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bina Sep 04. 2022

어느 장애인의 오밀조밀.

다정한 손길을 원했을 뿐


모니카는 가을이 되면 외로워했다.


"고향으로 돌아가야겠어."


뒤에서 휠체어를 밀어주는 모니카의 힘으로 그녀의 결심이 단호한지 외로워서 읖조리는 건지 알 수 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아이스댄스 링크에서 김연아가 빙판을 누르며 몸을 날리듯이 뛰는 점프처럼 휠체어 바퀴가 악셀을 달린다. 그날은 달랐다. 낮은 우울감을 단호하게 털어내며 휠체어를 미는 손의 힘을 풀었다 잡았다 했다.


"지금 쯤이면 수수하고 음전한 소녀처럼 왔다 가버린 여름이 지나갔을 거야."


그녀가 가버리면 나는 매일 나 혼자만의 공간에 틀어박혀 창 너머 흘러가는 뭉게구름, 바람을 타고 건네들어오는 바스락 낙엽 향, 어쩌다 운이 좋으면 옆 집의 청국장 냄새에, 살고싶다, 잘 살고 싶다 결심할텐데...


"서늘한 다락방에 앉아서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을 거야."


작년 가을, 그렇게 모니카는 떠났다. 마지막으로 잡아준 그녀의 손이 냉랭했는지, 여전히 따뜻했는지 기억이 없다. 오로지 기억난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모니카가 떠난 후 나의 휠체어는 베란다에 쳐박혀있다. 평생 옆에서 친구가 되주겠다고 내밀었던 그녀의 손길이 끊어지고 모순적으로 나는 일년 내내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만 들었다.

https://youtu.be/8P_qoAxlKNs



1악장 - 알레그로 논 트로포


창 밖으로 흐드러지게 흩날리던 마지막 나뭇잎새가 떨어졌다. 누군가를 투사하면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행태가 지겨워졌다. 내가 만든 우울한 감정을 끊어내기 위해 우울한 분위기를 양산하는 창 밖의 풍경을 암막커튼으로 암전했다. 하얀 전등대신 노란 불빛을 국부적으로 발산하는 스탠드를 켰다. 


모니카에게 편지를 썼다. 장애인에게 다가오는 따뜻한 손길이, 어느날 어떻게 접어지는지...알고싶었다. 인생의 악장을 같이 그려가자고 다짐했던 그녀의 언어가 쓸쓸해지고 고향으로 돌아가야했던 진짜 이유를 알아야했다.


1878년 10월 23일, 브람스는 요아힘에게 “지금 아다지오와 스케르초 부분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라는 편지를 보냈다. 한 달 후에는 “원래 계획했던 2개의 중간 악장을 빼버리기로 결심했고 대신 아다지오를 넣었어요. 이렇게 하는 것이 전체적인 구성에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브람스는 그렇게 오해로 점철된 요아힘에게 자신의 곡을 자세히 설명하고 의논하려한다. 브람스 협주곡은 단순히 날카로운 현악기가 층층 겹을 내며 쌓아가는 연주곡이 아니었다. 브람스의 용기와 애정이 그리고 인생의 파노라마가 들어있었다.


오랜 친구 요아힘과 우정을 다시 회복하게 했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Johannes Brahms, Concerto for Violin in D major, Op. 77]

낡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최대의 볼륨으로 맞추고 암막으로 그리고 암전으로 장전한 나의 방에 브람스를 걸었다. 오로지 브람스만, 


다섯개의 4분 음표 음형이 반복된다. 첫 주제의 3화음이 인상적이다. 두 개의 동기 마디가 특이하게 전개 된다.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제 1바이올린이 등장한다.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에 머물러 쉬어가도 되는지 머뭇거리듯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동일하게 반복되는 음형으로 바뀐다. 바이올린의 현이 날카롭게 치고 올라간다. 가슴이 뛴다. 


'나는 손을 놓을 마음이 없었어...'


