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선 작가의 브런치북 『어른들의 언어생활』
멜론 <브런치 라디오> 시즌2 작가 참여 공모전 응모
설명하려 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어. 그렇지만 그게 왜인 건지 내가 이상한 것 같아. (……) 이해하려 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있어. 그렇지만 욕심많은 그들은 모두 미쳐버린 것 같아.
브로콜리너마저 -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덕원이 노래했듯이 세상에 설명할 수 없는 일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일까. 서점을 찾을 때마다 사람들은 '말의 힘'에 참 관심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말센스, 부자의 말센스, 말 그릇, 말의 품격. 수많은 화술 책의 띠지에 적힌 것처럼 말하는 법을 바꾸면 정말 내 인생도 바뀔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일할 때만큼은 말을 잘하는 것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을 아껴주는지 깨닫는다. 특히 비대면 업무가 일상화된 요즘은 더욱 그렇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일을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일을 잘 한다는 건 보통 말을 잘 하는 것을 포함한다.
영어에 비즈니스 영어가 있듯이 한국어에도 비즈니스 한국어가 있을 터다. 박창선 작가는 비즈니스 한국어 교재를 내려는 출판사라면 메인 저자로 고려해봄직한 사람이다. 디자인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그는 2017년 브런치에 발행한 「디자이너를 위한 알쏭달쏭 클라이언트들의 용어정리」라는 글로 많은 업계 종사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디자인 작업 의뢰인, 그러니까 '갑'들이 쓰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표현을 풀이해놓은 이 글에 따르면 "딱! 심플한 것"은 픽토그램을 의미하며, "이렇게 화아… 하게"는 이미지의 명도를 높여달라는 뜻이다. 반쯤은 농담 섞인 글이지만, 이 글은 논리적이고 체계적이어야 할 것 같은 '일하는 사람'들의 언어가 실은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두서없는지, 그리고 얼마나 '뉘앙스'에 의존하는지 생동감 있게 드러냈다.
대화가 잘 통한다 아니다… 또는 이 대화가 행복하다 아니다는 사실상 태도의 문제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언어 속에 감춰진 묘한 뉘앙스와 시선이 대화의 분위기를 만들어내죠.
박창선, 「맘 상해서 집에 가고 싶어지는 대화엔 공통점이 있어」, 『어른들의 언어생활』 1화
브런치북 『어른들의 언어생활』에서 작가는 자신의 꾸준한 관심사였던 '말'의 속성을 특유의 유머러스한 문체로 풀어낸다. 1부 '우리의 말'은 일종의 관찰일지다. 우리가 다양한 상황에서 주고받는 대화로부터 패턴을 찾아내 정리하고 그 행간의 의미를 해석한다. 디자이너의 관찰력으로 포착한 대화 예문들은 하나같이 현실적이어서 기시감마저 든다. 관찰의 대상은 현실 속 대화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 속 악당들의 진부한 대사에서도 배울 점을 찾는다. 분석에 따르면 그들은 공사구분이 확실하며 자신만의 철학이 있고 항상 긍정적이다.
2부 '회사의 말'은 말하기와 글쓰기를 잘 하기 위한 실전적인 지침을 다룬다. 「회사에서 말 잘하는 프로또박이 되기」에서는 안경(?)과 자세, 제스처부터 시작해 운을 떼는 법, 이목을 집중시키는 법, 생각을 구조화시켜 말하는 법, 말을 마무리하는 법까지 화법 컨설팅 강의에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을 테크닉들이 소개된다. 글쓰기에 집중한 「브랜드만의 말투를 만들어 봅시다」 편은 조금 당황스러울 수 있다. 어미, 접속사, 부사, 음절 등 학창시절에나 알고 지냈던 이름들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작가도 "얄리얄리 얄랑셩까지 나올 수 있으니 각오하라"고 자조 섞인 농담을 던진다. 그러나 이 글은 사실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브랜드 글쓰기라고 해서 대단히 특별한 방법이 있다기보다는, 주어의 위치와 문장의 길이 같은 디테일까지 신경 써서 명확하고 부드럽게 읽히는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확실한 브랜딩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주목하는 작가의 언어 감각은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몸담은 디자인이라는 업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른바 시각 언어라는 개념도 있듯이, 디자인은 단순히 무언가를 예쁘게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정보를 시각화하고 전달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일에 가깝다. 색감과 폰트, 투명도와 굵기에 따른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느끼는 감각이 어휘와 어미, 음절과 리듬을 고치고 다듬는 일에도 발휘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디자인과 언어 모두 본질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박창선 작가의 글들은 우리에게 이런 통찰을 넌지시 건넨다. 결국 '좋은 비즈니스 대화'는 보편적인 '좋은 대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예의를 지키고, 불필요한 오지랖은 삼가고, 자기 얘기만 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 공감해주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대화 상대가 친구든 직장 동료든 변함없이 중요하다. 이런 요소들이 기분 좋게 몰입할 수 있는 대화를 구성하고, 나를 다시 찾고 싶은 대화 상대로 만들어준다.
일과 말, 삶과 말의 오묘한 함수관계를 현실적인 사례 연구와 범상치 않은 유머 감각으로 엮어낸 『어른들의 언어생활』을 말의 힘을 믿는 당신에게 추천한다.
https://brunch.co.kr/brunchbook/adult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