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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Sep 11. 2022

어느 장애인의 오밀조밀

걸어서 세계속으로

허름한 식당 입구에서 페인트 인부처럼 보이는 남자가 식당을 들어가면서 신발에 묻은 페인트를 털어내려고 한다. 얼개의 짜임이 듬성듬성 해지고 신발의 흙을 털어내는 기능을 제대로 소화할까 의구심이 드는 찢어진 매트에 하얀색, 파란색 가루가 묻은 페인트를 습관처럼 탁.탁.탁. 털고 있다.


그를 따라 들어간 국밥집, 따뜻한 소머리 국밥을 시킨 그 남자는 휴대폰의 최신 기능보다 잠시의 휴식이 필요한 듯 테이블 위에서 눈을 뜬채 졸고 있다.


그의 신발이 몇 세기를 거슬러 올라간 선캄브리아 화석처럼 보인다. 굳어버린 페인트 자국처럼 그의 마음에 새겨진 화석같은 인생의 눌린 조각들이 나의 가슴에 저미도록 스며든다. 처음 본 남자에게서 슬픔을 굳이 찾아내고 그의 상념을 나의 편린으로 만들어 내면 나의 국밥은 서민들의 애환이 녹아들어가 진국이 되었다.


의도할지도 모른다.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승화하며, '당신이 겪는 고통을 알아요...' 깨달음의 열반을 찾는 수도승의 골방, 그 골방처럼 어둠이 내려앉은 나만의 내면 공간은 어느새 기도문을 외우는 '블라 블라'가 넘친다. 의식이 끝나면 '잘 살기를 기도합니다' 축복해야만 내가 숨을 쉴 수 있다. 그럼에도 찰나가 영원이 된 그 방에서조차 단단하게 굳어버린 누군가의 아픔이 바위처럼 거대해지고, 교활한 쥐새끼가 의식의 공간을 갉아먹으려고 이빨을 들이밀면 나는 얼굴을 가리고 울어버린다. 그런 날이면 영락없이 꿈을 꾼다. 꿈에서 나는 언제나 체코, 프라하, 카를교 다리 위에 있다.



걸어서 세계속으로-체코, 프라하


인천에서 출발해 11시간 비행을 하면 체코 프라하에 도착한다. 역사, 행정, 상업의 중심지인 프라하, 유럽의 도시가 다 그렇듯 광장 바닥이 세월을 입어 굴곡이 심하다. 휠체어 바퀴가 음푹음푹 빠지고 휠체어 몸체가 덜컹덜컹 흔들리면 "곧, 타이어가 펑크 나겠어요!" 누가 봐도 불안한 움직임으로 겨우 구시가 광장 중심부로 들어간다.  프라하의 심장부 구시가 광장에는 80m 높이를 자랑하는 쌍둥이 첨탑이 있다. 밤이 되어야 청동의 시곗바늘이 황금 빛으로 번쩍이는 아름다운 첨탑이다. 1410년 만들기 시작하고 여러 차례 추가 장비를 덧대고 보수해서 완성한 천문 시계 앞으로 유럽 사람들의 큰 키가 낮은 나의 시야를 가리기 일쑤다. 나의 목은 그 틈새에서 살아남으려고 길게 더 길게 늘어진다.



황금색 시계가 세개의 부분으로 나눠져 있고, 아래쪽에 시곗바늘 없는 그림판은 글을 모르는 농민들을 위해 월별로 시기를 알려주는 그림 달력이다. 주워들어야 한다. 답답한 시야를 해결하고 소리가 묻혀 들리지 않을 때는 최신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초록 검색창으로 프라하 시계탑의 역사를 더듬어 갔다.


그때 때 마침, 휴대폰 알람이 여덟시를 알리고 첨탑 원형의 시계 위로 12명의 인형 사도가 원형을 그리며 빼꼼 빼꼼 작은 창문 밖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사도 베드로, 사도 요한, 예수의 형제 야고보까지...보이지 않아도 느낌으로 그들의 이미지를 알아채고 그들의 원혼을 위로한다. 30초의 행진이 끝나자 가이드가 말했다. 이 아름다운 시계를 독점하기 위해 프라하 시가, 사람을 보내 시계공의 눈을 멀게 했다는 전설이 있다고. 일리 있다. 나 역시 황금 시계탑을 독점하고 싶으니.



다음 날, 트램을 타고 프라하 성으로 이동했다. 프라하 성 중심에는 '성 비투스 대성당'이 있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자 유럽 최고의 유리공의 기술을 이용해 만든 스테인드글라스가 첫눈에 들어온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은 성당을 밝게 해주면서 신자들의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한다. 지금 나는 알폰스 무하의 스테인드글라스 앞에 있다. 아르누보의 태동기부터 쇠퇴기까지 수많은 작품과 디자인을 선보인 아르누보 시대의 대표 화가 무하는, 조각난 색유리를 조합해 하나의 그림으로 구성하는 방법 대신, 유리에 직접 그림을 그린 후 가공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의 화풍을 눈으로 감상하다보면 내면 깊숙이 숨겨놓은 비밀을 '블라 블라' 고백할 수 있는 마음의 평안이 찾아온다. 닫혀있던 나만의 내면의 공간이 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프라하 대성당'에서는 그 누구라도 용서할 수 있는 선택적 무아지경을 체험할 수 있다.