으뜸음과 딸림음에서, 지속되는 페달 포인트 46마디가 기교적으로 엉키기 시작한다. 묘한 긴장감이다. 떨린다.


'날 두고 가지 마세요...'


2악장 - 아다지오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습관적으로 브람스를 찾았다.

고독하고 쓸쓸한 정경을 상상하게 하는 오보에의 독보적인 연주가 거듭된다.

사람들은 봄이 오면 사랑하고 싶다고 한다. 사랑받고 싶다고 한다. 사람을 찾아 떠돌 듯 꽃을 찾아가고 꽃을 찾아 미소를 보태며 행복한 일상을 sns에 공유했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방은 어둡다. 유달리 아름다운 아다지오 선율을 브람스는 만족하지 못한다고 했다지. 느린 아다지오 선율이 천천히 가슴골을 타고 나의 심장 박동을 살린다. 봄 햇살이 따사롭다. 살아야겠다.


그 맑아진 공간에 오보에가 활약한다. 한 음 한 음이 쌓여 거대한 음향 클러스터를 이루고, 그 덩어리가 나의 몸에 꽉 차 폭발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일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가득 찬 충만함이 동시에 나를 관통했다. 살아야겠다.


암막커튼을 떼고, 하얀 쉬폰 커튼을 달았다. 방안에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모니카에게 다시 편지를 썼다.


"모니카,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면, 우연히 깨어나 기도하고 잤다고 하면, 혹여나 부담스러울까 목젖까지 차오른 문장을 다시 삼키곤 했어요. 당신의 도움이 우정을 넘어 가끔은 하나님이 보내준 천사같았어요. 호위무사처럼 모니카라는 천사는 내 휠체어를 밀어주고 나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어요. 배려가 권리가 되고 나의 언어가 가족보다 무심하게 변해갈 때 였을까요. 모니카가 고향으로 가버렸어요. 제가 힘들게 했나요? 제가 부담스러웠나요? 우리가 나눈 대화가 의미가 없었나요? 나를 떠나 그대의 고향에서 그대는 브람스를 찾고있나요? 그대는 외로웠나요...?"


편지라는 형식으로 모니카에게 마음을 터놓기만 했는데 나의 정신이 몽롱하게 변해갔다. 규칙적인 심작박동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디지오로 바뀌고 있었다.


어느새 배경은 무형 무색 무취로 바뀌어갔다.


"모니카, 다리로 세상을 딛는 사람들은 몰라요. 모비딕 에이해브 선장의 고래뼈 다리가 갑판 나무 위에서 둔탁한 소음을 낸다고 시끄럽다고 질책할 뿐이고,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향유고래에게 복수하기 위해 거칠어진 입담을 과시하는 에이해브 선장을 탓하기만 해요. 나는 에이해브의 잃어버린 다리에 주목하고 온기가 없는 그 다리를 토닥토닥 해주고 싶은데, 두 다리가 멀쩡한 사람은 몰라요. 모니카, 당신은 알 줄 알았어요. 휠체어가 아이스 링크장 위를 달리듯 뱅글 뱅글 돌아갈 때, 모니카는 웃었어요. 까르르, 까르르. 나는 당신만은 나를 버리지 않을 줄 알았어요."


2악장이 저물어간다. 솔직한 감정은 하얀 편지지 위에 빼곡한 글씨를 남겼다. 어쩌면 모니카는 나를 버린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연의 끝, 그 끝날의 책임은 모니카도, 나도 아닐지도 모른다. 편지의 시작은 브람스가 안겨준 용기였다. 편지의 끝도 브람스가 용기를 줄까? 하얀 편지지가 봄 햇살에 눈이 부시게 펄럭이고 있었다.


'모니카, 기다려요....'


휠체어를 꺼내야겠다. 잃어버린 다리에 주목하고 누군가를 투사하면서도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삶은 지겹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가보자.



