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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 Aug 10. 2024

사계 해안과 섯알오름

봄에 걷는 제주 올레길

산방산 둘레길을 지나 바닷길을 걷다 보니 사계해안이 나온다.


흐린 날씨와 독특한 지형의 해안이 어우러져 갑자기 낯선 어느 행성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계해안


서귀포 사계리 일대 해안 도로변에 위치한 해변으로 연속성이 좋은 모래가 퇴적된 해안 지형으로, 옆으로는 모래 언덕이 해안선을 따라 길게 발달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해변이며 깨끗한 바닷물과 형제섬, 그리고 특징적인 화순리 퇴적층과 그 위에 자생하고 있는 다양한 식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파도로 인한 침식작용으로 사계해변을 이루고 있는 지층 면적이 조금씩 감소되고 있다고 한다.   


사계 해안은 모래로 이루어져 있지만 밟아보면 의외로 단단하다. 곳곳에 있는 구멍과 그곳에 들어차 있는 바닷물은 이곳을 상상의 공간으로 만든다.


그곳에 서면 시간을 잊게 된다.



사계 해안사구 길


낮은 모래 언덕 위 다양한 식물들이 가득하고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맑고 시원하다.


탁 트인 바다 풍경은 알 수 없는 해방감을 주어 이 길 끝이 어디든 언제까지라도 걷고 싶어 진다.



계속되는 사계 해안


시간 이동을 한 듯 낯설고 매력적인 사계 해안이 바다를 따라 길게 펼쳐져 있다.


멀리 일몰이 아름답다는 형제섬이 보인다.



발자국 화석 공원


서귀포 상모리 해안에서 사계리 해안에 걸쳐 분포하는 사람 및 동물발자국 화석 산지로, 2005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2004년 사계-송악 해안도로 일대에서 사람, 사슴, 새, 코끼리 등 발자국 화석과 식물 화석이 발견됐다.


이 화석들은 중기 구석기시대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수중화산 분화활동으로 형성된 응회암 퇴적층에서 발견됐다.


'제주 사람발자국과 동물발자국 화석산지'는 아시아 지역에서 유일하게 인류발자국이 발견된 곳이다.


이 발자국은 길이 약 21~25cm로 발뒤꿈치 중간호, 앞꿈치 등의 구분이 뚜렷해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크다.


화석이 발견된 사계해안 왼쪽으로는 산방산이, 오른쪽으로는 형제섬이 보이고 제주 올레 10코스인 화순-모슬포 올레의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다.


발자국을 남긴 이들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흔적은 지금까지 남아 우리가 살아보지 않은 그때와 지금을 연결한다.   



제주 올레길의 깃발은 휘날리고 우리는 그저 걷는다.



송악산 둘레길에 들어서기 전에 점심을 먹으려고 들어간 식당.


이건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음식 이전에 하나의 작품, 게다가 주인장 추천 막걸리가 짜잔 하고 나왔다.


그 아름답다는 송악산 둘레길을 어찌 걸었는지 가물가물하다. 사진이 없다.



 송악산 둘레길 올라가기 전 한 장의 사진을 누군가 찍었다.


송악산(절울이 오름)


세 번의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세 개의 분화구로 이루어져 있다. 절울이는 파도가 소리쳐 운다는 뜻이고 해송으로 덮여 있어 송악산이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일본군이 만든 동굴이 해안 절벽을 따라 숭숭 뚫려있다. 아픔이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제주 섯알오름 주민 학살터

섯알오름


송악산 북쪽에 알 오름 세 개가 동서로 뻗어 있다. 동쪽 것을 동알 오름이라 하고, 서쪽 것을 섯알오름이라 하고, 가운데 것을 셋알 오름이라 한다.


꼭대기에는 일제 강점기에 설치한 고사포 진지가 있고, 그 남쪽 기슭에는 제주 4·3 사건의 아픔을 간직한 학살터가 있다. 


1950년 한림에 구금되었던 지역주민 63명과 모슬포 고구마 창고에 구금되었던 한림, 한경, 대정지역 132명의 주민들이 예비검속이라는 명목으로 이곳에서 집단 학살당했다. 이후 유족들에 의해 학살된 시신 중 한림지역 63명의 희생자들은 한림 만벵디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러나 132명의 희생자들은 신원확인이 안 되고 시신이 서로 엉켜져 있어 수습이 어려워 대강의 뼈를 추슬러 사계리 공동묘지에 안장하고 그곳에 백조일손(百祖一孫) 비석을 세우고 매년 희생자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백조일손(百祖一孫) :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유골의 유족들은 서로 다른 132명의 조상들이 한 날, 한 시에 죽어 뼈가 엉기어 하나가 됐으니 이제 모두 한 자손이라는 뜻


'백. 조. 일. 손' 얼마나 참혹하고 가슴 아픈 말인가...

아픔은 잊혀지지 않는다.



아픈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제주 월동무와 유채꽃은 흐린 하늘아래 아름답다.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알뜨르 비행장의 알뜨르는 ‘아래 있는 넓은 들’이란 뜻이다


일제강점기 대륙 침략을 위해 항공기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일본은 중국과 일본의 중간 거점인 제주도에 1926년부터 제주 도민을 강제 동원하여 대대적인 비행장 건설 공사에 들어갔다.


10여 년 만에 20만 평 규모의 비행장을 건설한 일본은 중일전쟁 후 오무라의 해군항공기지를 알뜨르 비행장으로 옮기고 규모를 40만 평으로 확장했다.


이 시설물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제가 제주도를 일본군 출격 기지로 사용하였다는 역사적 사실과 제주도민을 강제 노역에 동원한 실태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유적이다.



'애국기 매국기(愛國機賣國機)' (작가 박경훈, 강문석, 2010년 제작)


격납고 안에 있는 이 설치 미술은 친일활동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벌었던 친일파들이 제로센 전투기를 사서 일제에 헌납하던 행태를 고발한 작품이다.


제로센 비행기를 철골로 만든 이 작품의 표면에 청동판을 부착해서 이 친일파들의 사진을 새겨 놓았는데 지금은 녹이 슬어 낙서만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친일파 중 애국기(제로센 전투기)를 헌납한 식민지 조선의 친일지주와 자본가들이 많았다.


그들 중 상당하는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막대한 부를 창출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일본의 천황과 그의 군대의 영속적인 권력과 재부의 축적을 위해 당시 만만치 않은 비용이 소요되는 제로센 전투기를 사들여 헌납했다.


그리고 그런 경우 대부분 신문에 대문짝 만하게 이름이 오르내린 탓에 친일 인명사진에도 빠짐없이 그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결국 그들이 헌납한 것은 낙인처럼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매국의 기록이 된 셈이다.”

-'애국기 매국기'(작가 박경훈)


이곳은 현재 일제의 잔혹상을 보여주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걷다 보니 산방산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아픔이 있는 곳에 위로도 존재하는 것일까...


밭 갈던 농부는 쉬러 갔는지 트랙터만 홀로 남아 노오란 유채 꽃다발을 싣고 어딘가로 갈 기세이다.



하모해수욕장을 지나 10코스의 종점인 하모 체육공원을 향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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