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u Nov 25. 2024

사람공부

504호 할머니


밤 12시. 우리 집 위층에선 어김없이 물레방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쿵쿵. 쿵쿵쿵. 쿵쿵쿵쿵쿵.
"뭐야,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혼자 사는 여자 독거 청년으로서, 겁 많은 내 삶은 물레방아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이사 온 첫날부터였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써 봤다.
"안 들려, 안 들려…"


그런데 들렸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귀에 꽂아 봤다.
"완벽해, 이번엔 무조건 안 들려."


그런데 들렸다.
이불속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내가 왜 이 집을 골랐을까? 부동산 아저씨, 가만히 두진 않을 거예요.'


그렇게 물레방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드는 법을 배운 지 1년.

그날도 어김없이 위층은 뜨거운 밤을 준비했다. 쿵쿵쿵쿵쿵!

속으로 외쳤다.
"대체 위층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야? 신혼부부라도 사는 거야, 뭐야!"


며칠 후, 관리사무소에 주차 문제로 갔다. 용기를 냈다.
"저기요, 505호에… 혹시 신혼부부가 살아요?"
관리사무소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505호요? 거긴 휠체어 타시는 욕쟁이 할머니 혼자 사시는데요?"


"네??"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할머니 휠체어 소리를 신혼부부의 격정적인 무언가로 오해하고 있었단 말이지?

내가 연애를 쉰 지 너무 오래된 탓인가?
이젠 웬만한 소리만 들려도 ‘아, 저건 사랑이야’ 하고 단정 지어버리는 불쌍한 연애 세포 상태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 연애관은 이제 물레방아급 상상력에 기대고 있는 건가…'
심지어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은근히 부러워했었다.
"으휴, 사랑 참 좋구나…." 하면서 말이다.


그날 밤, 물레방아는 또다시 돌기 시작했다.
쿵쿵. 쿵쿵쿵. 쿵쿵쿵쿵쿵.


눈을 감고 생각했다.
"할머니… 오늘도 밤 운동 열심히 하시네."
그리고 웃음이 터져 베개를 끌어안고 구르고 말았다.


내 연애는 언제 시작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물레방아 소리는 더 이상 부럽지 않았다.
‘사랑이든 휠체어든, 누구든 자기 리듬에 맞게 살아가는 게 최고지.’
그렇게 결론 내리고 뒤척이다가, 물레방아 소리를 자장가 삼아 또 한 번 잠들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