장 당선 (축)'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데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우리도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 준 해녀 강복순여사의 당선을 축하하면서 지나왔다.
제주올레 패스포트 : 여행자를 위한 여행 증명서
패스포트에는 올레길 27코스 전체에 대한 단순하지만 가독성 좋은 지도와 거리, 소요시간 그리고 코스별 소개글이 있어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사전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올레길 코스별로 출발지점과 중간지점, 도착지점에 간세 모양의 파란색 상징물이 있다. 이곳에서 패스포트에 인증 스탬프를 찍으면 된다.
오는 것만으로도 좋은 제주이고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 올레길이지만 올레 패스포트가 있으면 내가 걸어온 길을 확인하고 다음 행선지에 대한 정보를 미리 볼 수 있어서 더 좋다.
제주여행 지킴이
도보 여행자의 안전을 위해 무료로 지급하는 스마트 워치로 손목에 착용하고 있다가 위급할 때 버튼으로 신호를 보내면 경찰이 현장으로 출동한다.
제주올레길을 이끄는 안내표지
간세
• 간세는 제주올레의 상징인 조랑말 이름
• 느릿느릿한 게으름뱅이라는 뜻의 제주어
‘간세다리’에서 따왔다.
• 갈림길에서는 간세가 길을 안내한다.
• 간세 머리가 향하는 쪽이 길의 진행 방향이다.
리본
• 제주의 푸른 바다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제주 대표 특산품 감귤을 상징하는 주황색
• 두 가닥을 한데 묶어 주로 전봇대와 나뭇가지에매달아 놓았다.
• 리본을 따라 걸으면 길을 잃지 않는다.
화살표
• 돌담, 전봇대 등에 붙여 길의 진행방향을알려준다.
• 파란색 화살표는 정방향으로 걸을 때의 진행방향
• 주황색 화살표는 역방향으로 걸을 때의 진행방향
시작점 표시석
• 제주올레 각 코스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표지석
• 제주를 대표하는 돌 현무암으로 만들었다.
• 각 코스의 전체 경로와 경유지, 화장실 위치등이상세히 그려져 있다.
스탬프 간세
• 각 코스를 상징하는 스탬프가 담긴 간세 모양의스탬프 박스
• 시작점, 중간지점, 종점에 설치되어 있다.
• 제주올레 패스포트에 각 코스 스탬프 3종을모두찍으면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서 완주증과 완주메달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4일 동안 걸을 코스이다.
준비를 마쳤으니 걸어보자!
첫째 날 : 광치기 해변 ~ 은평포구(올레 2코스)
첫째 날 걸을 코스이다.
광치기 해변
제주올레 1코스의 마지막이자 2코스가 시작되는 곳이다.
펄펄 끓던 용암이 바다와 만나 빠르게 굳어지며 형성된 지질구조가 특징이며 썰물 때는 바닷물 속에 있는 비경이 드러난다고 한다.
광치기 해변의 모래는 현무암의 풍화작용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입자로 검은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썰물이 되면 용암 지질과 녹색 이끼가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전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풍경으로 많은 사진작가들이 찾는 사진명소이기도 하다.
특히 성산일출봉 옆으로 뜨는 일출을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어 연말연시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광치기 해변에 도착해서 우리는 풍경을 보고 사진과 스탬프를 찍고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바위 위쪽에서 할머니께서 조그만 목소리로 귤을 사라고 하셨다. 보자기를 펼쳐놓고 커다란 귤을 팔고 계셨다. 노지귤이라 맛있다고 하셨다. 망설이다가 우리는 한 봉지를 사서 배낭에 넣고 출발했다.
걸으면서 한 개씩 까먹었던 이귤은 우리에게 큰 위안이었다.
광치기 해변 맞은편 길로 가니 성산 일출봉을 배경으로 유채꽃이 환하게 피어있다.
이 성산 일출봉은 우리가 2코스를 마칠 때까지 우리를 뒤에서 계속 지켜줬다. 어디를 가도 뒤돌아보면 성산 일출봉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