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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 Apr 09. 2024

바람부는 봄날 아침산책

분분한 낙화

햇살이 환하게 퍼지는 아침이다.

우우우 소리가 들리고 창문이 흔들린다. 화창한 날씨와 다르게 바람이 많이 부는듯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17년이 넘은 우리 아파트에 몇 남지 않은 최초 입주자를 만났다.

만나면 늘 반갑게 인사하고 덕담을 주고받는 기분 좋은 사이다. 동질감 비슷한 걸 느끼면서. 

살면서 동질감만큼 끈끈한 게 있을까 싶다.


공원에 도착하니 바람이 불어서 어제까지만 해도 하늘을 환하게 밝히던 꽃들이 

앞다투어 낙하 중이다. 



꽃잎이 떨어져 길을 만들었다.


청소하시는 분들이 건물 앞 벚꽃나무 아래서 떨어진 꽃잎과 사투 중이다.

꽃잎이 켜켜이 쌓여있어 바람기계로 꽃잎을 날려도 흩어졌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꽃잎은 멋지게 흩어지고 내려앉기를 반복하고, 치우는 분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보는 사람들은 장관이라고 감탄할 풍경이지만 치우는 분들은 힘들다. 


삶이 그렇다. 낭만과 생활사이 간극은 우리 일상 어디에나 있다.

그 모습을 찍으려다 그만두었다.

 


뒤에서 걸어오다가 내가 사진을 찍자 '뭘 찍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앞에 펼쳐진 거리 풍경을 보고 한 손으로 재빨리 사진을 찍고 쿨하게 지나가던 아이. 귀엽다!



이 길로 등교하는 아이들.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무엇이든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3년 동안 매일 계절의 변화를 느끼면서 다닐 수 있었다는 것에

그들은 언젠가 감사하게 되리라.  


꽃잎이 퍼레이드를 하듯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아이 뒤로 길게 펼쳐져 있다.



벚나무 작은 숲에서는 돋아나는 새잎 위로 꽃잎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연분홍과 연초록의 만남은 싱그럽고 애잔하다. 

지난 추위를 이기고 살아남았고 이제 온 힘을 다해 햇살을 향해 몸을 펼쳐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산다.  



늘 다니던 호수 쪽 산책길로 내려서니 이곳도 분분한 낙화.

좋아했던 시 한 편이 생각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이형기 '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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