3악장 - 알레그로 지오코소, 마 논 트로포 비바체 - 포코 피우 프레스토


여름이 오기까지 매일 아침 휠체어를 미는 사람은 오롯이 혼자의 몫이었다. 팔뚝이 굵어지고 헬스클럽에서 1년은 거뜬히 배웠어야 생기는 팔근육이 장착되었다. 이제 스스로도 휠체어 댄스를 출 수 있다.


한껏 휠체어 댄스를 추고 들어오면 땀으로 범벅된 몸을 깨끗이 씻고 다시 브람스를 걸어둔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3악장은 여섯 부분으로 된 론도가 더블 스톱(두 줄을 동시에 짚는것)으로 연주된다. 마치 브람스가 말하고 요아힘이 답하듯 그들의 우정이 파도처럼 넘실댄다. 이때, 브람스가 말했다지. 자신을 너무 믿지 말고, 과하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고 적당히...'마 논 트로포 비바체'


"모니카, 그곳 날씨는 어때요? 모니카의 다락방은 크고 작은 상자들이 있겠죠. 촉수가 낮은 형광등 불빛 아래 말없이 앉아서 골똘히 생각에 잠기면 모니카는 작고 큰 상자를 꺼내 물건을 정리했잖아요. 내가 지금 그래요. 모니카를 생각하면서 조도가 낮은 스탠드 불빛 아래서 편지를 쓰고 있어요. 나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나를 위해 휠체어를 밀어주던 날 가끔씩 파르르 떨리던 손가락을 보면서 마음은 기도로 마음은 미안함으로 가득했는데 한번도 표현하지 못했어요. 당연히 받아누렸어요. 어쩌면 나의 편지는 모니카의 습관처럼 작은 상자에 차곡차곡 쌓이겠죠. 모니카가 사랑하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끝나가요.  첼로의 셋잇단음표가 콕콕콕 가슴을 저며요. 이럴땐, '마 논 트로포 비바체' 해야겠죠. 모니카, 나는 원하는 게 별로 없어요. 그저 다정한 손길을 원했을 뿐이예요. 다르게 걷는 사람을 동정하는 거 말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준다는 연민말고, 그저 눈한번 감았다 뜨는 일상의 편안한 손길이요.


아...저음현의 피치카토.


손가락이 현을 튕기네요. 


곧 음악이 멈출 거예요.


8분음표 혼자서 오롯이 책임을 질 거예요.






혼자서는 여행을 가기 어렵다고 했다.

혼자서는 밥을 먹기 어렵다고 했다.

변명이다.


사람이 오고 떠난 자리에 나만의 독립영역이 생기고 나는 강해졌다.


다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 자리에 여전히 하얀 쉬폰이 펄력인다. 아마 암막 커튼은 사라질 것이다. 내가 만들어가는 삶에 아주 익숙해졌다. 내가 만들어 가는 저녁, 내가 만들어 가는 불빛, 내가 만들어 가는 생활이 내 공간에 버젓하다. 뭐랄까. 이 세상에 보탬이 될 것 같은, 온전히 세상의 일부분이 되어 삶의 주인이 된 기분. 이 자신감의 원천은 무엇일까. 목숨을 걸만큼 절박했던 일들이 바이올린 현을 타고 하나씩 하나씩 변해갔다. 음악이 만든 결과일까? 편지를 쓰는 용기였을까?


아니, 어쩌면 다정한 손길 하나면 된다는 고백의 마침표가 아다지오에서 비바체로 넘어가게 한 건 아닐까.

결국 나는 여행지를 유튜브로 접하고, 맛집을 유튜버의 입담으로 전해듣고, 나만의 리스트에 옮긴다. 오밀조밀 옮긴다.


브람스가, 독일이, 체코 카렐교가, 지중해가, 나의 노트에 적힌다.

이제 나는 안 가본 곳을 가본 것처럼 느낄 것이다.

오밀조밀 느끼며.


그 오밀조밀한 일기를 어느 장애인이 읽고 또는 마음이 아픈자가 읽고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제의 절박함이 오늘의 경쾌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