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과 생트샤펠
생트샤펠 성당에서 나오니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있었다.
나가려고 하는데 성당 바로 옆에 레스토랑이 보였다.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곳으로 들어가서 줄을 서서 주문을 하고 식사를 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음식이 따끈하고 너무 맛있었다. 잊지 못할 식사였다.
아름다운 성당을 보고 난 후 집에서 엄마가 정성스럽게 방금 해 준 것 같은 맛있는 식사가 오늘 우리에게 왔다. 여행자에게 이보다 행복한 순간이 있을까 싶은 날이었다.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충격과 공포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용기 있는 시민들과 국회의원들의 신속하고 현명한 대처로 긴박하게 비상계엄은 해제되었지만 지금도 경각심을 놓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12월 첫 번째 토요일에 탄핵안이 상정되었고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는 수십만의 시민이 모였다. 조금 놀랐던 건 모인 시민들의 반 이상이 10대부터 2030 아이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생기발랄했고 진지했다.
그러나 부결되었다. 언론을 통해 비상계엄의 이면에 도사린 무시무시한 일들을 보면서 우리의 일상이 속절없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따뜻한 촛불처럼 한강은 노벨상 수상식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문학작품을 읽고 쓰는 일은 필연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나라에 닥친 비상계엄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해 1979년 말부터 진행됐던 계엄 상황을 검토했는데 2024년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2024년 겨울 상황이 다른 점은 모든 상황이 다 생중계돼 모든 사람이 다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생각된다.
저도 그 모습들을 지켜봤는데 맨몸으로 장갑차 앞에서 멈추려고 애를 쓰셨던 분들을 봤고, 맨손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껴안으면서 제지하려는 모습도 봤고, 총 들고 다가오는 군인들 앞에서 버텨보려고 애쓰는 사람들 모습도 봤다. 마지막에 군인들이 물러갈 때 잘 가라고, 마치 아들에게 하듯이 소리치는 모습도 봤다. 그분들의 진심과 용기가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젊은 경찰분들, 젊은 군인 분들 태도도 인상 깊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뭔가 판단을 하려고 하고, 내적 충돌을 느끼면서 최대한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명령을 내린 사람 입장에서는 소극적인 것이었겠지만 보편적인 가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던 적극적인 행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12월의 두 번째 토요일 다시 탄핵안이 상정되었다.
사람을 가득 태운 국회의사당 가는 시내버스는 집회로 인해 샛강역에서 다 내려야 한다는 안내를 했다. 한참을 걸어갈 각오로 버스에서 내린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치면서 밑으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쳐 올라왔다.
사방에서 인도를 가득 메우고 사람들이 강물처럼 국회의사당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숭고함이 있었다. 하마터면 나는 샛강역에 서서 눈물을 흘릴뻔했다.
추운 날씨에 따뜻하게 껴입은 모두는 조용히 질서를 지키며 한 방향으로 걸었다. 걷다 보니 상점 앞에 벽을 따라 긴 줄이 중간중간 있었다. 현장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집회 참여자들을 위해 커피, 국밥, 샌드위치 등을 선결제해둔 상점이었다. 그들은 조용히 줄을 서서 기다렸다.
누군가는 핫팩을, 누군가는 전단지를 나눠주고 길 중간중간에 서서 사람들이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도 있다. 그 시간만큼은 누구의 지시도 없지만 우리 스스로 완벽한 평화 공동체를 이루었다.
경찰들의 안내에 시민들은 가다 서다를 반복했지만 누구 하나 앞서가려 하지 않는다. 국회의사당 훨씬 전 도로부터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이 왔을까. 게다가 스스로 이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왔다는 것이 굉장히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특히나 10대부터 2030까지 젊은 친구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 그들은 밝고 생기 있고 진지했다.
공간이 있는 곳에 사람들은 각자 준비해 온 것들을 깔고 앉아서 조분조분 대화를 나누고 외치는 구호를 따라 하고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았다. 간식을 서로 나눠 먹기도 했다. 국회 앞 모든 공간이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망으로 생기가 넘쳤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그곳에서.
분노와 두려움을 안고 달리던 80년대 우리 세대의 거리에서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고 빛나는 것인 응원봉을 들고 나온 이 생기발랄한 아이들을 보니 많은 감정이 오고 갔다. 이 광장의 모두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각자의 방식으로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구호를 외칠 때는 무척 힘차고 씩씩했다. 그렇게 탄핵은 가결되었고 모두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공처럼 튀어올라 서로를 얼싸안고 환호했다. 5060 정도 되는 아저씨가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아이들에게 인사한다. 젊은이들 덕분이라고 고맙다고.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일단은 기뻐하자.
조금씩 어두워지는 국회의사당 앞에 형형색색의 빛들이 노래하고 춤을 춘다. 집회가 끝나갈 즈음 사람들은 자신의 쓰레기들을 거두고 조끼를 맞춰 입은 볼 빨간 아이들이 쓰레기봉투를 들고 그곳에 쓰레기를 버리라고 안내한다.
내가 태어나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본 하루였다. 그곳에서의 기억은 형언할 수 없는 감동으로 추운 겨울을 녹이고 마침내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