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200권을 사세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는 글쓰기 강의

by 나른히

투고 메일을 확인하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문장이 있다.

‘출간으로 이어진다면, 이후 책 200권을 구매하겠습니다.’

정확한 문장은 아니지만, 중요한 건 사겠다는 책의 숫자다. 100권도 아니고, 300권도 아닌 200권을 구매한다는 의사를 밝힌 투고자만 하루에 몇 명이나 된다. 그들의 메일 형식은 대부분 같다(심지어 글씨체와 글씨 크기도 같다).

처음에는 책을 직접 구매하면서까지 출간의 의지를 보이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이후에도 200권을 사겠다는 메일이 책 가제와 투고자 이름, 전화번호만 바뀐 채 꾸준히 도착하자 그제야 알아챘다.

“같은 글쓰기 강의 다니는구나.”

같은 강의 다니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이외에도 많다. 메일에 적힌 글의 순서뿐 아니라 출간기획안과 원고의 양식까지 겹치는 경우를 종종 만날 수 있었다. 분명 처음 읽은 메일인데도 낯익게 느껴지면 대부분 이러한 경우였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글쓰기 강의를 들은 투고자의 메일이 눈에 그다지 들어오지 않는다.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강의를 듣는 투고자들은 대체로 글쓰기 스타일과 다루는 주제가 비슷하다. 그것이 출판사와 맞는다면 상관없겠지만, 맞지 않을 때가 문제다. 이후 같은 쓰기 수업에 다니는 것으로 추정되는 투고자의 메일이 도착하였을 때, 편집자가 다른 일정으로 바쁘다면 우선 어떤 원고일지 짐작되니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는 것이다(모든 편집자가 그러하지 않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러했다).


내용 측면에서도 문제다.

지금은 그러한 경우가 별로 없지만, 한때는 어느 모임에서 ‘인용’을 강조하였는지 책과 영화, 드라마들을 잔뜩 인용한 투고가 쏟아져 들어왔다. 심하면 반절 정도가 인용인 원고도 있었다. 책의 세 문단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이고, 드라마 대사를 직접 받아 적기도 하였다. 편집자는 원고를 살필 때 이 책이 편집되고 출간되는 과정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인용이 가득하다는 것은 출판사에서 해당 출처마다 인용 여부에 관해 묻고, 어느 경우에는 인용에 따른 비용을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인용은 필요하다. 그러나 인용을 빼고서는 원고 자체가 만들어질 수 없는 경우에는 편집자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다.

또한, 몇 년 전에는 어느 글쓰기 강의에서 여기저기서 자료를 긁어오는 것에 대해 알려준 모양인지 문단마다 문체가 서로 다른 원고도 종종 들어왔다. 의심스러워 문장 몇 줄을 긁어 구글에 검색해보면 인터넷 기사, 출판사 보도자료 등이 걸러졌다. 비교해 살펴보면 투고자가 해당 글을 베끼면서 몇몇 표현만 바꾼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 두 가지의 경우, 나에게는 하나의 선입견으로 자리 잡아 같은 글쓰기 모임으로 보일 때는 아무리 원고가 좋아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투고자가 출간을 위해 다녔던 글쓰기 강의가 오히려 어느 소심한 편집자에게는 독이 된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투고자의 노력을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투고 메일을 보내기 전에 글쓰기 강의에서 배운 것 말고 자신의 눈으로 원고를 한 번 더 찬찬히 살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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