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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 Apr 04. 2024

흐린 날의 아침 산책

아는 사람을 만났다

날씨가 흐려서 걷기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허브차를 텀블러에 담아 출근길 공원으로 향했다.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나오기도 했고 얼른 산책하고 싶은 마음에 끼어드는 차를 쌀쌀맞게 외면하고 지나갔다. 마음도 급해졌다. 산책도 하고 차도 마실 수 있는 시간이 좀 부족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왜 이러지. 산책을 위해 가는 이 길도 여유롭고 편안해야 하는데. 


 

벚나무들은 어제보다 훨씬 많은 꽃을 피웠다.

햇살이 좋은 쪽의 나무들은 환희의 노래를 부르고 햇살을 덜 받은 쪽은 새잎을 세상에 내어놓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학교에 가는지 교복을 입고 우산을 휘휘 돌리며 걸어가고 있다. 장난기 가득한 그 아이의 표정이 귀엽다. 


모든 꽃이 한꺼번에 피지는 않는다. 아이들도 그렇다.



분홍의 꽃들 사이 연둣빛 꽃나무가 섞여 있으니 훨씬 조화롭고 예쁘다.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에는 감동이 있다.



지금은 흐렸지만 곧 해가 나올 것이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사람이 나를 보며 반가워한다.


그는 내 고등학교 친구의 남편이자 나와 같은 직장동료이다. 나도 반가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그는 공원 바로 옆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차 한잔하고 가라고 한다.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출근을 했다.


그러면서 그와 관련한 옛날 추억이 떠올랐다.


졸업 후 몇 명의 친구들이 모임을 만들어서 정기적으로 만났는데 그 친구도 그중 하나였다. 모두 미혼이었기 때문에 자주 만났고 각자의 연애사나 미팅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의논하고 도와주기도 하는 나름 친한 사이였다.


어느 날 친구가 나와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직원을 소개받았는데 너무 말단직원이라 마음에 걸려서 계속 만나야 할지 고민이라고 하면서 승진은 잘 되는지 이런 조건들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교사였고 집도 부유해서 상대의 조건을 많이 따지는 듯했다. 


알아보고 나는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 줬다. "지금 신참이고 oo 씨가 근무하는 분야는 특수직이라서 누가 그만두거나 죽지 않으면 승진하기 어려운 상황이야"


나는 그 친구가 그와 헤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미적미적 계속 만났고 나도 끼어서 몇 번을 만나면서 얼굴을 익혔다. 만나보니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좀 이기적이고 배려심이 별로 없던 그 친구보다 훨씬 나았다. 


게다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에 대한 평가를 야박하게 한 게 미안했다. 사실이 그렇더라도 좀 더 생각하고 말을 했어야 하는데... 미안함이 계속 남아 있다. 그는 그런 사실을 모르겠지만.


결국 그 친구는 그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더 결정적인 건, 그가 초고속 승진을 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환경이 변해서 그가 근무하는 분야의 중요도가 높아졌다. 당연히 직원을 더 뽑았고 자리도 많이 났다. 게다가 그는 우리 회사에서 인정받는 좋은 직원이었다. 


미안합니다... 차 잘 마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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