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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이유지 Aug 17. 2023

남편과 함께 일하며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이유

둘이 하루 종일 붙어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안 싸우고 잘 지내세요?
엥? 우리 자주 싸우는데요? 으하하하


나와 남편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지인들로부터 종종 듣는 질문이다. 24시간 붙어서 일과 생활과 육아와 살림을 모두 함께하는 우리는 자주 티격태격한다. 매일 까지는 아니지만 2~3일에 한 번은 서로 말없이 냉기만 주고받는다. 말다툼도 하고 아주 가끔은 싸우다가 울기도 하는데 나는 주로 답답하고 짜증 나서 울고 남편은 너무 냉정하고 차갑게 구는 나에게 상처받아서 운다. 하지만 우리의 싸움은 심각하지 않고 길지 않다. 앙금 없는 싸움 같달까. 오늘도 오랜만에 만난 지인으로부터 같은 질문을 받고 왜 그런지 잠시 생각해 봤다.


첫째, 우리는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관과 기질이 비슷하다. 그래서 편안함을 느끼는 상황도 비슷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부분도 비슷하다. 내가 편하면 남편도 편하고 내가 불편하다 느끼면 남편도 불편하기 때문에 그런 서로를 이해하는 우리끼리 있는 시간 동안은 거슬릴 것이 별로 없다. 사람한테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과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거의 동일하다. 특정 상황에 스트레스받아서 “아…”하고 있으면 옆에 있는 남편도 어딘가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다.


둘째, 남편의 이해심의 깊이와 폭이 압도적으로 깊고 넓다. 나는 이해심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편인데 남편은 ‘읭? 이런 것도 이해해 주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것을 포용한다. 이해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면 될 것을 표현력까지 개미 더듬이만큼도 없는 나는 상황 종료 후 고작 한다는 말이 “화 안나?” 정도이다. 예를 들고 싶어도 너무 사소한 것들에 양은냄비같이 부르르 화를 내온 터라 딱히 기억나는 사례가 없다. 주로 물건좀 제자리에 놓으라는 내용이었다.


44개월 아이가 떼쓰고 소리 지르는 상황에 나는 멘털이 흔들려 같이 소리치고 화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 때마다 남편은 바위로 변신해 나와 아이의 흥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다. 큰 소리 한번 내는 법이 없다. 이유없이 아이가 이럴 때 화 안나냐고 물으면 얘가 어디가 불편한거지 라는 생각이 들 뿐 떼쓰는 그대로의 모습도 귀여워서 자꾸 웃음이 난다고 한다. 보살이다. 그리고 늘 따라오는 잔소리. “넌 애랑 같이 화내지 좀 마” , “…” 머쓱해진 내가 할 말이 없다.


셋째, 남편의 잠귀가 밝다. 8년째 함께 살며 최근에 느낀 점인데 잠귀 밝은 남편 덕분에 육아를 하면서도 높은 삶의 질을 보장받고 있었다. 나는 유독 잠귀가 어둡고 아침잠이 많다. 학창 시절 가장 힘들었던 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아침에 일어나기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사람에 치이던 등하굣길보다 천근 같은 몸을 일으켜 등교준비를 하는 것이 힘들어 아침마다 울상이었다. 그런 내가 아이를 키우려니 역시 가장 힘든 점은 잠을 충분히 잘 수 없는 것이었다. 산후조리원 시절부터 남편은 새벽마다 아이 돌보기를 담당했다. 지금까지도 내가 세상모르고 쿨쿨 자는 동안 잠귀 밝은 남편은 나와 아이가 자다가 조금이라도 불편한 소리를 내면 일어나서 해결해 준다. 한 동안 비염으로 코가 막힌 아이가 걱정되어 가습기를 틀고 코에 이것저것 해주느라 분주하더니 요즘은 땀 많은 아들 온도 조절 해야 한다며 에어컨을 껐다 켰다 잠을 설친다. 그러면서 아침엔 늘 나보다 먼저 일어나 밀린 설거지며 빨래를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물건 좀 지저분하게 놓아뒀다고 뭐라 하기가 어려워진다.


넷째, 취향존중. 살면서 이토록 취향을 존중받았던 적이 있었나 싶다. 물건구매, 메뉴선택은 물론이고 배우고 싶은 것이 있거나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진심으로 응원해 준다. 도움이 필요하다 생각이 들면 내가 요청하기도 전에 본인이 해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주고 결과를 두고 나를 탓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주방에서 음식을 할 때 “뭐 필요해? 사다 줄게”라는 말을 자주 하고, 필요한 일이 있으면 망설임 없이 나가서 해결해 주는 등 다양하다. 나 같으면서도 나 같지 않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우리가 하루종일 함께 생활하면서도 평안할 수 있는 이유인 것 같다.


2023년 8월 17일

남편의 43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어제 저녁에 장 보면서 소고기 사는 걸 깜빡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특별히 장점에만 집중해 봤다.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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