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은 사람:그대를 위한 에필로그

밑줄 그은 자리에, 내가 있다.

by Sabina
파리 14구에 있는 프랭탕 호텔. 입구에는 바로 접수부가 붙어 있고 곧바로 좁은 통로가 이어져 있었다. 삼층 19호 실, 엘리베이터도 없이 가파른 층계를 올라가야 했다. 방은 작았고, 좁다랗고 긴 안뜰이 내다보이는 창이 하나 달려 있었다. 보풀이 일어난 분홍빛 침대 커버 위에는 커다란 포트폴리오가 끈에 묶인 채 놓여 있었는데 끈의 일부는 끊어져 있었다.-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중에서

하릴없이,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책을 꺼내서 언제 줄을 그었는지 알 수 없는 예전의 문장들을 다시 읽어 보면, 우리는 오글거린다고 말할까. 궁금할까. '왜 하필이면 이 문장에 줄을 쳤을지 궁금할까, 가끔은 들키기 싫은 문장이라 멋쩍어 오글거린다고 말해버릴까...'


그날은 줄 친 문장에서 자작 나무 바람이 일었다. 키가 하도 커서 눈이 부신 하늘을 한쪽 눈을 찡긋 감고 올려다보면 자작나무 끝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사그락 사그락...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들판에 키 큰 자작나무가 휘청대면서 윙 윙 소리를 내는 날, 가파른 층계와 엘리베이터가 없는 파리의 작은 호텔을 상상하면서 줄친 그 문장들은 '내가 지금 힘들어요'를 상징하는 것일까. 낡은 침대 보에 끊어진 줄은 '내가 지금 막막해요'를 상징하는 것일까.


밑줄 그은 자리에 내가 있었다.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 행복이라고 한다. 불행을 제거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한다. 행복은 그렇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희소해서 가치가 있는 그 행복을 찾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침에는 '굿모닝'을 점심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저녁에는 '한숨'을 유형화한다. 뿌리를 찾아주고 더 행복해지기 위한 미션을 주는 상담사인 나는 하루에도 여러번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고 어르고 위로한다.


아침에는 '감사'를 점심에는 '도전'을 밤에는 '눈물'을 유형화하는 나는, 달래고 어르고 위로한 사람에게 기대고 싶어 휴대폰을 만지락 거리다 잠이 든다.


인간은 몇 개의 얼굴을 가졌을까. 공적인 얼굴 페르소나를 벗어버리고 진짜 내 민낯을 마주하는 날에는 자작 나무 바람을 닮은 스산하고 우울한 문장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다시 아침이 밝아오면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위해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감사'를 유형화 하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마스크 넘어 우울을 읽어내고 그들을 위한 위로자의 역할을 감내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자로 살기 위한 겸허한 의식을 준비하는 것이다. 에너지를 주어서 잘 살아가도록 독려하고 싶은 기본적인 뿌리가 에니어그램 7번 유형이다.


나를 닮은 내담자가 고백했다. "내 에너지가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아주 기분좋게 만듭니다. 나와 함께 있으면 사람들의 감정이 쉽게 고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아주 기분이 우울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기분을 바꾸기를 원치 않는 것 같아요."


"7번 유형이 항상 사람들의 기분을 들뜨게 하고 에너지를 주는 역할을 할 때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과도한 짐으로 다가오거나, 상대가 그 일을 해내지 못 했을 때 오는 자괴감이 크기 때문인데요..."


나를 닮은 사람에게 주는 위로와 미션이 나의 귀에 이명처럼 울렸다. 내가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보조를 맞추지 못하면 거부하거나 분리가 되는 느낌이 듭니다. 그럴 때는 또 다른 푸른 풀밭을 찾아 떠나고 싶어집니다..."

"남을 즐겁게 해주려는 강박 관념을 바라보세요. 왜 그래야 할까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려주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나요..?"


부정적인 감정을 회피하지 말고 비극적인 일을 긍정적인 것으로 왜곡하지 말라고 조언한 날, 나를 닮은 그에게 해준 말이 결국 나에게 해준 말이라서 그 날도 책 속의 문장에 하릴없이 줄을 긋고 또 그었다.


붓 값이 없어서 그랬어.

반 지하는 오후의 결이 불온한 곳이었다. 햇살의 단면이 울퉁불퉁한 곳에서 머리를 자르다가 스스스 소리에 엄마가 달려왔다. 머리칼을 훔치자 어쩡쩡한 울음이 터졌다. 갈리진 벽으로 햇살이 스며들었다-상실의 피그말리온 중에서


에니어그램 7번 유형은 유년시절, 온전한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긍정적인 체험에 완벽하게 마무리를 하거나, 슬픈 감정에 충분히 '애도'의 시기를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은 회피하려하고, 슬픈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에 과몰입하게 된다.

그런 내가 상담사가 되었으니 온유한 언어로 부드러운 치유자의 역할을 한 뒤에 가면을 벗어던지고도 밤새 그와 그녀를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붓이 없어서 대신 붓을 사주는 친구에게 매일 웃음을 팔았다. 아침이 되어도 밤같은 반지하는 이불을 들치면 바퀴벌레가 튀어 나오는 불온한 공간이라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고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가질 때까지 도전했다.


인간은 몇개의 얼굴을 가졌을까.

매일 바뀌는 수많은 감정이 페르소나에 숨고 마스크 뒤에 숨어도 이미 나는 그들의 얼굴을 읽어내고, 마스크 뒤에 숨은 우울을 읽어 낼 수 있다.

그런 내가 어쩡쩡한 울음을 토해내는 날은 나를 닮은 사람이 혈흔으로 흥건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고백한 날이다.



나를 닮은 그대여. 오늘은 몇개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마스크를 벗지 않아도 마음을 읽어내는 그대를 닮은 내가 그대의 손을 잡고 문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면, 내 손을 잡고 내 어깨에 기대어 잠시 울어도 됩니다.


한 꺼풀 한 꺼풀 가면을 벗어내고, 마침내 마스크를 벗으면 그대는 해맑게 웃겠지요...

울음도 눈물도 제대로 털어내는 오롯한 경험이 있어야 진짜 웃을 수 있습니다. 우리 실컷 울고, 실컷 웃어볼까요.


나를 닮은 그대여, 그대의 문밖의 일상은 어떤가요?

그대의 자작나무는 오늘, 무슨 말을 건네주고 있나요?

나의 스승은 나무다.
새들이 고요히 날아와 앉는 나무다.
나는 일찍이 나무의 제자가 된지 오래다.
스스로 폭풍이 되어
폭풍을 견디는 스승의 푸른 잎새에서
인내와 감사의 깊이를 배웠다-자작나무에게 중


나를 닮은 그가 마스크를 벗어 미소를 보여준 날,

나는 자작나무 잎새에서 인내와 감사의 깊이를 배웠다.


오늘도 밑줄을 그은 자리에.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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