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런이유지 Aug 23. 2023

이 마음이 아닌 것 같은데

엄마 마음

가게로 향하며 혼자 집에서 아이만 돌보는 생활을 청산하리라 흔들리지 않는 다짐을 했던 나는 출근하는 남편과 함께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직은 쌀쌀한 3월 중순, 영아를 대동한 움직임엔 챙겨야 할 짐이 한 보따리였다. 처음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하겠다고 나섰던 것은 아니었다. 생후 70일쯤 지난 아이를 데리고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랴. 그저 남편과 함께할 수 있도록 육아 공간을 가게 2층 다락방으로 옮겨보자는 순수한 의도였다. 처음 며칠은 2층에서 아이만 돌보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1층에 내려와 있는 시간들을 늘려갔다. 손님이 없을 땐 유모차에 태워 매장 테이블 사이를 빙글빙글 돌다가 손님이 오시면 주방 한 구석으로 가서 한쪽 발로는 살랑살랑 유모차를 밀고 손으로는 소일거리를 찾아서 했다. 아기가 잠을 많이 자는 시기라서 운이 좋으면 1시간씩 짬이 나기도 했다. 수업시간에 몰래 나와 학교 앞 분식집을 기웃거리듯 들뜬 마음으로 주방일을 했다.


얼른 일을 시작하라는 케이크신의 뜻인지 출산 후 회복이 빨라 일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그제야 멈춰있던 나의 시계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아기의 얼굴에 포동포동 살이 오르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됐다. 가게를 오픈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한창 케이크 만들기의 어려움에 빠져있던 시기라서 뭐라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가게일을 도와야 했다. 옆에서 도움을 주는 만큼 빨리 일이 마무리되고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일만 해도 벅찬데 육아까지 더해지니 야근의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됐다. 한편으로 아이를 데리고 우리만의 속도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회사로 출근하는 직장인이 아니어서 다행이긴 해. 혼자 집에서 아이 보고 살림하면서 남편 퇴근 시간만 기다린다면 우울증 심하게 왔을 것 같아. 지금 되게 힘들기는 한데 애기 보면서 일을 같이할 수 있는 게 나한테는 확실히 좋은 점이야"




업무 중에는 유모차를 요리조리 굴려가면서 비좁은 주방의 가장 안전한 자리를 찾아 어떻게든 함께하려고 했다. 오븐 이외에는 불 쓸 일이 거의 없어서 다행이었다. 아직은 수유텀이 짧아 수시로 분유를 타 먹이면서 기저귀에 파란 줄이 뜨면 갈아주러 2층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울고 보채면 안아서 달래고 잠들면 냉장고 위에 이불을 깔고 재웠다. 주문이 많아지거나 오븐을 돌려야 하면 유모차를 태워 주방 입구에 두고 카운터를 봤다. 전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일을 꼽으라면 고민 없이 아기가 태어난 후 100일 동안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 기간 동안은 거의 같은 질문들을 남편에게 쏟아냈다.



육아가 이렇게 힘든 거라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걸까? 왜 다들 장점만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거지? 나만 당할 수 없으니 너도 한번 당해보라는 생각을 모두가 하고 있는 걸까? 나 같은 애들은 이 현실을 알면 출산을 포기할 것 같아서 모두가 비밀약속이라도 한 걸까?



아이에게는 너무 미안한 말이지만 앞서 말한 100일의 기간 동안은 아기가 예쁜 줄도 몰랐다. 흔히 하던 ‘내 자식이라면 ~하겠다’라는 가정의 표현에 출산 후의 경험을 더하기가 망설여졌다. 그 말을 할 땐 왠지 마음속에 더 큰 무엇인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러기엔 내가 아이를 예뻐하는 마음이 한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 동안 상상했던 엄마의 마음이 이런 게 아닌 것 같은데. 아이를 잘 보살펴야 하는 내 고생이 더 크게 자리해서 이대로 자식보다 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간으로 남게 될까 봐 불안했다.


냉장고에서도 잘 자주던 고마운 시절


이전 06화 차라리 일할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