마음의 평안이 찾아오면 휠체어는 한껏 가벼워진다. 이때다. 바로 이때, 프라하를 찾은 나의 목적, 바로 카를 교로 달려간다. 블타바 강 우안의 구시가지와 좌안 언덕 위에 우뚝 세워진 카를 교가 눈앞에 펼쳐진다.나의 휠체어 바퀴가 성이 났다.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하나인 카를 교를 품기 위해 성난 근육은 휠체어 바퀴를 강하게 채찍하고 있다.


카를교는 1357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프라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카를 4세가 블타바 강에 놓은 다리로 너비 10m, 길이 520m에 이른다. 성 비투스 성당을 지은 페테르 파를레르시가 공사를 맡아 바츨라프 4세 때인 1402년에 완공되었다. 지금이 2022년이니까, 나는 몇세기를 건너 1400년대의 감성을 기어코 읽어내려한다. 입구에서 만나는 초상화 그려주는 아저씨에게 눈과 입의 미소를 던지며, 바퀴에 열이 가해지는 순간 검은 흑빛이 파란 하늘과 만나서 천상과 천하가 재회하는 강물을 훔쳐본다.




다리 옆으로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서른 개의 성인 상이 있다. 성 요한 네포무크, 성 루이트가르트, 성 비투스 등 체코의 유명한 성인 조각상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이 조각상들은 모두 성경에 나오거나 성인으로 칭송받는 사람들을 새겨 놓은 것, 그중 '성 요한 네포무크 조각상'이 가장 유명하다.  네포무크의 죽음을 안다. 바츨라프 4세가 왕비 조피에의 고해성사 내용을 알려달라고 하자 그는 거절했다. 시대의 아픔을 품고 있는 그는 그 이유로 인해 카렐교 밑으로 떨어졌다. 그가 죽은 난간에는 작은 청동 십자가 5개가 있다. 그 십자가에 손을 내밀어 5개의 별 중 하나를 만지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만져보자. 나의 꿈이 너무 간절하니 만져보자. 너무 만져서 새까매진 그 부조를 만져보자 꿈을 이루어야 한다.



나의 꿈이 이루어졌어요! 내가 카를교에 있어요.


나의 휠체어가 카를교 사람들을 뚫고 달려요! 성난 바퀴가 다리의 끝을 향해 질주해요.


'네포무크'의 죽음이 선물해 준 결과인가 봐요.


나의 꿈이...나의 꿈이....이루어졌어...요....




꿈이 산산조각 났다는 표현, 우리는 언제 할까?

바라던 바가 너무 간절해서 그 꿈만 생각하면 결국 그 꿈을 닮아가고 어쩌다 그 꿈을 실현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꿈이 산산조각 났다는 말은 언제 할까?


고급 레스토랑에서 가장 비싼 음식을 먹고 형식적으로 나누었던 일상의 이야기가 바닥이 나면 각자 가지고 있던 휴대폰으로 다른 사람의 일상을 뒤져보는 삶이 꿈을 이룬 것일까? 허름한 식당 앞에서 페인트를 털어내는 기억의 편린을 모아 잠시 졸다가도 진한 국밥 국물에 빨간 깍두기 국물을 부어 밥을 말아먹는 페인트 아저씨는 꿈이 없을까?


10보 전진하기 위해 수많은 꿈쟁이들은 자기 계발서를 쓰고 자기만의 방법이 맞는다고 우긴다. 1보 후퇴하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은 주장할 방법이 없어서 묵묵하게 자기만의 일을 할 뿐이다. 누구의 꿈이 깨졌을까? 죽은 '네포무크'는 알까? 당신의 전설을 믿는 한 남자가 자기의 여자의 손을 당겨 5개의 십자가를 만져보게 하는 애씀을. 그 남자는 알까? 어쩌면 급조해서라도 웃음을 주었던 그녀가 오래된 것을 버리고 새것을 택하듯 부지런히 서로를 잊을 것을.


내가 체코를 사랑해서 휠체어를 타고 카를 교 위를 달리고 흠뻑 젖은 채로 꿈에서 깼다면 나의 꿈은 산산조각이 난 것일까? 이제는 눈을 감아도 보인다. 구시가 교탑에서 내려다보는 프라하 성과 블타바 의 전경이.  숨을 고르게 내쉰다. 깊은 호흡이 나의 눈을 고요하게 닫는다. 이제 나는 카를 교를 지나 말라스트라나 광장에서 프라하 성으로 이어지는 언덕길, 네루도바 거리로 들어선다. 그곳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콜레뇨'를 시켜야겠다.


휠체어를 밀어주는 그 남자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고맙습니다! Děku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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